[Opinion] 술 없이도, 미련 없이도 이별을 노래할 수 있기에. [음악]

글 입력 2020.10.06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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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음원차트는 축축 쳐져 있었다. ‘사재기’ 의심을 받을 정도로, 무명 가수의 ‘술’과 ‘이별’을 소재로 한 음악들이 소리소문 없이 음원차트를 장악하는 현상으로 인해 대중들은 무더위 속 오히려 더 지친다며 이별 노래에 질려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이별에 의해 발생하는 감정은 ‘슬픔’이 맞다. 그리고 ‘슬픔’을 노래하는 여러 음악들을 들을 때, 가사를 보며 공감을 하기도 하고, 서정적인 멜로디에 집중하여 내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 아픈 감정들을 스스로 위로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취해야 하고, 울어야 하고, 미련 가득하게 전 애인에게 연락하고, 그런 전 애인은 답을 해주고, 감정을 질질 끄는 노래가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는 한다.

 

대중들도 그런 쳐지는 슬픈 이별 노래에 질렸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2017년 초에 발매되었던 한 밴드의 독특한 이별 노래가 갑작스럽게 역주행 하기 시작했다. 이별을 했지만 난 매우 슬프고, 너를 그리워하니까 돌아와 달라고 술에 취해 매달리는 흔한 이별 노래들과 달리, 이 노래의 가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거 우리의 시간과 상대방의 모든 것들을 ‘예뻤다’고 표현하며, 미련 없이 그 시간들을 추억 속으로 보내 버린다. 그리고 그들이 발매했던 ‘이별’ 소재의 노래들은 대부분 이별한 이후 모든 것을 ‘과거형’으로 표현하며 과거 치열하게 사랑했던 좋은 기억으로 묻을 뿐, 다시 현재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 순간만큼은 아름다웠으며, 끝났지만 아름다웠던 시간은 그 상태 그대로 남겨두겠다고 말하는 그들의 이별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1. "예뻤어"가 입소문을 타고 역주행을 한 이유


 

노래 시작부터 ‘지금 이 말이 우리가 다시 시작하자는 건 아냐’ 라고 말해주는 노래 <예뻤어>는, 첫 소절 이후에 사랑을 나눴던 기억들 하나하나가 다 예뻤다고 말하면서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이 들어도 이미 끝난 지난 날이니 하지 않았다고 깔끔하게 선을 긋는다. 다시 돌아와 달라고 매달리지도 않고, 잘못했다고 빌지도 않으며, 상대방을 원망하지도 않고, ‘예뻤어’라는 과거형으로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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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유튜브 댓글 중에서는 ‘가사가 가장 착한 구여친송, 가사가 특히 예쁜 노래’ 라는 반응이 있을 정도로, 슬프고 애절한 감정을 담담하게 담아내면서도, 사랑의 추억을, 이별의 과정을 모두 아름답게 표현한 이 노래는 적당히 이별의 감정에 몰입하게 하면서도, 노래가 끝났을 때 미련하지 않게 털어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내 안의 추억을 묻고, 상대방도 아름답게 내 마음으로부터 보낼 수 있게 한다. 폭발적인 감정 표현은 상대적으로 적은 노래지만, 예쁜 노랫말로 리스너들을 위로하고 공감해준다.

 

 

 

2. 우리 기억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아름다웠던 시절은 그 시간 속으로, 각자는 새로운 삶으로.


 

아름다웠던 기억은 그대로두고, 이제는 둘이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나아간다고 표현하는 아래 세 곡은, 서로의 밝은 미래를 응원이라도 하는 듯이 흔한 다른 이별 노래들과 다르게 굉장히 '밝고 사운드가 풍성하다'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예뻤어>와 마찬가지로 ‘행복했다’, ‘소중했다’, 지금은 조금 힘들어도 이 기억들은 가슴 깊이 묻어두고 각자 다른 길을 향해 나아가겠다, 나의 다른 삶을 위해 가보겠다고 다짐하는 가사들은, 리스너들이 경쾌하고 웅장한 멜로디와 함께 힘든 감정들을 훌훌 털어낼 수 있게 해준다.

 

"네가 내게 준, 나에게 준 순간들은 너무 소중했기에, I'll remember. 함께했었다는 사실만이라도, 가슴 깊은 곳 한쪽 구석에 널 남겨둘게" - <남겨둘게>, 데이식스

 

"후회는 남기지 않았어, 사랑했으니까 뭐 됐어, 첫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아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 (중략) 아주 가끔은 눈물이 흐를거야, 그 때도 괜찮다고 되뇌일거야." -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데이식스

 

"For the first time, 너와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 I say goodbye to you. For the first time, 다른 꿈을 가지고 걸어가." - [First time], 데이식스

 

 

 

3. 흘러가는 이별은 흘러가는 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것은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갑작스러운 상황이며,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더욱 이별이란 상황을 부정하고, 상대방을 붙잡으며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자고 바라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돌아간다고 정말 예전과 똑같이 행복한 추억을 남기며 영원히 함께하는 경우는 드물다. 데이식스는 대신에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슬픈 상황을 격양된 멜로디로 표현하다가도 결국은 흘러가는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이별도 잡지 않고 그대로 둬버린다. 그게 서로의 시간들은 아름답게 기억하며, 각자의 앞으로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붙잡고 있는 건 널 위한 게 아닌 걸 알기에 억지로 너를 밀어내, 함께한 시간을, 우리 추억을 놓아 놓아 놓아 ... (중략) 미련이 남아서 붙잡고 싶어도, 그럴 자격이 없는 걸 잘 알기에" - <놓아 놓아 놓아 (rebooted ver.)>, 데이식스

 

"언제까지나 내 안에서 영원할 것 같던 너를 gotta let go, 니가 있던 겨울이 간다." - <겨울이 간다>, 데이식스

 

 

 

4. 지금은 힘들고 그리워도 사랑했던 건 '과거'.


 

"그리워하지 않아 난, 네가 보고 싶은 게 아냐 난 .... (중략)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니까 그래서 널 잊고 싶은 거야. 진심으로 I loved you." - [I loved you], 데이식스

 

앞서 다른 이별 노래들보다 상대적으로 과거의 연인을 그리워하고, 원망하고, 애절한 마음이 크게 표현된 노래지만, 마찬가지로 다시 시작하거나,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은 어차피 끝났다는 것을 "I loved you"라는 과거형으로 <예뻤어>와 유사하게 선을 긋는다. 지금도 상대를 많이 사랑한다고 매달리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사랑이 끝난 뒤, 지금 나의 그리움과 슬픔자체를 온전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

 

이처럼, 과거의 사랑은 인정하되, 현재의 상황에 따라 보내주는 이별 방식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도 않고 좋은 기억만을 남기는 ‘예의 바른’ 이별 노래는 듣는 사람이 슬픔을 털어내고 각자 미래를 향해 새롭게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듣는 음악은 나의 상황을 온전하게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며, 희망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끔은 술에 취한 노래도, 미련이 가득한 노래도, 현실에서 얼마든지 존재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때로는 내 상황과 연결시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노래들이 계속된다면, 아무 변화는 없고, 여전히 슬프기만 한 현실 속에서 감정을 털어내고 용기내서 다시 일어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이별’의 상황으로 한정지었지만, 더 나아가, 낭떠러지 앞에 서있는 것처럼 마음이 위태로운 모든 상황에서 더 극한의 슬픔으로 몰고 가는 노래보다는, 3~4분 남짓 되는 시간이라도 지금의 슬픈 상황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밝을 미래를 위해 이끌어주는 노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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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행복은 과거의 영광으로 놔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가 과거보다 조금 좋지 않은 상황이라고 나의 멋졌던 과거에 얽메인 상태에서 지금의 안 좋은 상황, 슬픈 기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더더욱 그 현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련하게 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과거의 아름다웠던 순간은 아름다운 상태로 놔두는 것이, 아름다운 기억을 훼손시키지도 않고, 나도 더 망치지 않게 한다.

 

이번에 썼던 데이식스의 이별 노랫말처럼, 어떤 슬픈 상황이 오더라도, 지난날보다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이거는 이거대로 털어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도록 나 자신을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손잡아주는 다양한 노래들이 나오길 바라본다.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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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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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ㅅㅇ
    • 예의 바른 이별곡.. 좋은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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