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로나 시대의 '휴식'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10.05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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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휴식은 무엇일까? 아침 해가 산뜻함을 잃을 때까지 침대에 늘어지는 주말? 아니면 심야 영화를 보고 나온 뒤의 불완전한 새벽? 휴식이 어떤 시간을 의미하는 건지, 사람들은 무엇을 휴식이라고 여기면서 사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간 내게 휴식은 모호한 것이었다. 그래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던 모든 시간을 나는 그냥 휴식이라고 불렀다. 잠을 자는 것도 휴식이었고, 밥을 먹는 것도 어쩌면 휴식이었다. 그건 내 일상이 늘 노동과 휴식을 명확히 구분 짓기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솔직히 말하자면 쉰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라는 휴식은 특히 이상했다. 침대는 일터였고, 식탁은 카페가 되었다. 2019년의 가장자리에 어정쩡하게 서서 나는 일단 휴학 신청서를 냈다. 시간은 바닷물처럼 늘 공평하게 밀려오는 것이고, 올해라고 다를 게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올해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게 코로나 때문인지, 아니면 애초에 내가 생각하는 휴식이란 게 납작하게 뭉뚱그려진 상태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미묘한 느낌이었다. 꼬박 3시간이 걸려 학교를 오가는 일, 흥미 없는 공부, 각종 제출 기한이 사라진 일상이라니. 어쨌든 할 일이 없으니 쉬는 게 맞기는 한데, 그렇다고 무언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도 처음 한두 달 동안은 아무것도 강제되지 않는 삶이 마냥 즐거웠다. 당장 내일의 일정조차 정해두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매일 눈을 뜨는 것에는 분명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도 미래에 대한 고민이 불쑥불쑥 찾아오기 시작하며 금방 끝이 났다. 그것들을 무시하기에 나는 너무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곧 나는 다른 휴학생들이 으레 할 법한 일들로 이루어진 리스트를 만들었다. 여행, 독서, 블로그, 각종 대외활동과 공모전. 청춘이 끝나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다짐과 상관없이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졌다. 매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여행을 가리라는 당찬 결심도 금세 빛을 잃고 말았다. 문을 연 도서관도, 나의 존재를 반길 여행지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기장에 쓰고 싶은 말이 정말 단 한 마디도 없을 정도로 무료하고 지겨운 나날이 이어졌다.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렀고, 하는 수 없이 집에 머무르며 커피 가루나 젓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다. 그 사이 ‘이게 아닌데’ 하는 길 잃은 불만은 커져만 갔다.

 

휴학 신청을 막 끝냈던 그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으로 나는 번번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과제도, 책임도 없는 삶이 9개월씩 이어지는 것은 예상보다 즐겁지 않았다. 삶을 꾸리려고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안게 되는 모든 짐에서 벗어나 먹고 자는 재미만을 위해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아니, 오히려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해왔는데도 말이다. 자의와 타의가 뒤섞인 처음 몇 달의 게으름이 주었던 해방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어딘가 붕 뜬 듯한 느낌만이 가시지 않은 채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한 해 정도는 제대로 쉬어 보겠다 마음먹었던 2019년의 나는 무엇을 예상했을까? ‘재미있는 걸 많이 하자.’ 올봄에 내가 결정한 게 있다면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랍시고 5시간씩 넷플릭스만 맴도는 일을 두 달 정도 반복하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가 바라왔던 쉼이 이런 느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게 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피어올랐다. 재난이 코앞까지 밀려든 어느 날이었다.

 

*

 

그럼 뭐가 쉬는 건데? 글쎄,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아마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쉬는 게 쉬는 거지, 그렇게 대단한 단어는 아니니까. 국어사전에는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두는 것’이라는 단순한 정의가 나와 있었다. 그 뜻이 전부라면 분명 나는, 그리고 우리는 올해 들어 더 많이 쉬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사전은 몸은 제법 편안해도 마음은 편치 않은 이상한 시간, 우리 모두에게 닥친 썩 유쾌하지 않은 시간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았다.

 

코로나가 앗아간 우리의 일상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퍼지는 숨과 맞닿는 손길, 자유로운 여행. 전부 우리가 그리워 마지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일상의 한 편에 ‘일’이 있었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나가서 돈을 쓰고 또 벌고, 가끔은 짜증스럽기도 했던 일들. 다른 방식의 삶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는 잠시 그런 일들로부터 벗어나야만 했고, 그건 분명 태어나서 처음 겪는 종류의 부재였다.

 

결국 휴식이란 노동의 발치에 존재하는 것이니, 쉰다는 행위도 뭔가 할 일이 남아있을 때나 유효한 무언가일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쉰다는 건 그냥 할 일이 사라져버리는 게 아니라, 일이 있지만 그걸 지금 당장은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코로나에 일을 빼앗겼을 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쉼을 박탈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남겨진 선택권은 하나뿐이었다. 그저 모든 계획을 끝없이 미루는 것. 의무에서 벗어나면 행복하리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내가 늘 원했던 대로 집에 머무르면서도, 어딘가 편치만은 않았던 것은 그래서였나 보다.

 

해야 하는 일이든 하고 싶은 일이든 전부 멀어져 버린 세상에서, 쉼을 쉼답게 만드는 모든 행위와 거리 두기를 실천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휴식을 찾을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는 요즘이다. 우리가 손을 대지 않고 온기를 나누는 방법을 고민하게 될 줄 누가 알기나 했을까? 이제 우리에게 돌아갈 일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온다. 이 따분하고, 지루하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모르는 전염병과의 동거에서 얻을 만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삶이란 불확실한 사건들의 총체라는 것뿐이다. 그다지 만족스러운 교훈은 아니다.

 

어쩌면 이 모든 고민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운명을 띠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것들-자유, 진심, 혹은 휴식 같은 것들-을 찾아서 계속 이렇게 걸어야만 한다. 비록 어느 관점에서 보아도 확실치 않은 삶이기는 하지만, 삶이란 단어에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당연한 상식보다 더 큰 의미가 있으니까. 이 전염병 아래 살고, 숨을 들이켜고, 쉰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그래도 내 생각에 우리는 어지간하게 해내고 있다. 꽤 잘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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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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