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 [문화 전반]

이야기 속에 파묻혀 사는 세상이란, 너무도 행복한 일이다
글 입력 2020.10.0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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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가 좋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글과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글은 이야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와 같은 것으로, 나는 글이 아닌 이야기가 좋아 책을 읽는다.

 

그래서 이번에 펼친 책은 그야말로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아주 많은 스토리텔링 콘텐츠의 원형이 되는 '신화' 말이다. 바로 닐 게이먼의 <북유럽 신화>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토르'가 등장하는 북유럽 신화에 관한 이야기지만, 책의 내용보다는 '신화'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나는 이야기에 빠지고 싶어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러나 분명 '이야기'가 좋은 것이라, 그것이 꼭 '글'의 형식일 필요는 없다. 정지된 한 폭의 그림이나 사진으로도, 타인의 상상력과 연출이 화려하게 드러나는 영화나 드라마로도, 시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음악으로도 충분하다. 아니면 그냥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제되지 않은 잡다한 상상들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내가 매일 밤 꿈을 꾸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에 있다. 이야기가 나를 압도하고, 현실과 다른 세상으로 이끄는 일련의 과정이 더없이 흥미롭고 신이 난다.

 

그렇게 나를 혹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마주하면 그저 그런 행복한 감정에 취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상상을 덧입히며 나만의 이야기를 창조하게 된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따라서 나의 상상력과 영감을 자극하는 이야기일수록 더욱 세밀하고, 정교한 세계관을 가지고 현실 어딘가에 남모르게 존재하고 있을 법한 모양새를 띄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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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쉽게 매료되어 사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수많은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통해 증명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이상이 절묘하게 조합되거나, 아니면 아예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경험을 다룬 이야기에 열광한다. 그럼으로써 앞서 언급했듯이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설계된 이야기를 원하고, 창작자보다도 더한 애정으로 그 세계와 캐릭터에게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해리포터를 들면, 해리포터의 세계관을 사랑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이 작가가 풀어주는 캐릭터들의 숨은 설정을 사랑함과 동시에, 객관적인 분석 끝에 나오는 자잘한 오류들에 탄식을 뱉는다. 모두 해리포터가 가지는 체계적이고 치밀한 설정을 통해 이야기에 기꺼이 빠져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 분야에서 생산되고 창작되는 많은 콘텐츠들은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이러한 '스토리텔링'의 힘을 경험했던 것은 다름 아닌 '콘서트'에서였다. 아이돌 그룹 엑소는 2012년 데뷔 당시부터 '외계에서 온 초능력자' 콘셉트로 주목을 받았고 이후 현재까지 나온 모든 앨범과 프로젝트에 그들만의 세계관을 녹여왔다. 마찬가지로 단독 콘서트에서도 그들만의 행성에 팬들을 초대한다는 등의 설정을 통하여 세계관에 디테일을 더하고, 영역을 확장해가며 관객의 이목을 끌고, 다음 활동에 대한 연속성을 부여했다.

 

스토리텔링이 가지는 효과 중의 하나는 이것에 있는 것 같다. 바로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것.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팬덤을 형성해가는 것 말이다. 팬들은 그들의 세계관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새로운 해석을 더해가며 스토리의 빈틈을 메꾸어가는데 재미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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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들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콘텐츠와 융합할 수 있을지, 또 이야기를 위한 콘텐츠와 콘텐츠를 위한 이야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야기를 활용하는 많은 콘텐츠들을 살펴보면, 그동안 왜 알아채지 못했지? 싶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읽히는 이야기를 넘어, 보는 이의 마음을 교묘히 움직이게 만드는 거대 서사까지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바라보면서 드는 의문이 한 가지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가 성공하고, 어떤 이야기가 실패하는 것일까?

 

그렇다. 모든 이야기를 가진 콘텐츠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이야기로 포화된 상태이다. 인터넷 창을 켜고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지 알아낼 수 있지만, 어떤 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역설의 시대이다. 이렇게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힘과 노력을 들여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세계관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또다시 그것을 구성하는 인물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이해하고, 자신의 창작 욕구를 불태우지 않는다. 그러한 과정들은 안 그래도 이미 피곤한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 소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가 에너지 소모를 적게 함과 동시에 쉽게 이해될 수 있을까? 이 고민을 하던 당시, 영화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무서운 기세로 영화관을 점령하며 상영 중이었다. 답을 그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신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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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사전적 정의는 '민족의 태고 때의 역사나 설화 따위가 주된 내용'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화로는 모두가 다 알고 있을 '단군신화'가 있다. 영화 어벤저스에도 여러 북유럽 신화가 담겨있다. 바로 맨 앞에서 언급했던 닐 게이먼의 '북유럽 신화'에 토르와 로키, 오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와 책을 보며 토르와 로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세계 아스가르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어떤 설정이 활용되고, 또 어떤 설정이 창조되었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북유럽 신화는 많은 콘텐츠 곳곳에 녹아 있어 '북유럽 신화'를 읽다 보면 혹시 이것도? 하는 지점이 꽤 있을 것이다. 책의 맨 뒤편에는 용어 정리가 되어 있어, 주요 용어들을 찬찬히 보면서 다시 내용을 되짚어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신화는 각 문화권에 따라 한 번이라도 들어본 익숙한 이야기가 되어, 현재 우리 삶에 주어지는 여러 콘텐츠와 결합되었을 때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다. 또 오랜 기간 전승되고 살이 붙여진 만큼 이미 구성이 탄탄해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재구성해도 서사가 부여된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신화인 '단군신화'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보면 신화를 차용한 콘텐츠가 대중에게 소개되고, 앞으로 전개될 방식에 대해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웹툰 '구구까까'에서도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 사이의 갈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풀어내며 인기를 끌었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우리가 본래 알고 있던 신화의 원형이 하나의 '열쇠'가 되어 각 인물들의 대사와 행동을 예측하고, 결말을 추리해가는 데 도움을 주며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콘텐츠의 일부가 된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익숙한 서사구조를 자신만의 해석으로 재창조해내는 콘텐츠들이 앞으로도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북유럽 신화의 경우 갖가지 콘텐츠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신화는 그보다는 아직 덜 활용되는 것 같다.

 

최근 슈퍼 엠과 방탄소년단 등 K-POP 아티스트들의 해외 진출이 눈에 띄고, 그에 못지않게 드라마, 예능 등의 다양한 한류 콘텐츠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세계 곳곳에서 탄생할 것이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사랑받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서 우리만의 신화와 이야기 역시 그 어떤 것과 견주어도 경쟁력 있는 매력 있는 콘텐츠가 될 것 같아 앞으로 더 많이 이야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쨌거나 이야기 속에 파묻혀 사는 세상이란, 너무도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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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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