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19호실' [도서]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1978)
글 입력 2020.10.0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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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여성과 픽션’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고는 여성이 쓴 픽션에 대해 말해야 할지,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쓴 픽션에 대해 말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러다 결국 여성의 창조성을 위해서는 독립적인 수입 연간 500파운드와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자기만의 방』을 쓴다.

 

비단 창조성이 아니더라도 모든 여성, 그리고 모든 존재에게는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에는 ‘수전’이라는 여성이 있다. 수전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한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고, 집이 있다. 하지만 수전은 “인생이 사막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도 없고, 아이들도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탓할 사람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수전과 그의 남편 ‘매슈’는 옳다고 여겨지는 ‘지적인 사랑’으로 ‘대단한 생활’을 떠받치고 있지만, 수전은 계속해서 공허해진다.

 

수전은 '평범한 익명의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집에 남는 방 하나를 수전의 방으로 지정한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하지만 “이 커다란 집에서 그녀가 자기만의 방을 하나 마련하는 일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이렇게 엄숙하게 토론해야 될 일인가?”

 

게다가 그 방은 여전히 집 안이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호기심에 그 공간으로 침범해온다. 수전 역시 온전히 홀로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수전은 프레드 호텔의 19호실을 ‘자기만의 방’으로 얻는다. 수전은 그곳에서 별다른 행동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

 

수전은 매슈의 아내도, 네 아이의 어머니도 아닌 익명의 존재로 공허하게 존재하는 그 시간이 소중했다. 수전은 매일 19호실로 가기 위해 입주가정부 ‘소피’를 고용한다. 소피는 수전 대신 안주인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다. 그 모습을 보며 수전은 일까지 그만두고 열중했던 아내와 어머니, ‘안주인’의 일은 대체 가능한 것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끝내 매슈는 수전의 19호실에 침범한다. 매슈는 수전이 불륜 행위를 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19호실을 드러내기 싫었던 수전은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그런 의심까지도 인정한다. 하지만 수전이 오로지 수전으로서 존재하는 그 공간을 매슈가 알아버린 순간, 그것은 결국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수전은 19호실에 누워 차분히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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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에 실린 또 다른 단편 「영국 대 영국」에는 조금 다른 상황의 여성이 등장한다. 소설의 화자인 ‘찰리’의 어머니는 수전과 달리 노동자 계층의 가정을 꾸리고 있다. 찰리의 어머니는 온종일 식구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한다. 그러면서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과자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찰리는 이에 대해 “따지고 보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보고 있”다며, 과자 포장 노동을 하는 대신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어머니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반면 어머니는 “나도 밖에 나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찰리와 가족들은 어머니가 하는 집안일에 대해 잔소리를 늘어놓고 시시때때로 평가하며 “하인처럼” 대한다. 심지어 남는 시간에 공장에서 일하겠다는 선택에 대해서도 왈가왈부할 정도다. 아마 어머니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부심을 찾으러 공장으로 갔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금전적으로는 손해일지라도 찰리의 어머니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할 권리를 찾아, 자신의 가치가 인정되는 곳으로, 또 다른 ‘19호실’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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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의 다른 단편들 또한 낭만적 사랑과 결혼 제도 이면의 인물들을 그린다. 낭만이라는 환상적인 포장지를 두르고 있는 성과 사랑, 결혼, 가정은 결국 인물들, 특히 여성에게 불안과 정신 분열을 안겨줄 뿐이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에서 주인공은 '진지한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며, 그것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했던 두 남자와 헤어지고, 심장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를 만큼 고통스러운 불행을 겪는다. 그리고는 사랑은 결국 “자신의 심장을 꺼내 서로를 향해 던지는, 상대가 자신의 상처를 제거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뿐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고민하던 도중, 주인공의 심장이 몸 바깥으로 나와 손에 달라붙는다.

 

주인공은 이 심장을 떼어 버리고 싶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주인공은 창밖을 내다보다가 한 여자가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는 것을 본다. 주인공은 하이힐에서 나는 조화로운 소리와 동작을 보고 묘한 즐거움과 흥분을 느낀다.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아주 짧은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즐거움을 통해 주인공의 손에 붙어 있던 심장은 느슨해진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 미쳐버린 여자를 본다. 여자는 자신의 애인이 불륜 상대인 여자에게 황금 담배 케이스를 줬다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마치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같은 말을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그 모습을 보던 주인공의 손에서 심장이 떨어져 나온다. 주인공은 미친 여자에게 그 심장을 준다.

 

여자는 심장을 소중히 끌어안는다. 주인공은 여자의 표정을 바라보며, 마치 여자가 애인에게 “이제 당신과 그 담배 케이스는 상관없어. 나한테는 은색 하트가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렇게 심장을 떼어준 주인공은 심장이 없다는 사실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감과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이제 그녀의 세상은 어디든 ‘19호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맥박이나 심장박동을 40년 동안 일일이 분석하면서 가만히 앉아있던 것이 실수임을 이제 알 수 있었다. 나는 완전히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다. 나의 빨갛고, 씁쓸하고, 기뻐하는 심장을 내 살에 영원히 붙여놓는 것이…….”


“심장이 없었다. 심장이 없었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런 자유라니…….”



나의 ‘19호실’은 어디인가. 나의 취향으로 가득한 곳,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타인과 사회가 요구하고 제공하는 ‘19호실’이 아닌, 스스로 만드는 나의 ‘19호실’. 나의 세상이 어디든 ‘19호실’이 될 수 있기를. 그곳이 설령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관습들을 벗어나는 곳이더라도, 나의 ‘19호실’을 잘 지켜낼 수 있기를.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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