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자기소개를 빙자한 글쓰기에 관한 자기고백

글 입력 2020.09.30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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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에디터 4개월로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끝낼뻔했다.
 
저의 섣부른 판단에 브레이크를 걸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글에 가득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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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책을 비롯한 문화예술을 좋아했던 사람들은 항상 끄적이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한 편의 완성된 글이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일기장에, 혹은 공개적인 sns에 생각을 끄적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대개 문화예술로 충만한 학창 시절을 즐기다가 가혹한 입시를 치르는 동안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을 잠시 접고 성인이 되어 비교적 여유로워졌을 때 문화예술을 다시 찾는다. 나 역시 그랬다.
 
대입을 정시로 준비했던 나는 불운하게도 고등학교 때 봤던 그 어떤 모의고사보다 수능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고 말았다. 수능 성적표를 받던 날 처음 받아보는 낮은 점수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나’라는 사람에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매달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수능 때는 모의고사보다 조금 더 높은 성적을 받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기적은 없었다. 항상 나를 세상의 중심에 놓고 살았던 나에게 세상은 평범한 실패를 처절하게 알려주었다. 가혹하고 잔인한 현실을 부정하기를 1년, 성인이 된 직후 1년 동안은 모든 것이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대학에는 왔으나 전공이 정해지지 않았고, 학교에 갇혀 공부밖에 몰랐던 고등학생 때와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는 여유로운 시간도 보냈다. 친구들 중 절반은 다시 대입을 준비한다 했고, 나머지 반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바빠서 각자의 생일 때나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상상한 어른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씁쓸하게 입맛만 다셨다. 생각보다 꽤 외로웠다.
 
수능 이후로 시험을 더더욱이나 싫어하게 된 나는 대학에 와서도 시험이 있는 과목을 최대한 피하고 레포트를 쓰는 과목을 골라 들었다. 매주 글쓰기 과제가 있어 다들 기피하는 과목은 모두 나의 차지였다. 꾸준히 성실하게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종종 글에 대해 교수님께 칭찬이라도 받으면 또 그것을 원동력 삼아 다음번엔 더 열심히 글을 써갔다. 그렇게 나는 읽기와 쓰기의 재활 과정을 거친 후 어렸을 때처럼 책을 비롯한 문화예술을 보고 감상을 끄적이는 시간들을 채워나갔다.
 
글쓰기는 나를 좌절하게 했던 성적표와 다르게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글을 쓰는 과정을 거칠수록 나의 존재가 뚜렷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다시 나의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채우지 못한 성취감과 상실감이 회복되는 기분이었다.
 
정신적인 방황을 멈추고 여러 학과들 중에서 글쓰기와 가장 관련 있다고 생각되는 신문방송학과 영문학을 전공으로 정했다. 그 무렵엔 외로움도 적당히 다스릴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그제서야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된 기분으로 공허한 느낌을 게워내고 인생 계획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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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마련한 노트 맨 앞에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 붙어있다. 꼭 대학생 때가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은 목록이다. 도서관 아르바이트, 시나리오 쓰는 법 배우기, 글쓰기 합평 모임 참여하기, 출판 편집 배우기, 온라인 서점 에디터, 언론사 인턴 등 다양한 희망 사항이 적혀있고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도 그중 하나였다.
 
목록 중에 가장 먼저 이루게 된 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였다. 차마 용기가 안 나서 작년에 알게 된 아트인사이트를 1년 가까이 마음속에만 담아 두다가 단숨에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담긴 지원서를 보름 가까이 고민하며 열심히 써냈다. 혹시 떨어질까 봐 주변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많은 경우에 내 글의 첫 독자가 되어 주는 엄마에게도 지원 사실을 비밀로 했다. 노심초사하고 있을 때, 합격 문자를 받았다. 한 통의 메시지는 올해의 나를 작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데려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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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오랫동안 소망했던 일을 성취했다는 데 기쁨이 있었고, 이름 뒤에 붙는 ‘에디터’라는 명칭도 왠지 멋있었다. 무엇보다 내 글이 뉴스라인에 송출되어서 다른 언론사의 기사들과 나란히 걸린다는 게 가장 신기하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에디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민이 생겼다. 멋진 글을 써내는 다른 에디터분들과 날 비교하며 내 능력에 대한 끝없는 의심을 펼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쓰게 되면 제발 사람들이 내 글을 클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한없이 쥐구멍으로 숨고 싶어졌다.
 
‘내가 글을 잘 쓰고 있는 게 맞나? 다른 분들 글들은 너무 좋은데… 내 글은 너무 부족한 것 같아. 책을 좀 더 읽어야겠어. 이렇게 부족한 상태에서 글을 계속 쓰는 게 괜찮은 걸까?’
 
그런 고민들을 반복하다 마음속으로 4개월간의 에디터 활동이 끝나면 컬쳐리스트로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쓰기를 잠깐 멈추고 공부를 더 하며 부족한 부분을 채운 후 글을 이어 써야겠다고 혼자 결론지었다. 대표님과의 첫 티타임에 이 결심들을 넌지시 말하려고 준비해갔다.
 
“아… 저, 컬쳐리스트는 하고 싶은데…”
“그럼 하세요!”
 
나는 아주 긴 시간 고민했는데 이렇게 1초 만에 나오는 즉각적이고 분명한 대답이라니, 굉장히 야속했다. 거기에 더해 한번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그만두게 되면, 더이상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씀에, 까딱하다간 아예 글을 쓸 수 없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들어 컬쳐리스트 제안에 감사 인사만을 보내며 그날 길을 나섰다.
 
그날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결심했던 대로 에디터 4개월이 끝난 후 글쓰기를 접었을까? 자신의 능력을 끝없이 의심하는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신뢰를 보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서 하던 일을 끝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단호하지만 나를 향한 신뢰가 담긴 대표님의 답변과 플랫폼 내에서 허락해주신 많은 기회들은 내가 지금까지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기고할 수 있게 한 물리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그 이후에 나는 4개월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쓸까 말까 고민했던 제8회 ART insight에도 결국에 참여했고, 놀랍게도 수상자가 되었다. 내가 수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가 올해 가장 기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상장을 받고 전문 필진이 되어보겠냐는 대표님의 제안에 역시나 또 고민은 했지만, 에디터에서 컬쳐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하는 데 걸린 시간보다 훨씬 짧은 시간 고민하고 전문 필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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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항상 나에게 풀지 못한 숙제와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글은 잘 쓴다는 칭찬을 종종 받아왔고 글을 쓰는 것에 왠지 모를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늘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컸다. 하지만 아트인사이트에 기고를 하다 다른 에디터 분들의 글들을 읽으면 내가 한없이 작아져 보일 때가 있다. 내가 쓰는 글은 크게 특출날 것 없는 그저 그런 글인 것 같고, 매일 책만 읽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매주 글을 쓰다 보면 금세 나의 밑천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그래서 글을 기고하는 동안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써내고 싶은 마음으로 누군가의 생각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글을 많이 쓰려고 했다.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한 논문과 책을 총동원해서 최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한 뒤에 글을 써야겠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것은 실패하지 않는 안전한 글쓰기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많은 정보를 찾다 보면 오히려 글을 못 쓰겠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다. 내가 생각한 것은 이미 누군가가 연구까지 마친 주제고, 나의 글보다 정교하고 유려한 언어로 표현된 다른 글들이 앞서 있곤 했다. 수년의 세월이 쌓이며 발전해온 방대한 연구에 비하면 이제 막 생각을 틔우는 나의 결과물은 초라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긴 하나, 그 빈약한 결과물을 내놓기가 부끄러웠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4개월만 하고 그만둬야겠다고 한 생각도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더 읽고, 더 보고, 더 공부하고 난 뒤에 쓰자.’ 이런 생각은 나의 이야기가 담겨야 할 에세이마저 침범하는 심각한 수준이 되었고, 엄마와 관련된 에세이를 쓰려는데 모성에 관련한 사회과학 서적을 뒤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했다. 끊임없는 텍스트 의존증에 경악한 순간이었다. 마치 내 글은 다른 이들의 생각이 메모지처럼 덕지덕지 붙은 혼란한 게시판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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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를 하는 4개월 동안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사진에서 보이듯, 내가 기고한 글의 대부분은 책 서평이나 영화나 드라마 리뷰였다. 즉 나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꺼내기보다, 존재하는 문화예술에 나의 감상을 조금 덧붙인 방향으로 쓸 수 있는 글. 그래서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잘 써내는 에디터 분들이 항상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아트인사이트에서 다른 에디터 분들의 글을 읽으며 글에 대한 고민을 가진 이는 나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 갔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들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사이를 진동하고 있지만 글쓰기가 주는 기쁨이 크기에 계속 글을 쓴다는 말을 했다. 글쓰기는 나를 아끼는 일이라는 이슬아 작가님의 말과 완벽주의적 감각을 버리고, 똑똑한 독자의 위치를 수용하는 데서 벗어나 어설픈 창작자가 되라는 이민경 작가님의 말은 나를 더욱 고무시켰다.
 
일련의 말과 글들을 접하고, 걷잡을 수 없는 욕심 때문에 이제까지 글을 너무 어렵게 여겨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항상 책을 더 읽고, 또 읽고, 계속 읽기만 하려고 하는 걸까? 어차피 계속 읽어봤자 읽는 순간에도 책은 출간되고 나는 영원히 이 세상 모든 책들을 다 읽지 못할 텐데. 왜 완벽하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할까? 그렇게 쓰는 걸 망설이다 보면 결국 나의 글은 존재하지 못하고 잊히고 말 텐데.
 
그래서 나는 아트인사이트에 남았다. 아직 쓰고 싶은 이야기가 노트 몇 페이지를 채울 만큼 한가득이고, 살아가는 한 계속 쓰고 싶은 이야기는 생겨날 것이다. 에디터를 할 당시에는 잘 쓰지 못했던 조금은 구질구질할 수도 있는 내 이야기도 쓰고 싶고, 언젠가 테마를 정해 나만 쓸 수 있는 에세이 탭에 글을 연재하고 싶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자기소개라기보다는 글쓰기에 관한 자기 고백에 더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에 흠칫하는데, 아트인사이트에서의 내 자아는 글 쓰는 사람이니 이것도 나름 자기소개가 아닐까, 하고 변명해본다.
 
꽉 채운 7개월 동안 꾸준히 글을 쓰면서 글에 대한 글을 쓸 만큼 글쓰기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다. 머리를 싸매며 힘들게 고민하고, 또 기쁘게 써 내려가며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나간다. 나의 글을 다들 어떻게 읽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좋은 인상으로 읽으실 거라고 긍정적으로 믿을 뿐이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가늘고 길게,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느껴가며 글을 계속 써보겠다.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 오셨고, 또 읽으실 모든 분들께 전합니다.
모쪼록 제 글을 즐거이 읽어주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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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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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띠띠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네요! 앞으로의 모습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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