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로이 안에서 [영화]

트로이 안에서 보여지는 운명과 그에 대한 모습들
글 입력 2020.10.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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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영원을 갈망한다. 그래서 자문한다. 삶의 흔적은 남는 것인가. 훗날, 사람들은 기억해줄 것인가. 우리는 누구였으며 얼마나 용감했으며 또, 뜨겁게 사랑했는지…

 

 

영원을 갈망한다는 것은 이미 영원이란 없다는 걸 전제로 깔아두는 말이다. 사람들도 그것을 알기에 살아 숨 쉬는 삶의 과정에서 흔적을 남기길 원하고, 그 흔적들을 보며 훗날의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길 바라는 것이다.

 

트로이 전쟁은 단순히 생각해서 아가멤논의 탐욕으로부터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많은 이들이 영원을 갈망하여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 발버둥 치는 것이 숨겨져 있다.

 

 

헥토르 : 왜 왔나?

아킬레스 : 수천 년 기억될 전쟁이니까.

헥토르 : 수천 년 후면 다 먼지로 변해

아킬레스 : 우리 이름은 남겠지.

 

 

통합된 국가가 아닌 여러 도시 국가로 나누어져 있던 그리스 중 미세네의 아가멤논 왕이 그리스를 통합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트로이와 견고하게 버티기에 결국 평화협정을 하게 된다. 그러나 평화협정을 축하하는 날, 트로이의 둘째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의 부인인 헬레네에게 다음날 같이 트로이로 가자고 말하게 되고, 둘은 정말 다음날 트로이로 돌아가는 배에 올라탄다. 이에 스파르타 왕은 자신을 우습게 봤다며 분노하게 되고, 형인 아가멤논을 찾아가 트로이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라 다짐한다.

 

하지만 트로이와의 전쟁에 미세네 최고의 전사 아킬레스는 불참하려 한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아킬레스를 찾아가 하는 말이 “역사에 기억될 거야. 이 전쟁도, 싸운 영웅도”였다. 그러나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한 아킬레스는 어머니를 찾아가게 되고, 그의 어머니한테서 오디세우스가 한 말과 비슷한 말을 듣게 된다.

 

“트로이에 가면 영광은 네 것이 돼. 네 승리는 수천 년 노래 될 거고 세상은 널 기억할 게다. 대신, 트로이에 가면 넌 못 돌아와. 네 영광과 죽음은 한 몸이니까.” 아킬레스는 결국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죽음으로 수천 년 이름을 기록되는 것을 사는 선택을 한 것이다.

 

처음 <트로이> 영화를 봤을 땐, 위에 적은 것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영화의 첫 내레이션과 영화 중간중간에 나오는,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말하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그랬다.

 

하지만 오랜만에 본 <트로이> 영화에서 나는 또 다른 걸 깨달았다. 운명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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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로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일리아스>는 <오이디푸스>와 더불어 비극적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그리스 최고의 비극 작품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영화 <트로이>는 <일리아스>의 여러 면을 수정해 드라마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에서는 '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로메스의 서사시에서는 신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인간은 신이 정해준 운명이란 굴레 아래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트로이>는 작중에 신의 비중을 줄임으로써 신 아래에 있던 인간의 운명을 되찾아 온다.

 

에릭 바나가 연기한 헥토르는 가정적이며 믿음직한 장남의 이미지이고,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아킬레스는 왕의 말도 따르지 않는 반항아의 이미지이다. 서로 상반되는 두 인물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전쟁에 나가면 죽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죽는다는 운명을 알면서도 회피하지 않고 맞선다는 것이다. 아킬레스는 전쟁을 떠나기 전 어머니에게서 이번 전쟁에 나가면 영광과 함께 죽음을 받을 것이란 예언을 듣는다. 또한 브리세이스가 밤에 자신을 죽이려 할 때도 "어차피 죽을 것 빨리 죽으면 어때"라는 말로 자신의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

 

헥토르는 동생이 데리고 온 헬레네로 인해 이길 수 없는 전쟁이 일어날 것임을 알면서도 전쟁에 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여 아내에게 아이들과 여자들을 피신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전쟁에 나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 헥토르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며 죽음을 맞이한 아킬레스도 모두 자신의 운명이 비극적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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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을 질투해, 인간은 다 죽거든, 늘 마지막 순간을 살지. 그래서 삶이 아름다운 거야. 이 순간 넌 가장 아름다워, 이 순간은 다신 안 와.

 

 

아킬레스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유한하기에 영원을 갈망하며, 유한하기에 아름다운 인간의 삶. 늘 마지막 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 만약 우리가 영원을 사는 신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순간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두려움을 극복해 맞서 싸워 무언가를 얻고 깨달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죽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언젠가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순간이 오고 뛰어넘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원하지 않는 운명에 맞서 싸우고 사랑하는 것을 지켜내려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운명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이것이 너의 운명이라고, 어느 날 신이 내게 말한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살아생전 무슨 일들이 앞에 펼쳐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끝엔 늘 죽음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우리의 삶에는 언제나 죽음이 있고, 그것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올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에 어쩌면 헥토르와 아킬레스처럼 무언가에 용기를 낼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죽을 수 있는 존재이기에 살아있다는 걸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게 아닐까.

 

처음 봤을 땐 역사에 이름을 남기길 원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두 번 봤을 땐 운명 앞에서 용기를 내는 모습들이 보였다. 세 번 봤을 땐 뭐가 보일지 기대되는 작품이다.

 

 

[김승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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