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도서]

단 하나의 사랑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녀는 알고 싶었다.
글 입력 2020.09.2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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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랑함은 다른 걸까?

 

언뜻 보아서 다를게 없는 두 단어를 구분해야 한다면, 사랑은 명사고 사랑함은 동사라는 형태적 구분은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내용적인 면에서는 무엇이 다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렵다. 우리 마음 깊숙히 자리잡은 감정이 바로 사랑이어서인지 나는 대답 대신 머리를 긁적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사랑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산문 한 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제목은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제목만 봤을 때는 작가가 사랑 비관론자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현재 시점에서는 제목이 다르게 해석된다. 이제는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라는 말에 끄덕일 수 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이 책과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책을 산건 작년 여름이었다. 강남 교보문고에서 난 김소연 시인의 책을 두 권 샀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에세이였다. 당시 나는 출국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프랑스로의 12시간 비행을 앞둔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들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 교환학생 기간 동안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파리, 베를린, 브뤼헤, 코펜하겐 등. 그럴 때면 가방 속에 종이책 한 권은 꼭 넣곤 했는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는 파리와 브뤼헤에 함께한 책이었다.

 

작은 판형을 가진 책이라 무게가 부담스럽지도 않다는 점이 좋았다. 딱 작년 이맘 때, 9월 말에는 벨기에 브뤼헤에 있는 어느 공원에서 이 책을 읽었는데 올해는 한국에서 읽고 있다. 아득한 기분에 휩싸이는 걸 느끼며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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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은 크게

 

1. 피부에 새겨온 것들

2. 어딘가에서 무사하기를

3. 세상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4. 나는 나와 나 사이에 있는, 신이 망각한 빈 공간

 

4파트로 나뉜다.

 

피부에 새겨온 것들에서는 사랑의 특성과 사랑하는 것의 정의에 대해 말한다. 두 번째 어딘가에서 무사하기를 파트에서는 서툴고 아픈 사랑이 나온다. 세 번째 세상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파트에서는, 그리움과 외로움같은 어둑한 감정들을 다루어 조금 더 어른같은 사랑을 해 나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 파트에서는 세 명의 시인이 나온다. 이병률, 최승자 그리고 페르난두 페소아 이 3명의 시인을 차례로 언급하면서 그들의 삶과 태도를 들여다본다.

 

이 책을 쓴 김소연 시인은 널리 알려지게 된 시인들이 그러하듯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책을 바로 구매할 독자층을 보유한 시인이다. 이번 산문에서 그녀는 사랑이라는 영원한 타자를 응시한다. 사랑을 한다는 것이 사랑을 소비하고 즐기는 것으로 치부되는 이 세계에서 사랑을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으로, 즉 '사랑함'으로 이해하려 한다.

 

사랑을 하나의 개념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그것의 유동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텅 빈 사랑'에서조차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애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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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은 프롤로그에 이렇게 말한다.

 

"멜로드라마처럼 사랑을 도구로 삼아 사랑을 소비해온 문화들을 우선 사랑의 적으로 간주해야 한다. 사랑을 낭만적 영역이라 치부하고 탐구를 외면해온 시선 역시 사랑의 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멜로드라마의 세례를 받고서 허구적인 사랑 놀음에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사이에, 우리는 그와 비슷한 격정적인 감정만을 사랑이라며 동경해왔다. 심장이 짜릿한 설렘과 심장이 저릿한 통증을 함께 겪고 싶다고 막연하게 사랑을 꿈꾸지는 않았을까. 거기에 어떤 약속과 어떤 책무가 뒤따르는지에 대한 예상은 그다음 순위의 관심으로 미뤄놓지는 않았을까."

 

이토록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라면 나는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사랑을 멜로로 연결 짓고 식상해하던 습관이 사랑에 대한 결례라는 걸 알고 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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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은 뒤 나는 '이 책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감상평을 적었다.

 

왜 이런 마음이 들었냐고 묻는 다면 이 책 속의 사랑은 영화나 드라마의 것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얘기하는 클리셰 범벅의 사랑에 신물이 난 사람이라면, 현실 속의 내 사랑은 이렇게 드라마틱하지 않은 데. 라는 생각을 해본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이다.

 

현실 속 사랑은 동사형이다. 사랑은 유동적이고, 두려움에 파랗게 질려있다가도 온기를 느끼면 금세 본래의 색을 되찾으며, 대담하면서도 겁이 많은, 끝없는 역설의 나열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람이 비루해지거나, 사람 앞에서 세상이 비루해지는 걸 자주 목격했다. 사랑이 그 비루함을 어떻게든 구원할 수 있다고 여겼다. 구원자로서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을거라는 예상과 달리 우리의 사랑은 쪼그라들거나 긴장하고 아픈 경우가 잦았다.

 

이병률 시인의 '그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라는 시가 있다.

 

내게 공중에 버려지는 고된 기분을

여러 번 알리러 와준 그 사람을

지금 다시 찾으러 가겠다고 길을 나서고 있는 나를

나는 어쩔 것인가요.

 

김소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어쩔 작정으로 찾아 나서는지 굳이 상상 같은 걸 하지 않으려 한다. 연유를 몰라도 그 행위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연유를 몰라도, 어떤 사연을 통과해야 이런 문장을 적는 사람이 되는지를 짐작해보는 일만으로도, 나는 완전하게 육중해지기 때문' 이라고.


여러번 아픔을 경험한 어른은 더이상 다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싶어'라는 말도 쉽사리 꺼내지 않는다. 사랑이 내포하고 있는 크고 작은 아픔들에 대해서 이미 너무 많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아픔들을 예감하면서도 굳은 결의로 시작한 사랑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랑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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