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닮지않은 초상화의 매력 [시각예술]

인물의 찰나를 담아내는 작가, 엘리자베스 페이튼
글 입력 2020.09.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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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그린 그림'이란 무엇일까?

 

오랜 시간 그림을 배우며 늘상 하던 생각이지만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했다. 입시미술을 배우던 때는 사실적으로, 대상과 똑같이 그리는 사람이 으뜸이라고 여겼다. 대학에 입학하고 몇 년이 훌쩍 지나고 나서야 재현적으로 대상을 모사하는 것의 테크닉과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근본적으로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의 미학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는데, 꽤나 명확할거라 여겼던 아름다움의 기준은 깊게 곱씹어볼수록 무척 가변적이고 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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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처음 접했을 때는 어떤 작품을 그리는 중인 과정처럼 느껴진다. 넓은 붓으로 스케치도 없이 날리듯 그린 것이 여실하게 느껴지는 모양새가 이 위에 무언가 더 얹혀져야만 할 것 같다. 비어있는 날 것의 캔버스 천과 드문드문 그려지다만 손도 그렇다.

 

그러나 여인이 머리에 두른 스카프를 보면 명확하게 패턴에 대한 묘사와 약간의 명함 구분이 되어있다. '묘사'라기보다 '표현'에 가까운 터치겠지만, 작가가 의도한 바는 이 페인팅 안에 전부 들어갔으며, 행여 작가 기준에 있어 미완성이라 할지라도 그로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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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izabeth Peyton, [David], 2016. ⓒ Elizabeth Peyton

 

 

엘리자베스 페이튼은 자신의 전시에 'Still life(정물)'이라는 이름을 붙였었다. 인물화가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정물'이라는 통칭을 사용한 것이다. 작가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뿐'이라는 말을 남겼던 것으로 미루어보면, 작가에게 있어 인물이란 창작과 표현의 대상이자 그 자체로 영감을 주는 뮤즈일 것이다.

 

 

회화는, 한 순간 순간의 시간의 축적이다. 혹은 시간을 들여 생겨나오는 것이다. 회화란, 그 자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건져내는 작업이다. 그림 속에 일어난 일을 단지 가만히 관찰한다. 회화는 시간과 함께 있으며, 그러므로 큰 영향력을 갖는 것이 된다.

 

- Elizabeth Peyton

 

 

작가가 남긴 또 다른 말을 보면 '정물'이라고 표현한 것은 회화로 건져낸 생동의 '상', 그 일부이자 전체임을 알 수 있다. 평면 속에 정지된 인물들은 작가가 의도한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는 의미다.

 

엘리자베스 페이튼에게 있어 페인팅은 그 자체로 시간을 담고, 기록하고,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계속해서 흘러가는 것이다. 그 매체로 그려진 대상 역시 정지해있지만, 동하는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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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izabeth Peyton, [Princess Elizabeth’s First Radio Address], 1995. Courtesy Ringier Collection, Switzerland. Bridgeman images. ⓒ Elizabeth Peyton

 

 

때문에 작가에게는 치밀하게 요모조모 묘사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벨라스케스의 바로크 식 과감한 터치와는 또 다른 완결미가 돋보이는 것이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그림의 완성은 곧 자신이 나타내고자 한 인물의 느낌과 생동감이 포착된 그 즉시였으리라. 더 이상의 터치로 그 순간을 뭉개어 그림 속에 가둘 필요가 없으리라.

 

미완의 작업같고, 투박해보이던 붓터치들은 어쩌면 평면 안을 계속해서 흐르게하려던 작가의 과감한 결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엘리자베스 페이튼의 그림들은 보면 볼 수록 매료된다. 형태가 어그러지거나 투박하고 가감없는 부분이 많은데도 어쩐지 끌린다.

 

'잘 그린 그림'이란 무엇인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무언가 생각하게 하고, 계속 보게한다면 그로서 그만의 가치가 있는 그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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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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