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여성혐오와 전쟁 체계 -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글 입력 2020.09.2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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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_표지.jpg

 

 

페미니즘 국제정치학이라니, 낯선 이름이다. 국제정치학이 무엇인지는 안다. 다양한 국가 간에 벌어지는 정치 문제. 이익 다툼과 영토 분쟁 같은 것들. 그런데 국가 간의 서열을 다루는 학문을 페미니즘으로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

 

저자 베티 리어든은 미국의 페미니즘 연구자이자 평화 교욱가다. 수 차례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목되었을 만큼 국제 평화에 헌신한 그녀는 1960년 후반 베트남전 반전 운동과 만나면서 평화 운동에 눈떴다. 컬럼비아 사범대, 국제평화교육학회 등에서 평화 교육을 하며 페미니스트 평화학의 선구자이자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리어든의 저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게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이다. 원제는 'Sexism and the War System'으로 직역하자면 '성차별과 전쟁 체계'라고 할 수 있다. 1985년에 출간했으니 한국에 번역되기까지 35년이 걸린 셈이다. 성차별 제도와 전쟁의 원리를 본격적으로 논한 첫 번째 지도(atlas)이자 페미니즘 인식론의 고전이다.

 

 

 

1. 성차별주의와 전쟁의 뿌리는 하나다.


 


"이 책의 요지는 성차별주의와 전쟁이 모두 폭력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 21p

 

 

리어든이 분석한 바 성차별주의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남성적 가치를 우월한 것으로 여성적 가치를 열등한 것으로 상정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인식이다. 그녀는 기존의 국제 정치와 세계 평화 연구자들이 전쟁의 근본 원인, 전쟁이 생겨나는 심리적 구조를 간과한 것을 문제시하며 논지를 펼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녀는 모두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학습하며 자란다. 이 관념에 기초한 위계질서가 전쟁이라는 거대하고 잔혹한 폭력을 가능하게 만든다는게 리어든의 주장이다.

 

하지만 기존의 국제정치에 대한 연구는 남성중심적이었고, 핵무기 경쟁같은 지엽적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이런 근원적 인식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몇몇 페미니스트를 제외하고는, 국제 정치학이라는 중대한 분야에 페미니즘의 시각과 이슈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평화 이슈에서 페미니즘은 부수적 문제로만 다뤄졌다. 하지만 두 분야에 모두 발을 담가본 연구자로서 리어든은 '성차별주의와 전쟁 체계가 하나의 공통된 문제'이며, 즉 '사회적 폭력이 상호 연관된 형태로 표출된 것'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했다.

 

그녀는 단순히 연관성만을 보여주는 걸 넘어 무엇보다 이런 인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변혁의 가능성을 설파한다. 평화는 전쟁이라는 잔혹한 폭력이 사라져야 가능한데, 그를 위해선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학습된 폭력의 욕구를 바꾸어야만 한다. 리어든에게 전쟁도 가부장제도 절대 자연적으로 고정불변한 본능이 아니며, 학습을 통해, 교육을 통해 변할 수 있는 산물이다.

 

 

"우리의 인간관계와 세계 정치체제를 변화시키는 의식적 학습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 앞에는 총체적 인간으로서의 가능성과 개인적 특성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투쟁이 놓여 있다. 이 "내부의 전쟁"을 어떻게 문제시하는가에 따라 변화의 질은 상당 부분 달라질 것이다.

 

- 36p

 

 

 

2. 전쟁 체제와 가부장제


 

그렇다면 성차별주의가 과연 어떤 고리를 거쳐 전쟁으로 표출되는 것일까? 리어든의 분석을 따라가 보자.

 

 

"나는 전쟁 체제라는 용어를 경쟁적인 사회질서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인간의 불평등을 전제로 하고, 권위주의적 원칙을 기반으로 하며, 강제적 힘에 의해 그 지위를 유지한다."

 

- 44p

 

 

전쟁은 적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전쟁의 시작은 위협이나 도발이 아니라, 적이라는 존재를 상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적으로 삼을 수는 없으므로, 적은 언제나 타자다. 리어든은 여기서 정신분석의 이론을 빌려와 타자란 우리 내면의 두려움을 외부로 투사하는 존재이며, 타자에 대한 원시적 두려움이 전쟁의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타자란 우리에게 위협적이고, 공포를 자아내고, 이들 때문에 실제로 전쟁이 일어난다. 사회는 그러한 타자성을 강화하거나 약화한다.

 

가부장제는 제도는 이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폭력적 위협이나 억압으로 표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남성의 일이자 권위를 획득하는 가치있는 일이라고 규정한다. 타자와의 조우에서 생기는 긴장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관계가 우/열, 강/약을 정립해야 하는 파괴적, 단절적 관계가 되는 걸까?

 

남성에게 힘과 권위가 있으며, 여성은 열등하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는 성차별주의의 분열적 관념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성차별주의는 여성에게는 나약성을 강조하고 보호받기를 강요하며 순종적 위치에 남기를 요구하고, 남성에게는 힘과 권위를 얻고자 하면 타자를 내리누르라는 사고를 학습시키며 공격성을 부추긴다.

 

전쟁의 동기는 경제적 이유 같은 합리성이 아니다. '전쟁은 그 본질상 낭비적인 것이다'. 전쟁이라는 과시적인 파괴 행위의 목표는 무엇보다 상대편을 위협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파괴자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광적인 군비 경쟁은 결국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낭비-도전의 순환을 이룬다.

 

과도한 군비 경쟁이 가능한 사회, 지금의 '사회 체제는 기본적으로 전쟁 체제이다.' 전쟁의 근원적 동기와 표출 방식을 알고 나면 전투적 유용성이말로 인간 집단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기본적 기준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이 관점을 통해 남성이 여성보다, 지배적 인종이 타 인종보다 직장, 산업계에서 혜택과 특권을 누리는 이유가 일부 설명된다. 모범적 인간상은 전쟁 수행 능력에 있으며 전쟁의 가능성이 있는 사회에서 자란다는 건 군사적 사회화(군사적 인간이 바람직한 인간상이라는)를 거치며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타자성은 단지 인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 부정적 형태로써 인간 가치의 위계질서, 즉 다른 성, 다른 인종이나 계급, 다른 국가의 시민, 혹은 다른 정견 지지자 등을 비인간화하는 근본적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 (...) 구별, 분리, 차이는 복잡하면서도 살아 있는 행성 위에서 생명 형태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연적 장치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타자성이 생물학적 필연성을 넘어서는 지점까지 활용되는 것을 인간 사회가 허락했다는 점이다. 성차별주의와 전쟁 체제는 둘 다 타자성을 폭력적으로 활용한다."

 

- 100p

 


 

3. 적과 희생자


 

 

"군대에 만연해 있는 권위적 구조는 사회 전체에도 만연해 있다. 타인에게 폭력을 사용하려는 근본적 의지는 개별 전쟁 행위가 의존하는 바로 그 기반이기도 하다."

 

- 96p

 

 

여성 공포는 군사적 사회화 과정에 필수적이다. 돌봄, 관계 중심, 의사소통에 중점을 두는 여성적인 가치를 품은 군인이 있다면 그의 전쟁 수행 능력은 형편 없을 것이다. 공격성과 폭력은 대화와 공존하기 힘들다.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사랑하는 이를 돌보고, 종종 그의 안녕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며 희생하는 것과 같은 여성적 특성은 영웅이 될 수 있는 요소이지만, 군대를 운영하는 방식은 결코 아니다. 남성들이 "다정한 동지"의 행복에 몰입하면, 그들의 용맹함은 줄어들고 전쟁의 승률도 낮아질 것이다.

 

이는 인간의 돌봄 역량에 대한 깊은 공포를 보여준다.  돌봄과 염려는 구조, 규칙, 질서보다는 인간과 관계를 지향한다. 권위주의는 이런 돌봄과 염려를 사적인 여성 영역에 한정시켜 천대시해 왔다. 전쟁을 통해 얻은 명성과 위업은 돌봄 역량을 등지고 폭력의 세계에 업적을 쌓으면서 이루어진다. 전쟁 체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역량의 일부를 억압하고 차별하며 그 힘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망과 타인을 돌보고자 하는 다정함이 마비되면서 남성은 여성다움과 자신을 분리시키고 이와 연결되는 걸 두려워하게 된다. 힘에 대한 숭배와 호전적 충동은, 그리고 그 과도한 표출은 인간 삶의 가능성을 증대하거나 완전한 자아 실현으로 이어질 수 없다. 폭력과 비이성적 두려움의 고리가 연결될 뿐이다.

 

 

"힘에 의한, 특히 잠재적으로 치명적인 힘에 의한 위협의 상존은, 구조에서든 사람들 사이에서든 어떤 형태의 관계에서나 매번 진정한 평등을 가로막는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알고 있으며, 선택적으로 평등을 추구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이해하고 있다."

 

- 137p

 

 

 

4. 변화는 선택의 문제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등장하는 평등한 돼지들처럼, 성차별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성차별주의자이며, 다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보다 더 성차별적일 뿐이다. 체제를 향한 적이 아닐지라도, 그 규범과 표출에 대해 우리가 묵인하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하며, 진정 변혁에 헌신적이라면 우리 또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는 어떤 통제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170p

 

 

리어든이 이 책에서 여성과 남성, 여성적 가치와 남성적 가치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차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에게 여성/남성 이분법을 이용한 성별 위계는 생물학적 법칙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었다. 성차별주의와 전쟁 체제가 인간 심리의 기저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고 해서 이들이 본능적이거나 선천적인언 아니다. 노예제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인간이 특정한 미래를 피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과 성차별 역시 가치 선택의 영역에 있다. 우리는 학습을 통해 이런 체계를 배우고, 학습을 통해 변화에 노출된다. 진정 세계에 평화가 도래하기를 원한다면 핵무기의 유무같은 상층부의 지엽적 문제에 골몰할 게 아니라 개개인의 내면 속의 가치 체계를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필수적인 것이다. 평화는 가부장제가 억압해왔던 인류 절반의 가치 해방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했듯 리어든에게 '평화는 전쟁의 부재가 아니다.' 평화를 명분 삼아 군비경쟁이 계속되어 군사주의가 강화된다면, 이로 인해 여성의 열등함을 전제로 하는 성차별주의가 지속된다면, 전쟁이 부재하더라도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전쟁가 마찬가지인 상태일 뿐이다. 평화는 고요함, 정적이 아니다.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잠든 듯 고요한 세상은 죽음과 다르지 않다. 평화는 끝없이 생동하는 움직임이다. 소용돌이치며 때로는 순환하는 변화의 흐름이다. 이는 각자의 목소리가 묵인되지 않고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있을 때, 개개인이 하나의 거대한 지배 집단으로 수렴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인간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유지하며 행동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서로를 염려하고, 아끼고 돌보고자 하는 마음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평화의 동기는 질서 확립이 아니라 사랑이다. 땅에서 움트는 생명의 분투, 결국 평화는 생명이고, 생명이 세계 속에서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투쟁이다. 그 투쟁 속에 평화가 함께하리라.

 

 

"평화 체제의 성숙도는 기존 규칙과 구조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과 도전, 그리고 새로운 인간적 성숙의 단계로 이끄는 새로운 조건에 대한 대응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마지막 분석을 덧붙이자면, 결국 성숙이란 변혁의 능력이자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역량이다. 변혁은 인간이 선택을 하고 현실을 바꾸고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변혁이란 생명이다. 페미니즘은 생명을 선택한다."

 

- 212p

 

 

한국은 아직도 분단 국가이고, 이산 가족, 전쟁 범죄, 동족 상잔 등 청산하지 못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음에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논의는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징병제와 군대 유무에 따른 차별적 시선, 군수 산업에 쓰이는 막대한 비용, 전쟁 체계와 군사주의는 지금도 한국 사회를 구축하는 큰 틀이다. 이 구조는 견고하고 너무 오래 지속되어 당연한 사회의 구조인 것 같다. 어디서부터, 무얼 말해야 할까? 리어든의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새로운 언어와 인식론을 선사한다.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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