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키리시마가 누구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영화]

글 입력 2020.09.1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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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학교는 세상의 전부일 때가 많다. 단순히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삶 속 모든 것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부활동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방과 후에도 부딪혀야 하는 일본의 고등학교는 특히나 그렇다.

 

수업 시간이 끝나도 벗어날 수 없이 얽혀 있는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학교는 작은 사회가 된다. 그 말은 곧 아이들 간의 관계가 ‘친하다, 친하지 않다’로 단순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 훨씬 복잡한 위계를 갖게 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위계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성적이, 일본에서는 아마 부활동이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핵심은 ‘어느 물에서 노느냐?’다. 영화부는 그 매니악함 때문에 학우들 사이에서 우스갯거리로만 남을 뿐이다. 반면 배구부라는 소속은 그보다는 훨씬 당당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작중에서 키리시마는 노는 물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와의 친분은 모든 친구들에게 단지 으쓱해지는 것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그들은 키리시마의 친구라서, 키리시마의 여자친구라서, 키리시마의 동료라서 학교에서 추앙받는다. 그렇게 중요한 키리시마를 영화는 초반부터 없애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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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대체 키리시마가 누구야?

 

영화를 보는 내내 들 수 밖에 없는 의문이다. 그러나 영화는 끝까지 키리시마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무슨 연유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둔 건지, 얼마나 매력적이길래 모두가 그를 따르는 건지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영화는 꾸준히 그를 둘러싼 학생들의 모습만을 다각도로 비출 뿐이다.

 

모든 관계가 변형되고 붕괴되어간다. 키리시마의 친한 친구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게 동요하고 가장 치열하게 키리시마를 찾는다. ‘키리시마의 부재’라는 단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작품이 끝날 때까지 텐션을 유지시키는 건 키리시마의 복귀를 간절히 원하는 친구들 때문이다. 그들은 키리시마가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자기 자신 역시 지킬 수 있는 존재들이기에, “키리시마가 돌아왔다”라는 한 마디에 옥상으로 정신 없이 뛰어올라간다.

 

한편 키리시마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관계의 친구들은 오히려 키리시마 주위의 그런 인물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은 때로는 독립적으로 때로는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일례로 단순히 여자애들 무리의 일원 1, 2에서 그치는 것처럼 보였던 미카와 카스미는 사실 배드민턴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매니악한 영화를 몰래 감상하는 취미를 가진 생동감 있는 캐릭터임이 밝혀진다. 또 키리시마의 부재로 동요하는 히로키와 그의 여자친구 사노를 멀리서 지켜보는 취주악부 부장도 마음의 혼란을 겪는다.

 

그보다도 더 먼 거리에 머물러 있는 인물도 있다. 대표적으로 영화부의 감독 마에다는 키리시마와 직접적인 친분도 인연도 없는 존재다. 그래서 작중에서 영화부는 전반적으로 다른 인물들과 뚝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부활동, 즉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에만 몰입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서 무시당하거나 비웃음받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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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영화는 결국 이방인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좇는 마에다로부터 교훈을 끌어낸다. 키리시마만큼은 아니지만 교내에서 우월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히로키가 마에다와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후반부 장면은 기묘하면서도 따뜻하다.

 

키리시마의 부재가 아니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그들의 대화에서 히로키는 마에다기 멋진 영화 감독이 되는 꿈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닌, 그저 좋아서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는다. 명확한 목적의식보다 단순히 현재의 재미만을 따라가는 삶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일까? 영화 내내 제법 단단하고 성숙한 인물처럼 보였던 히로키는 그 한 마디에 무너지고, 다급히 키리시마에게 전화를 거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그들에게 중심축이었던 키리시마가 무너지면서 자아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성장통을 겪는 중이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대체 왜 친구 하나에 그렇게 모든 걸 걸었을까 싶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 역시 키리시마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에게 얼마나 자아를 의탁하고 있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나비효과처럼 인물들이 위태로움을 겪고, 그 위태로움이 연쇄작용이 되어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훌륭하게 묘사해낸, 추천할 만한 성장 영화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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