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의 일기] 우리는 '교육 공공성'을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코로나19 이후, 대학은 달라져야 한다.
글 입력 2020.09.14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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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은 어쩌면 아주 명확하고 명쾌하면서도 조금은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배움의 장’이야말로 대학이 생겨나게 된 배경임을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지금 정말로 지켜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우리는 마음속 깊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움’은 무엇이고, ‘교육’은 무엇이며, ‘대학’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하고 수용하고 전환되어야 할 것인가?

 

코로나19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을 대하는 태도는 변화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재난 상황에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실했음을 우리는 보았다. 미래에,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고쳐 나가면 된다는 안일함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지금 당장 바뀌지 않는 이상, 재난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그럼에도 이 재난의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우리가 이를 통해 경각심을 더욱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장 눈 앞에 닥쳐온 이 거대한 소용돌이에 잠식되지 않으려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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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공공성은 왜 중요한가?


 

특히 대학과 교육부 등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등록금 반환’과 더불어 ‘교육 공공성’일 것이다. 전환은 ‘교육 공공성’에 대한 깊은 논의와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교육공공성’은 무엇이고, 이것은 왜 중요하게 이야기될까?

 

‘교육 공공성’은 헌법이 명시하는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의미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시 말해, ‘교육 공공성’은 ‘학생들이 가계 소득으로 차별받지 않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국가와 대학이 교육 비용을 부담하고, 대학에서는 이사회나 교수 등 위계에 의해 권력이 독점 당하지 않도록 평등하고 민주적인 운영을 만들어 나가는 것’ 전반을 의미한다.

 

유럽 사회는 ‘대학 공공성’을 학생과 시민사회의 혁명, 그리고 운동을 통해 이루어 냈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 “금지를 금지하라”, “모든 권력을 상상력에게” 등의 구호와 함께 시작되었던 68혁명 이후 유럽,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대학 공공성’에 대한 인식과 합의가 이루어졌다. 교육은 세대간 계약이며 대학은 국가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회적 합의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덴마크의 경우 대학을 포함한 모든 교육의 95%가 무상교육이며, 국가가 매달 지급하는 일종의 학생수당도 구축되어 있다. 독일의 경우 등록금에 의료보험비, 교통비, 기숙사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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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과 정부의 입장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과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우선 한국의 사립대학들은 ‘수혜자부담원칙’을 고수한다. 말 그대로 혜택을 받는 쪽이 그에 대한 서비스 값을 지불하라는 논리다. 그 논리에 따르면 대학은 공급자고 학생은 수요자며 교육은 서비스다. 소비자인 학생은 그에 맞는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더 좋은 서비스를 누리고 싶으면 더 많은 돈을 내야 하고, 그에 맞게 더 많은 브랜드 가치를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이다.

 

이러한 대학의 입장에는 2가지 모순이 있다. 하나는, 앞서 말했듯 교육은 서비스로 이야기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은 상품이 아닌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권리이자,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에 핵심적인 요소다. 둘째로, 설령 교육이 서비스라 할지라도 대학들은 자신의 입장과 전혀 다른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1학기는 분명 지난 학기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음에도 대학들은 같은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

 

‘상한 음식 배송해 주고 환불 못한다고 우기는 격’이라는 누군가의 비유가 아주 적절하다. 또한 기업 또한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질수록 권한이 더 많아지는 것처럼, 대학의 논리대로라면 운영금의 6-80%가 학생의 등록금으로 돌아가는 사립대학의 경우 누구보다 학생이 학교의 의사결정에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한다.

 

정부 또한 여전히 ‘대학의 자율성’에 맡기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로 정부가 ‘교육 공공성’에 대한 인지가 있고 이것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한다면 계속해서 ‘자율성’이라는 단어 뒤어 숨어 문제를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정부의 대응은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도, 문제 원인에 대한 인지도 부족해 보인다. 처음 등록금 반환 추경예산은 2718억원으로 결정되었으나, 기재부의 반대로 인해 결국 1000억으로 결정되었다. 교육 공공성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더욱 대학 등록금에 대해 개입하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논의했어야 했다.

 

수혜자부담원칙과 대학의 자율성으로 인한 결과와 피해는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음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결코 새로이 생긴 문제가 아니며, 근거 없는 예술대학 차등등록금 문제 -인문사회 대비 예술대학생이 추가로 내는 등록금은 32만원~165만원이며 이는 처음 책정될 때부터 인문사회의 1.2배, 1.3배로 책정된 것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와 열악한 교육 환경, 학과 통폐합 등 각종 문제들로 드러나왔다. 결국 이 모든 문제들은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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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공공성을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우선은 학생 개인이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당사자의 실천을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보다 당사자가 요구할 때 자신의 권리는 지켜질 수 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다. ‘학생은 다른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는 말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모순적인 말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학교에서는 학생회가 있다. 그러나 학생회는 단순히 ‘간식 사업’하는 곳, 이라는 인식이 있는 만큼 그 의미와 의무, 그리고 책임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학생회는 단순히 학교의 일들을 완수해 나가는 것 외에도 학생 공동체의 공동의 문제들을 담론화하고 문제해결을 함께 해 나가야 한다. 문제들이 그 학교의 개별 문제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사회 전반의 구조 문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그에 대한 연대와 공동체 의식을 갖고 함께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또한 학생뿐 아니라, 학내 구성원인 연구자, 노동자가 함께 연대하여 감각들을 나누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학내 다수를 이루는 구성원들은 오히려 권한이 더 적다는 소수자 감각으로 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학교 외부의 시민사회와 이러한 감각을 나누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고등교육 공공성 운동을 함께 하는 단체들과 함께 운동하며, 결국에는 국회 교육위, 교육부로부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을 하는 이유가 ‘이 공동체와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이것이 타락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이 문제에 목소리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고등교육의 공공성 확보’는 결국 대학/비대학 차별, 임금차별, 학력 차별, 학벌 차별, 이 모든 사회 격차와 연결되어 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싫으면 대학을 안 가면 되지.’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자율’인가? 사회적 합의의 맥락 속에 자율은 다른 의미로 이야기될 것이다. 단순히 문제를 회피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자율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 나는 68혁명의 슬로건처럼 ‘모든 억압에 반대한다’. 학력과 학벌로 차별받지 않는, 모두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교육받을 수 있는 세상을 원한다. 코로나19, 우리는 이 위기 속에서 위험을 기회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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