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도 보통의 날을 산다

보편적인 삶을 산다는 것
글 입력 2020.09.0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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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삶을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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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할 것 없이 살아왔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남다른 일 없이 무던히 지나갔다. 열아홉, 어두운 독서실에서 별천지의 대학 생활을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20대 초반의 모든 꽃피는 날도 중간고사를 위한 시간이었다. 벚꽃의 꽃말은 시험 기간이라는 이야기는 대학에서도 똑같이 통했다.

 

문화생활을 하면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20대를 꿈꿨지만 시험과 방학을 몇 번 했을 뿐인데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남들처럼 휴학도 하고 알바도 하고 자격증 시험도 준비했다. 학생 신분으로 취직해야 유리하다는 얘기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취직하는 게 유리하단 얘기에 누구는 졸업을 유예했고 누구는 빠르게 졸업했는데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졸업할 때가 되었으니 그냥 졸업했다.

 

졸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했다. 서류만 미끄러지길 여러 번, 면접을 보고 나서 내가 너무 무능력한 것 같아 생각이 많아진 채로 집으로 돌아오길 여러 번. 공고와 달리 이상한 회사라 입사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고, 면접을 보고 돌아 나오는 순간부터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첫 출근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채로 친구들에게 뭐가 필요하냐고 물어봤고, 출근해서는 한동안 아무 일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게 눈치 보여서 뭐라도 하려고 했다.

 

오래지 않아 점심시간과 월급날을 기다리는 직장인이 되었고, 서너 시가 되면 탕비실에서 과자를 챙겨 먹는 루틴도 생겼다. 윗분들이 출장 가면 달라지는 사무실 분위기에 웃기도 하고, 재미없는 회식에 친한 직원들끼리 투덜거리기도 했다. 비 오는 월요일 아침 출근길이 싫어졌고, 해가 길어져서 일찍 퇴근하는 기분을 내게 만드는 여름의 초입이 좋아졌다.

 

그러면서 보편적인 삶에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만큼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땐 나이 드는 게 큰일인 줄 알았는데, 남들 하는 거 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더니 공감의 폭이 넓어져 있었다. 간접경험이 아니라 직접경험으로 알게 된 것들. 어렸을 땐 이해하지 못하던 것들을 깨닫던 많은 순간들. 돈 많은 백수를 꿈꾸며 사회 생활하지 않는 삶을 희망했는데, 경험하고 나니 시간을 돌려 어린 날 돈 많은 백수가 되더라도 사회 생활은 하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가까운 사람들의 얘기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으니까. 소중한 사람을 더 이해하고 싶으니까.

 

조금이라도 덜 보편적인 삶을 살면 이해하고 이해받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나나 친구 중 누군가가 보편적이지 않은 생활을 하더라도 우리는 당연히 서로의 힘듦을 위로해줄 테니 꼭 같은 경험을 할 필요는 없는지도 모른다. 보편적이지 않으면 않는 대로 장점이 있을 테니 '이해 못 하는 넌 여기서 빠져'라는 의도로 말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내가 남들 사는 대로 살면서 나이를 먹었더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릴 때는 평범한 게 싫었다.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하면 어른들은 평범한 게 좋은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고, 나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자기중심적인 어린 나이를 지나 더 넓은 세상에서 남들과 어우러지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경험하기 전까지는 ‘보통’과 ‘평범’이 어려울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있으면 자꾸자꾸 뒤로 떠밀려 내려가기만 했다. 남들처럼만, 보통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평범하게 회사에 다닌다. 아니, 회사에 다니는 것만으로 나는 평범함에 많이 가까워졌다. 이제 출근하면서 퇴근하고 싶어지는 수많은 사람의 기분을 안다. 축의금의 단계와 애매한 초대가 불러오는 미묘한 감정을 안다.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마음을 안다. 평범하기 싫었다가, 평범하기를 바라다가, 평범해졌다. ‘남과 같음’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지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와 이런 얘기 하면 우습게 들릴 텐데, 나는 반골 기질이 강했다. 남들 다 하는 일 나까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소속감을 느끼는 것도 안 좋아했다. 남들과 같이 묶이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좋았다. 어딘가 섞여서 내가 흐려지는 일이 싫었다. 찍어낸 듯한 정형화된 삶을 살기 싫었고, 어떻게든 규격화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지금 보통의 삶을 살면서 이게 제법 좋다고 글을 쓰고 있다.

 

그땐 몰랐으니까. 네가 아는 걸 나도 아는 것. 우리라고 묶을 수 있는 공통된 무언가. 같은 걸 공유하는 데서 오는 위로가 있고, 그걸 보편적인 삶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보통의 날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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