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겹겹의 시선에 맞서는 어떤 시작 - 69세

글 입력 2020.08.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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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벼운 성적 희롱부터 강간과 살인이 숨 쉬듯이 일어나는 사회이지만 이를 보편으로 일반화하지 말라는 것처럼, 엄연히 실재함에도 가려지는 진실들이 있다. 노인 성범죄의 가해 인구와 피해 인구 모두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그 근거라는 나름의 분석 속에서 범죄 방지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존재는 말끔하게 지워진다. 영화의 러닝 타임을 가득 메우는 피해자를 향한 폭력적인 시선과 말들이 더욱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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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 효정을 상대로 간호조무사 이중호가 성폭행을 가하는 상황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화면 속에서 진료 중인 두 사람의 대화만이 들린다. 효정을 향해 발화되는 칭찬을 빙자한 이중호의 성희롱이 유독 섬뜩하게 들리는 이유는 줄거리를 이미 알아서만은 아니다. 전제된 위계 속에서 이뤄지는 대상화와 타자화의 의도를 내포한 칭찬들은 실제 일상에서도 수많은 여성에게 두려움을 주기 때문이다.

 

선의로 그랬다는 이유는 피해 사실을 쉽게 부정하고, 이는 여성을 남성의 성적 위압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정당화적 사고로 뒷받침된다. 가해와 그 변명은 쉽고, 피해는 그 사실의 인정조차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살고 있기에 시작 부분의 대담이 더욱 공포로 다가온다. 우리는 성폭력이 발생한 이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대강 예상할 수 있다.

 

사람들은 성폭행 사실을 믿지 않는다. 피해자인 효정이 69세의 노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효정이 사건을 신고하러 경찰서에 갔을 때, 의심의 눈초리를 쏘던 경찰은 이중호가 병원의 친절 담당 간호조무사라는 점을 들어 그가 친절이 과했다는 농담을 던진다. 사건을 수사하는 내내 효정의 치매를 의심하며, 법원에서도 나이 차를 근거로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가해자뿐 아니라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2차 가해를 일삼는 사람들과도 싸우고 진실을 입증해야 하는 성범죄 피해자의 현실이 뼈아프게 느껴진다.

   

영화에서 실제적으로 재현된 가혹한 시선은 노인을 향한 혐오에서도 기인하지만 우선적으로 여성이라는 존재와 성폭행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의 중첩으로 인해 발생한다. 효정을 포함하여 현실의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그러하듯 성범죄 사건을 판단할 때 그 이유를 피해자와 여성에 초점 맞추는 시각은 피해자를 일정한 조건에 맞춰 검열하고 조건에 맞지 않는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기 마련이다.

 

이는 그것이 폭력의 형태일지라도 여성이 남성의 위압을 원하며 그러기 위해선 여성에겐 ‘여성으로서의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자격을 곧 ‘젊음’으로 규정하는 겹겹의 혐오와 맞물려 2차 가해를 재생산한다. 영화 속 경찰이 폭력을 ‘친절’로 해석했음에도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사고방식이 개인적인 오판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지배적인 통념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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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정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가 젊은 성폭행 피해자 여성에게 가해지는 것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조심했어야 한다는 말은 피해자라면 누구나 당하는 2차 가해이며,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 경찰과 법원의 판단처럼 노인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자격’, 더 나아가 ‘성폭행의 피해를 입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폭력적인 사고방식은 노인이 아닌 여성의 피해 사실을 부정하는 데에도 쓰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자격’을 따지는 것 자체가 2차 가해다. 성폭력은 그저 폭력이며 가해자가 피해자를 향하여 가해를 저질렀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피해자의 자격’ 때문에 벌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나 남성과 가해자에 대해 지나친 관용을 베푸는 것과 반대로 여성과 피해자에게는 그렇지 않은 시선은 또 다른 혐오를 덧붙여 피해자의 자격을 박탈하기에 이른다. 어린 남성은 어려서, 젊은 남성은 한창때라서, 노인 남성은 커서도 애라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관대한 시선은 여성에게는 가닿지 않는다. 전자가 가해자이고 후자가 피해자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심지어 그 차이가 더욱 심해지기도 한다. 효정이 치매를 앓고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기반으로 사건을 부정하려고 하는 영화 속 경찰들을 보며 주취 상태를 ‘감형 사유’로 참작하는 한국의 현실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았다.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정도로 엄격한 효정을 향한 시선은 가해자를 비호하는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가능해진다. 평판도 좋고 ‘멀쩡한’ 청년, 가해자 이중호를 감싸기 위해 작동되는 겹겹의 혐오는 온전히 효정의 몫이었다.

 

효정을 향해 자주 발화되는 ‘여전하다’는 대사는 그가 겪어야 하는 중층적인 혐오의 현실을 체감케 한다. 악의 없는 칭찬을 의도했을지언정 여성은 대상화되고 타자화된 시선으로 젊고 예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 ‘여전히’ 가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가치를 상실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발화이기 때문이다. ‘노인처럼’ 입고 다니면 무시하고, 꾸민다고 해도 안전하지 않다는 효정의 대사 역시 이러한 현실을 함축한다. 곱해지는 혐오의 현실은 그것을 부정하는 시선까지 더해져 더욱 참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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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효정이 급기야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기억과 다른 경험을 뒤늦게 떠올리게 된 효정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의심하게 된다. 온전히 본인의 논리에서 파생된 게 아닌 주변의 끊임없는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시도에서 기인한 의심이기에 더욱 쓰다. 홀로 집을 떠난 효정이 아픈 기억과 싸운 후 스스로의 언어를 찾아 고발문을 적는 장면이 클라이맥스로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다. 혐오의 종착점은 혐오의 대상 자체를 없애는 것이고, 그 종착점까지 내몰린 효정이 스스로 돌아서서 혐오의 주체와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건이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나지만 어떤 종류의 시작을 보여준다. 효정의 고발문은 옥상에서 바람을 타고 흩어져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폭력을 가시화할 것이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수많은 효정에게 확신을 줄 것이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처해야 하는 합리적인 현실을 일깨울 것이다.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효정과 함께 하는 수많은 언어들이 세상을 향해 흩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러한 시작이었기 때문일까. 영화관을 나오면서도 이고 나온 무거운 고민이 결코 막연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것, 그리고 그곳으로 의심 없이 나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이 있다. 어두운 현실을 비추는 빛들이 모여 봄은 올 것이고 눈물은 빛날 것이다. 이 영화가 수많은 효정에게 그러한 봄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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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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