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대의 가치를 읽어낸 예술 축제 - 프린지페스티벌 2020

글 입력 2020.08.2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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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고 규정과 관념의 변방에서 즐기는 독립예술축제 프린지 페스티벌. 이 페스티벌이 지난주, 1년만에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렸다. 비록 코로나 사태 때문에 공연 수는 많이 줄었고 인원 제한으로 인해 관람 30분 전부터 미리 예약을 했어야 했지만, 그런 섬세한 계획으로 인해 오히려 마음 놓고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실내 공연 없이 야외 공연으로만 진행됐으며, 실내라 하더라도 반개방된 공터나 복도를 활용해 안심하고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어쩔 수 없이 진행되는 공연의 수가 확 줄어버린 건 아숴웠으나 전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동선과 시간표를 짜느라 골몰했다면 올해는 오히려 클리어하게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처음 프린지 페스티벌에 방문했을 때에는 우왕좌왕하기 바빴는데, 작년에 한번 참여했었기 때문인지 이번에는 제법 페스티벌을 편하게 즐기는 태가 났다. 연일 비가 쏟아지던 떄라 공연을 볼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내리쏘는 빗줄기와 습한 공기를 헤치며 곳곳을 쏘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이같은 현장의 컨디션은 흥미롭게도 야외 공간 곳곳에서 펼쳐지는 공연의 맛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사회를 잠식한 코로나 사태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이번에는 왠지 재난 상황에서 마주한 인간의 본성을 다룬 이야기가 많았다. 유쾌하기보다 조금 찝찝하고 씁쓸하기도 한 플롯을 읽어나는데 어둡고 축축하게 내려앉은 공기가 현장감을 더했다. 이런게 바로 프린지 페스티벌만의 매력이지 싶다.

 

프린지에 와 있으면 하루의 시간이 정말 순삭이다. 이 매력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현장에 꽤 많았다. 공연마다 입장 마감 인원이 꽤 빠르게 차버릴 정도로, 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이다. 아예 온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온 사람은 없는 매력적인 예술 축제 프린지 페스티벌. 벌써부터 설레는 맘으로 내년의 프린지를 기대하면서, 인상 깊었던 공연 몇 가지를 떠올리며 축제의 여운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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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함의 공식 - <증명>


 

도착해서 처음 본 공연이 증명이었는데 너무도 강렬해서 이후의 시간을 다 지배해 버릴 정도였다. 장르에 움직임극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굉장히 궁금했는데, 말 그대로 사람의 움직임을 본질적으로 해석해 그 행위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라반 움직임 분석법을 기반으로 텍스트의 신체화를 시도하는 집단이라고.

 

전달하려는 메세지와 전개 방식 모두 굉장히 밀도 높게 구현된다. 극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공간 곳곳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한 고시원 관리인과 공간을 점차 빼앗겨가는 세입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하자 곳곳에 기괴하게 율동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주인공의 일상적인 행동이나 고통받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 전에는 최소한의 집기만 배치된 빈 방이었으나 이제는 그 공간이 감시자의 시선과 세입자의 불안감으로 가득 차 미쳐가는 상황을 표현한 듯 느껴졌다.

 

그 표현이 이전에는 본적 없을 정도로 징그럽고 무섭고 혐오스럽기까지 한 몸의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점이 흥미롭다. 움직임과 발성만으로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극에서는 인물의 대사마저도 단순히 내용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기괴하게 높낮이가 조절된 목소리와 고장난 것처럼 예측할 수 없이 움직이는 신체의 모습은 매 순간을 파편화된 비명으로 채운다.

 

동시간에 일어난 일을 다루는데도, 움직임과 소리를 다층적으로 활용해 현장의 모습 자체를 패치워크나 콜라주 한 것처럼 극도로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분명 편집 완료된 영상이 아님에도 움직임만으로 공간에 거대한 필터를 입힌 것처럼 강렬한 효과를 각인했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하나의 레이어로 삼았음에도 극의 다양한 요소가 레이어로 켜켜이 쌓여 감각을 고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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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212 - <인곡 : 종말앞에서>


 

음악, 무용, 낭독으로 구성된 퍼포먼스 공연. T2 건물의 거대한 공터에서 진행된 이 공연은 오직 프린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극이었다. 한쪽에 거대한 벽이 서 있고 바닥에 네모난 돌들이 흩어져 있는 공간 특성을 아주 세밀하게 고려하여 진행됐으며, 특히 비가 내리고 축축했던 현장의 컨디션을 통제 불가능한 환경적 요소가 아니라 극의 일부로 받아들여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 점이 인상깊다.

 

극은 각자에게 찾아온 저마다의 종말을 보여주며 모든 것이 끝나버린 세상을 맞이하고 이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나오는 인물은 대체로 비틀거리고 기어다닌다. 동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듯. 죽음과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감각을 심는다. 형태를 알 수 없는 방안에 갇힌 자, 기이한 생명체들로 가득 차버린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인류가 되어버린 자, 홀로 전쟁에서 적들을 무찌르고 혼자 남은 자…….

 

특히 첫 번째 이야기가 인상깊다. 종말이 온 세계의 모습을 상상치 못한 기이한 설정으로 묘사하고 그 가운데 살아남은 자의 고통과 두려움을 거대한 공간과 하나된 연기로 설명했다. 거대하게 솟은 벽 앞에서 인간이 너무도 작아보인다. 그리고 그 벽을 마주하고 여자는 쉼없이 신을 찾는다. 홀로 남은 괴로움에 미쳐버리기 전에 구역질이 치밀어오를 정도로 발버둥치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매 순간 증명하고 신에게 구원을 외친다.

 

여자는 계속 비와서 축축해진 바닥을 헤집으며 바닥을 기고, 젖어서 무거워진 검은색 치마자락을 휘감고 재앙에 압도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시선이 그녀의 세상을 넘어 지금 이 재난 가득한 세상에 닿아 있는 듯해 무서울 정도였다. 이러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극은 절망하고 무너지는 세계에서 생존만이 단 하나의 가치이고 승리이지만, 동시에 홀로 남아 생존을 만끽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허한 일인지 느끼게 만든다.

 

 

 

민수민정 - <어서오세요, 아름다운 나그네여.>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던 민수민정의 <어서오세요, 아름다운 나그네여.>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에 음미하기 좋은 사운드 미디어아트 공연이었다. 건물로 이어지는 넓은 복도 벽면에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맞은편 계단 위아래에 좌석을 설정해 편안히 앉아서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조개의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풀어낸 영상과 개인적인 여행의 기억을 환기하는 아름다운 유럽 풍경이 교차하며, 그 위로 몽환적인 음악이 흘러 마음을 녹진하게 풀어낸다.

 

모두의 몸과 마음이 지친 코로나 시대에서 만난 잔잔한 오아시스 같은 장면이었다. 잔잔히 읊조리는 듯한 아티스트분의 내레이션과 노랫말, 그리고 곁에서 차분히 이어지는 기타 연주까지.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찬란한 햇살과 묘하게 대비되는 문화비축기지의 밤 하늘, 축축한 공기의 내음이 어우러져 잊고 지내던 여행의 감각을 자극했다.

 

잔잔한 음악을 통해 페스티벌을 매듭지어 오늘의 완벽한 기승전결을 만들어냈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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