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멈출 수 없는 책 읽기의 즐거움 - 책 좀 빌려줄래? [도서]

책 덕후를 위한 카툰 에세이
글 입력 2020.08.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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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덕후를 위한 카툰 에세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책 덕후'라고 할 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의심이 먼저 들었다.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온종일 책만 끼고 산다거나, 유명한 고전을 줄줄이 꿰고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간의 민망함을 감추고 목차를 펴보았을 때 괜스레 웃음이 났다.

 

어쨌거나 '좋아하고 싶은 마음'도 엄밀히 말하면 이미 좋아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있지만 '덕후'인가…? 하는 의심이 드는 분들도 목차를 보면 마음이 달라질지 모른다. 목차부터 공감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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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고 앞의 몇 장을 읽고 나서 연필을 찾아들었다. 마치 누군가와 유쾌한 농담이 섞인 대화를 하는 것처럼 공감되는 말들이 많아서 나도 그 위에 내 이야기를 얹고 싶은 욕구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맞아 맞아, 정말 그래.' 하는 마음으로 말풍선 옆에 맞장구를 치는 말들을 사각사각 적어가며 책장을 넘겼다.

 

재밌었던 부분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10페이지의 '독서가에게 축복을'을 그중 하나로 언급하고 싶다. 지금보다도 어릴 땐 유독 판타지 장르의 소설을 좋아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모든 것들이 현실에서도 이루어졌으면, 특히 나를 주인공으로 온갖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져 모험을 떠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던 것이 생생하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여전히, 삶을 뒤집을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마음 한 구석에서는 늘 바라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재밌고 든든하게 느껴졌다.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은 108페이지의 '만족'이다. 요즘 글을 쓰면서 신기하고 놀랍고, 영광스러운 경험을 살면서 처음으로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소식들을 처음 접했을 때는 마냥 좋고, 기뻤는데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곧잘 불안해졌다. 내가 봐도 이렇게 모자란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얼마나 형편없을까? 하는 생각에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만족'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만족이란 없을 거야. 그러니 인정을 목표로 삼지 말고 처음처럼 나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써봐.'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111페이지의 '완벽'에서도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내가 절대 쓰지 못할 완벽한 책, 내가 절대 떠올리지 못할 완벽한 아이디어, …, 완벽이란 세상에 없는 것. 완벽은 머리에서 지우고 뭐든 실행에 옮겨보자.'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보고, 내가 빚어낸 것들을 보면 어떤 순간에도 만족하기 어렵고, 완벽해지기 어렵다. 그러니 답은 '그냥 하는' 것. 그냥 해보자. 이렇게 다짐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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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목차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목차가 참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다. 어느 책 덕후의 14가지의 고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고백 중 나는 얼마나 해당되는지 세어보는 재미도 있다. 내가 처음 목차를 훑어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다. 두 번째 챕터, '남들 앞에서도 책을 읽어.'를 읽었을 때였다.

 

다른 사람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학생, 고등학생일 때는 책 읽는 모습을 남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내 수많은 이미지 중 하나일 뿐이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책벌레', '문학소녀' 이런 별명들이 썩 달갑지 않았다. 마치 나를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성질을 지닌 어떤 것으로 분류하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심리, 인간관계, 성격 등에 관련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히 책도 그런 분야 위주로 선택해서 읽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습시간이라 책을 읽고 있다 선생님의 부름으로 잠시 교무실에 다녀왔을 때였다. 친구들이 유독 키득거리며 '이거 네가 읽는 책이야?' 하며 물었을 때 창피하다 못해 화가 나는 경험을 했다.

 

그때 읽었던 책의 제목은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였는데, 나는 그때 내가 읽는 책이 곧 나 자신의 이미지로 고착될 수 있다는 것이 갑자기 두려워져 다른 친구들 앞에서는 남들이 '많이' 읽는 베스트셀러 소설만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그다지 책을 읽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글을 읽는 것보다 재밌는 것들이 세상에는 널려 있었다. 이쯤에서 이 책의 9페이지, '나는 단단히 책에 빠졌어.' 챕터의 '독서가의 변천 단계'에 의하면 독서가들은 책에 푹 빠져 지내다가 책에 크게 한번 데고(5단계), 책을 등진 후(6단계), 7번째 단계, 책을 재발견하게 되는 지점을 거치게 된다. 나를 다시 책의 세계로 인도한 것, 다시 말해 7번째 단계로 이끈 책은 바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그냥 소설이 아닌 희곡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무대에서 열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는 환호를 지르고 싶은 것을 겨우 꾹 참았던 기억이 난다. 아주 오랜만에 책으로 '신이 나는' 경험을 하고는 정말이지 쏟아지는 행복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특히 이 책을 읽고 나의 '이상'을 되묻게 되어 더욱 의미 있고 흥미를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날을 기점으로 다시 나를 즐겁게 만드는 '책'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치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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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이 책은 책과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것들을 도구 삼아 유쾌한 말장난을 섞어 공감과 위로, 즐거움을 전한다. 아마 책 덕후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책을 읽고 싶어 지는 마음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책에 관심 있는 누구라도 이 책을 통해 아기자기한 그림과 재치 있는 코멘트를 만나 보길 권하고 싶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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