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미래의 여름'에서 본 동아의 성장 [공연]

글 입력 2020.08.2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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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갓 성인이 된 시골에 한 여자와 한 남자.


 

여자 ‘동아’는 부모 없이 자라 성인이 되어 한 남자 찬우를 만나 둘은 연인사이로 발전한다. 동아는 찬우에게 사랑에 푹빠져 그녀는 온 삶을 그에게 내던지고자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찬우는 그런 동아에게 부담을 느낀다. 그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부양해야할 가족까지 있기 때문이다.

 

야채 과일 장사하는 늙은 어머니와 장애를 가진 형 뒷바라지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그에게 기대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견디기 어려웠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교 졸업해서 돈 벌기 시작해야하는 상황이었고, 마침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한다.

 

그는 울며 자신을 붙잡는 동아를 외면하고 떠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동아는 그 충격과 슬픔으로부터 싸우기 시작했으며, 그 고독한 싸움은 10년이나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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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길을 걷게 된 그 둘은 10년 후인 1994년 다시 만난다. 안타깝게도, 눈물바다의 드라마틱한 재회는 없었다. 찬우는 그녀가 그리워서 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형 생각에 잠시 들린 것이다. 오히려 찬우는 약혼한 여자가 있었으며, 장애인 형을 특수 시설에 넣고자 했다.

 

아직 11살인 ‘이미래’의 눈에는 그저 둘이 사이좋게 악수하고 화해하고 만나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복잡하게 일을 꼬이게 만드는지 답답해한다. 미래는 어설프게 '어른들' 문제에 끼어서 둘의 사랑을 이어나가려고 한다.

 

사실 이런 비슷한 영화들은 많다. <페어런트 트랩>라던가, <상사에 대처하는 로맨틱한 자세>에서 제 3자가 한 남녀를 억지로 잇는 시도를 하는 이야기 말이다. 영화에서는 대부분 성공을 하지만, <미래의 여름>에서는 실패하고 만다. 동아는 마음이 무너지며 자살시도까지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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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LAS의 연극 <미래의 여름>은 이미래가 11살이었던 1994년 여름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미래는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시골에 고모집에서 머물면서 초등학생 눈에서는 이해가 안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고모 주변 어른들이 동아를 보고 이상하다며 수군거리는 모습, 혼자서 취하도록 술 마시는 동아, 아빠조차 고모를 한심해하는 모습... 미래는 동아의 행동을 이해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를 편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도 이해 못했을 것이다.

 

동아 뒤를 따라다니던 험담과 루머에 애써 귀를 닫아야 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동아가 참 어리석은 여자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 시대상 나이 서른 되서 까지, 결혼도 안하고 제대로 된 직업도 없었다.

 

20살 때 한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이후로 계속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되면 동아를 더더욱 사회에서 내몰릴 것이다. 동아의 유일한 친구는 동아와 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찬우의 장애인 형이었다. 세상의 편견을 저항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는 그들은 음악과 팝송을 공유하면서 세상 시끄러운 소리로부터 귀를 닫았다.

 

 

 

진정한 사랑을 위한 저항


 

“무저항은 죄입니까?”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의 말이다. 그는 세상이 규정한 ‘인간 자격’을 상실했음을 절규한다.

 

아내가 성폭행 당해도, 가족들로 인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들어가게 되더라도 그는 무기력하다. 누군가 약물을 줬다고 그것을 그대로 수용해 중독되게끔 자신을 내버려뒀다. 그가 스스로 삶을 파멸시키는 순간은 주체적 삶이 아닌 타인에게 맡겨진 삶, 즉 저항하지 않는 삶을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저항은 꿈틀거림, 즉 생명력을 의미한다. <미래의 여름>에서 동아는 사회의 기대에 맞춰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형태와 속도 그대 따라가는 것이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타인의 요구대로 사는 것이 ‘인간 실격’이지 않을까? 오히려, 동아처럼 저항하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 자신과 같이 차별과 편견을 받는 장애인과 지내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모습, 이러한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다움과 진정한 사랑의 표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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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 저자 장 바니에(Jean Vanier)는 이런 말을 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신비는 그들이 권력보다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더 갈망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갈채를 보내거나 승진을 시켜 주는 집단에서 안주하는 삶에 집착하고 매달리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갈망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어쩌면 이렇게 상처 받은 이들이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인간일 수 있다. 아무리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라고 하지만 조금만 달라도 차별받는, 동질성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나답게 살고, 나답게 상처를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연극 관람 끝에, 나는 단순히, ‘소외받은 이들을 차별하지 말자’, ‘연민의 마음을 갖자’, 이러한 생각보다는 내 안에 있는 자신의 상처를 알아보고 스스로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동아의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것을 동아처럼 조금 더 표현하고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4년 이후, 미래는 동아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미래는 성장하고나서 동아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녀를 기억하며 궁금해하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동아라면, 동아처럼 강한 사람이라면 아마 멋진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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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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