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코로나 시대, 여행에 대한 생각 [여행]

떠날 수 없어 비로소 더해지는 것
글 입력 2020.08.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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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춤하는가 싶더니 하루 확진자 수가 300명이 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나마 기대했던 제주도 여행의 꿈은 접었다. 줄줄이 주위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아쉬움의 말들이 들려온다. 방금 전 뉴스를 통해 속초 여행을 간 사람들이 17명 집단으로 감염되었다는 소식도 더해졌다.


2년 전의 나는 유럽에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8월의 더위를 참을 수 없다며, 하루 종일 숙소에 누워있는 사치를 부리기도 하고, 즐거운 기억을 가득 채우곤 이제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고 투덜거렸다.


올해는 유난히 지나간 해의 여름들이 그리웠는지 여행의 기억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본다. 이럴 때면 기술이 발전해 손쉽게 기록을 보관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사진이든 글이든 하루하루의 기록을 빼놓지 않은 과거의 나에게 참 고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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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이렇게 간절한 까닭은 무엇일까?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잠시나마 벗어났던 자유로움을 몸이 기억하기 때문일까?

 

 

여행은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좆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82p

 


현실을 잊고 싶은 나, 현재를 살아가고 싶어서 여행을 꿈꾼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다. 과거와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단절된 오직 현재를 오롯이 느끼고 싶다.


제각기 꿈꾸는 여행의 과정이 다르듯 여행의 이유도, 여행의 결과도 모두 다르겠지만 새로운 경험과 그 속에서 느낀 새로운 감정, 새로운 영감들이 얽히고 쌓여 한 점의 추상화가 그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보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신비로운 것.


 

시간이 지나 우리는 또다른 여행에서나 tv의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가 이미 다녀온 곳을 그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읽거나 보게 된다. 나와는 다른 그들의 느낌과 경험이 그들의 언어로 표현되어 내 여행의 경험에 얹힌다. 여행의 경험은 켜켜이 쌓여 일종의 숙성과정을 거치며 발효한다. 한 층에 간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직접경험을 쌓고 그 위에 다시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여행에 비여행, 탈여행이 모두 더해져 비로소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되는 것이다.


- 김영하, <여행의 이유>, 117p

 


며칠 전, 소중한 휴일에 혼자 집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다 답답했던 나는 또다시 지난 여행 사진을 찾아보고 있었다. 자신의 집에 놀러오라는 친한 언니의 말에 언제나처럼 마스크를 쓰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을 탔다. 몇 정거장 채 안되는 거리로 떠난 여행이었다.


예전에 살던 집도 근방이었지만 처음 와본 동네였다. 언니와 함께 장을 보고 언니의 집에 가서 언니의 동생을 처음 만났다. 한강이 보이는 큰 창문 앞에 놓인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려 했지만 계속 생기는 대화거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한강에 비치는 노을을 보며 언니가 해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먹었다. 선선해진 저녁에는 한강변을 따라 걸었다.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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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했고,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고, 새로운 경험으로, 새로운 영감을 받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에서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여행 같은 기분을 얻는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가깝든 멀든, 또는 모르는 사람이든, 누군가가 존재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연결되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시기이지만, 물리적 거리의 이동이나 자극적인 경험을 원하기보다는, 코로나 수칙을 준수하며 가깝고 소중한 사람과 소소하지만 특별한 추억을 쌓는 것은 어떨까?

 

여행의 이유를 떠올려 본다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해질 수 있다. 오늘도 나는 한 겹 쌓인 추억을 가지고 집에서 올해의 여름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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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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