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on] 삶을 향한 자비 없는 직시, '빈 배처럼 텅 비어' [도서]

글 입력 2020.08.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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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승자


 

90년대 젊은 시인의 대표주자이자 여성시인의 계보를 만든다면 늘 뿌리로 기억될 시인, 최승자 시인은 ‘이 時代의 사랑’을 비롯한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이 時代의 사랑>, <즐거운 日記>, <내 무덤, 푸르고> 등의 시집을 냈다. 시인는 1980년대의 민중문학과 참여문학의 분위기와는 이채로운 시 세계를 보였고, 특히 강렬한 시어와 그로테스크한 신체 이미지로 주목을 받는 시인이다.

 

최승자 시인의 시는 ‘개 같은 가을’(「개 같은 가을이」)이나 ‘아 썅’(「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과 같이 거친 비속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최승자의 시는 내용적으로 형식적으로도 자신의 신체를 분절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여성이 아브젝트임(을 강제 당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전략으로 이미 상징계의 안정적인 자아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충격과 반항을 줄 수 있다.

 

적확한 언어로 끄집어내는 내면의 깊은 감정들은 시 읽기를 즐기지는 않는 독자에게도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랑, 분노, 미움, 두려움, 무상감 그 어떤 감정이든 마음속에 응어리진 형태가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연히 들기 때문이다.

 

 

 

빈 배처럼 텅 비어


 

빈배처럼텅비어.jpg

 

 

몇 해 전 서점에 가서 보게 된 <빈 배처럼 텅 비어>는 <이 時代의 사랑>에서 받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고통과 상처를 직시하고 있는 것은 비슷했지만 때로는 허탈함이 강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빈 배처럼 텅 비어’를 읽고 나서 혹시 이 시집을 두고 시인이 세상을 떠나 버릴까봐, 이미 떠난 것 일까봐 놀라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모두 기우였지만 그 정도로 극단적인 정조가 시집 전체에서 뿜어지는 것만 같았다.

 

왜 죽음과 관련되었다는 느낌이 짙게 드는지 고민해보았을 때 떠오르는 것은 시인의 시야에 죽음이 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고, 삶에 대한 고민이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눈앞에 자연스럽게 보이는 죽음과 삶 너머에 대해서 언급하며, 세계와 결착된 삶을 어떻게 견뎌갈 것인지, 어떻게 목격하고 인지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을 엿본 것 같았다.

 

나는 세계 속에서 세계를 감각하며 살아가지만, 이것은 찰나의 일일뿐 흘러 가는 시간은 모든 것을 퇴색시킨다. 그렇게 내 손아귀에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이 자리에 머물며 살아가는 것에 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이대로 사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그것이 '빈 배처럼 텅 비어'가 표제작이자 첫 작품으로 실려 있는 이유일 것이다.

 

 

빈 배처럼 텅 비어

 

내 손가락들 사이로

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

세계는 빠져나갔다

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 처럼 텅 비어

나 돌아갑니다

 


 

詩와 세계


 

하지만 작품 속 '나'는 시인이다. 그의 슬픔의 궤적은 글로 드러난다.


 

나의 생존 증명서는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고

詩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세계 전체가 한 병동이다


꽃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사람들이 하릴없이 살아 있다

 

 

자기 탐색은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어지며 시인인 자신에 대한 탐구로 심화된다. 꽃이나 사람은 '병동'에서 '하릴없이 살아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말은 인간은 적어도 '나'는 아픈 채로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에 코를 박고 있는

구름 한 장


세계 너머에 한눈을 팔고 있는 

바람 한 겹

 

 

이 세상과 이 세상 밖의 것들을 모두 응시하고 있는 자가 '하릴없이 살아 있'는 존재인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자일 것이다.

 

하지만 구름 한 장만큼이나 가볍고 바람 한 겹만큼이나 자유롭게 혹은 불안하게 떠다니는 것이 '나'의 어떤 본성이기도 하다. 분주하지만 온전하지는 않는 나. 이 모순은 근원적인 것이라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한 까닭에서 화자는 '슬픔이 새어 나와 내 영원을 적시네'(슬픔이 새어나와)라고 밝히며 슬픔과 고통을 그냥 인정해버린다. 미화도 부정도 없다. 가장 날 것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듬어진 말들이 가득하다.

 

슬픔과 고통은 삶을 채우는 것들이며 어쩌면 늘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라서 사람이 슬픔과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다 쓰러지기도 무너지기도 하는 것이라고 쓴다.

 

 

月은 술에 취해 흘러가고

 

月이 술에 취한 채 분장을 하고 나온다

그녀의 치마폭은 넓고 깊다

月下 무지몽매의 세월이 바스락거린다

달은 소리 없이 하늘의 긴 江을 건넌다

 

(달은 술에 취해 흘러가고

내 그림자는 쓰러져 운다)

 

 

작품들을 읽다보면 오히려 살아 있는 것이 인간에게 다소 과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나는 살아 있다"라는 농담 / 수억 년 해묵은 농담'(아침이 밝아오니)라고 쓰인 글을 읽으면 우주의 티끌치고는 고생이 많은 인간들을 떠올린다. 어딘가 아픈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티끌에게 고통에 몸부림치며 슬퍼하는 시는 병을 직시하게 해서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는 없는 일도 아닌 것은 분명하다.

 

시대와 세계와 개인에 앞서 아파하는 시인의 시는 우리에게 비교적 다듬어진 직시의 기회를 줄 것이다.

 

 

 

네임 태그 이승희.jpg


 

참고문헌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문학과 지성사, 2016.

김건형, 「최승자 시에 나타난 비천한 주체의 변모 양상 연구」,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 18권 4호, 2014, 51-76쪽.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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