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주보아도 사랑이 아닐 때가 있다 [영화]

글 입력 2020.08.1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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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데뷔작 ‘워터 릴리스’가 8월 13일 개봉했다. 아직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도 보지 않은 내가 개봉 당일에 이 영화를 보러 간 것은 순전히 같이 갈 것을 강요했던 나의 자매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프랑스 영화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좋다 싫다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프랑스 영화를 많이 안 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취향이 정당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프랑스 영화들에 나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영화관에 도착해 좌석에 등을 기대던 그 순간까지도 큰 기대가 없었다. 게다가 데뷔작이라니, 최근 만든 작품보다 높은 완성도를 바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 나는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주인공 ‘마리’의 몇몇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았고, ‘플로리안’의 속마음은 또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아주 조용했고, 인물들의 대사는 간결했다. 시집이라도 읽는 것처럼 장면들을 곱씹던 나는 다음날 밤 열두 시가 다 되어서야 ‘워터 릴리스’에 대해 그럴듯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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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릴리스’라는 제목은 아주 직관적이다. 수중발레 선수와 수련이라니,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비유였다. 물 위에 티 하나 없이 깨끗한 꽃을 피우지만 진흙에 뿌리내리는 수련처럼, 들이치는 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수중발레 선수의 얼굴 아래에는 물을 끊임없이 휘젓는 몸이 있다.

 

이 비유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플로리안’을 따라 수영장에 들어간 ‘마리’가 수중발레 선수들의 연습을 수영장 물속에서 바라보는 장면에서이다. 곧게 뻗은 팔다리와 자로 잰 듯 정확하고 부드러운 동작을 숨죽여 바라보던 ‘마리’의 시선이 물 밖에서 물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감독이 왜 ‘수련’이라는 제목의 영화에 수중발레라는 소재를 택했는지 알게 된다.

 

감독은 아마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여성들의 내면을 그리려 했을 것이다. 우리가 여자아이들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그들 내면에 존재하는 진짜 욕망은 사실 아주 다르다고 말하기 위해 수중발레를 사용한 것 아닐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나는 잠시 고민했다. 수련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세 인물이 각기 원하는 바가 다른 것은 확실하다. 영화는 분명 앳되어 보이는 몸짓 아래 숨 쉬는 욕망을 조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영화의 제목도 수련 하나가 아니라 ‘수련들’인 것이다. 하지만 날 것의 감정이 내면에서 생동하는 대상화된 존재로서의 여성을 표현하기 위한 이유에서만 수련과 수중발레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영화를 떠올리며 나는 인물들의 감정을 생각했다. ‘마리’는 수영장에서 수중발레 경기를 하는 ‘플로리안’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적어도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차갑기만 하던 ‘플로리안’도 자신의 곁을 맴도는 ‘마리’에게 점점 마음을 연다. ‘플로리안’은 ‘마리’에게 자신을 둘러싼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사실 누구와도 자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 대화를 기점으로 둘 사이는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플로리안’이 ‘마리’에게 ‘네가 내 처음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정도로.

 

그러나 나는 ‘마리’가 ‘플로리안’을 사랑한 방식으로 ‘플로리안’이 ‘마리’를 사랑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아주 다른 결의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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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결국 ‘플로리안’의 요구에 응한다. 남자친구와 언젠가 하게 될 잠자리가 겁이 난다며 처음이 되어 달라고 말한 ‘플로리안’에게 ‘마리’는 원하는 것을 준다. ‘플로리안’이 창문에 남긴 립스틱 자국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던 ‘마리’에게 마지막 장면에서는 ‘플로리안’이 입을 맞추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마리가 원하던 것이었을까?

 

‘플로리안’의 첫 경험 상대가 된 데다가 키스까지 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 ‘마리’의 표정은 아주 밝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마리’는 ‘플로리안’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둘 사이의 감정에 대해서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에 실망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플로리안’은 마리에게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 처음 수중발레를 보고 매혹되었던 ‘마리’가 수영장 바닥에서는 전혀 다른 몸짓을 만난 것처럼, 감정은 ‘마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마리’의 친구 ‘안나’ 역시 영화 초반부터 그토록 원했던 ‘프랑수아’와 결국 섹스를 하지만, 그것은 ‘안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안나’는 ‘프랑수아’가 다녀간 다음 날 ‘마리’를 찾아가 ‘프랑수아’와의 일을 사고라고 표현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플로리안’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마리’와 함께 했던 첫 경험에서 안정을 얻었다면 ‘플로리안’은 그날 밤 ‘프랑수아’를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플로리안’은 끝내 잠자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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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수련을 볼 때 진흙탕에 박힌 뿌리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리’, ‘안나’, ‘플로리안’도 자신들이 원하고 욕망하던 대상이, 그리고 그 대상에게서 전해질 감정이 기대와 다를 수 있음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이 처음이었고, 모든 것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성장 영화이고, 사랑 영화이기도 하며, 기대와 실망이라는 감정에 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생각해보니 다 같은 말인 것 같기는 하다. 우리는 기대감이 아직 저물지 않은 시절을 순수와 젊음이라고 부르고, 그것이 무너진 뒤에 찾아오는 실망을 성숙함이라 여기니까.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상처와 실망에 서로를 탓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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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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