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광복절에 만난 베토벤: 서울챔버앙상블 제69회 정기연주회

글 입력 2020.08.1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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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깊은 광복절에, 베토벤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무대를 다녀왔다. 바로 서울챔버앙상블의 제69회 정기연주회였다. 이번 정기연주회에서 서울챔버앙상블은 베토벤 작품 3곡과 작곡가 안진의 작품을 세계초연하는 것으로 기획한 상태였다. 그 중에서도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택하여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협연을 볼 수 있는 구성이었다. 그래서 광복절에 짧게나마 연휴가 만들어짐에도 불구하고 연휴맞이 여행을 선택하지 않고 이번 무대를 택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연주를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챔버앙상블은 1974년에 최초로 창단되어 카네기홀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 1981년에 미국 실내악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한 경력이 있는 유구한 역사를 보유하고 있다. 중간에 단원들의 개인활동으로 인해 앙상블이 해체된 적도 있지만, 1991년에 호암아트홀에서 다시금 창단연주회를 가지며 재도약했고, 이후 해마다 4회 이상의 정기연주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 69회 정기연주회는 수많은 날 중에서도 8월 15일 광복절에 이루어지는, 더욱 뜻깊은 무대였다.

 

 


 

PROGRAM


L.v. Beethoven Egmont Overture Op.84


안진(Jean Ahn) Masquerade(가면무도회) [세계초연]


L.v. Beethoven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61

Allegro

Adagio un poco mosso

Allegro


Intermission


L.v. Beethoven Symphony No.3 "Eroica"

Allegro Con brio

Adagio assai

Allegro vivace

Allegro molto

 


 

 

프로그램을 보면, 이번 무대를 위해 서울챔버앙상블이 공연일자와 함께 어우러지는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 고심하며 준비했으리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먼저 이번 무대의 첫 곡은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이었다. 극음악으로 작곡된 작품이지만 사실상 전곡이 연주되기 보다는 서곡 자체가 더 많이 연주되는 작품이자, 수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곡이다. 그래서 일견으로는 '대중적인 선곡을 했다'라는 선에서 생각을 그치기 쉽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이것은 비단 대중성을 고려한 선곡만이 아니다. 에그몬트는 괴테의 동명 희곡작품인 동시에 당시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에스파냐의 압제로부터 네덜란드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던, 네덜란드의 구국 영웅인 에그몬트 백작은 결국 붙잡혀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나라를 향한 그의 뜨거운 애국심과 타협하지 않는 곧은 절개는, 일제 치하를 겪으며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마지막 숨까지도 바치셨던 수많은 순국선열들과 잇닿아 있다.


이번 서울챔버앙상블의 무대에서는 그 뜨거운 애국의 열화가 절실히 와닿는 듯했다. 장엄하고, 공포스럽고, 두려운 운명을 예감한 도입부는 아주 강렬했다. 힘차고 웅장하면서 점점 더 장대한 클라이막스로 발전되어 가는 그 과정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특히 콘서트홀이 아니고 챔버홀이었다보니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더욱 위력이 컸다. 말 그대로 웅혼한 첫 작품이었다.


*


이어진 두 번째 곡은 작곡가 안진의 "Masquerade(가면무도회)"였다. 이번 서울챔버앙상블의 무대가 세계초연이었기 때문에 사전에 들어볼 수도 없이 바로 현장에서 듣게 된 작품이었다. 프로그램 북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 모두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어차피 써야하는 마스크라면 마스크를 쓰고 무도회를 왔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지금 우리는 잠시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이 춤은 곧 끝날 것이다."


본격적인 연주에 앞서, 첫 곡인 에그몬트 서곡이 끝난 후 현악파트를 제외한 전원이 자리를 비웠다. 안진의 가면무도회는 현악기만으로 연주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어떤 느낌일지 기대되는 마음으로 첫 음을 기다렸다. 이 가면무도회는 아주 오묘했다. 가면무도회라는 이름답게 3박자 춤곡의 요소를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중간 중간에 드는 긴장감은 오싹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아주 유려하게 넘나들며 이어지는 패시지들은 방금 들었으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이어질 수가 있는지 놀라웠다.


불협화음으로 불안감이 고조되는 구간을 지나 콘서트 미스트리스가 선율을 연주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다. 불협화음의 구간에서 비단 불협화음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느껴왔던 모든 심리적 불안감들이 떠오르면서 다시금 그 때의 불안을 곱씹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이 모든 사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작곡가 안진의 마음처럼, 이 불협화음 같은 코로나 시국 속에서도 우리는 협화음처럼 일상을 일구고 살아가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하는 것처럼, 마스크를 쓰고 무도회에 잠시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 지난한 상황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색다르고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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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의 마지막 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프로그램을 보고 좀 놀랐다. 1부에 베토벤 바협을 넣을 수는 있다고 쳐도 이 대곡 앞에 두 곡이나 더 연주하다니, 1부가 풍성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곡이라 연주자들이 힘들겠지만 듣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만한 만찬이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1악장은 매우 길다. 2악장이나 3악장의 연주시간 대비 2배 이상이다. 1악장에서 소나타 형식이 아주 견고하게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대한 서주에 이어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선율들이 이어진 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고아한 선율을 연주하며 들어오는 순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의 특이한 점은 작곡가가 당시에 카덴차가 필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1악장에 카덴차를 지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도 카덴차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연주자별로 작품 느낌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베토벤이 카덴차를 남기지 않았다보니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연주자별로 그 느낌이 정말 상이하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카덴차는 그야말로 폭발하는 에너지 그 자체였다. 1악장의 제시부에서 그렇게 따스하고 부드러운 선율을 연주했던 1666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한수진의 손끝에서 다시 한 번 재탄생하는 듯했다.


2악장은 웅장하고 거대했던 1악장과 달리 평온한 분위기의 라르게토다. 유순한 오케스트라의 주제에 유려한 한수진의 선율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전개되었다. 한수진의 독주 바이올린 선율은 주제가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주제를 장식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독주 바이올린의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느낄 수 있다.


2악장에서 바로 이어지는 3악장은 개인적으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제일 좋아하는 대목이다. 솔리스트가 먼저 론도 주제를 제시하고, 이를 오케스트라가 반복하며 발전시키는 구조로 이어지는데, 그 선율이 아름답고 리듬감 역시 청아하다. 한수진은 이 론도 주제를 정말 섬세하게 전달해주었다. 부드러움과 강렬함을 넘나들다가 론도 주제의 변주가 시작되는 순간 서정성은 2악장에서보다도 더 극대화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나는 3악장의 카덴차는 더블스토핑으로 화려한 음이 계속적으로 이어져 엄청난 기교를 요한다는 걸 누구나가 알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비르투오소적인 면모를 아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1악장에서도 놀라웠지만 3악장에서는 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 끝없는 에너지의 폭발에 이어 세밀한 트레몰로를 연주하며 다시금 관현악과 어우러지기 시작하는 순간, 이제 정말 끝이 머지 않았음을 예감했다. 그리고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빛나는 절정을 맞으며 작품을 마무리했다.


엄청난 대곡을 너무나 인상적이게 연주해 준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 서울챔버앙상블을 향해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사방에서 브라바를 연호하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 대곡의 끝에 앵콜은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계속되는 커튼콜에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은 무대로 나와 우리말과 영어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이 영국에서 자라서인지, 이번 무대에는 주한 영국 대사가 와있는 듯했다. 한수진은 배석한 대사에게도 감사를 표하며, 영국에서 자랐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왔던 자신의 삶과 광복의 역사에 대해 짧게 언급했다. 그리고 광복절을 기념하여 아리랑을 연주했다. 부드럽고도 강인한, 한국인의 정서가 그대로 녹아있어 가슴에 사무치는 앵콜이었다.


*


2부는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이었다. 이 작품의 선곡은 정말 놀라운 대목이 아닐 수가 없다. 에그몬트 서곡과 마찬가지로 대중성을 고려한 선곡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분명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영웅이라는 이 작품이 현 시점의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궁무진하다. 유서까지 남기며 죽음을 고려했었던 베토벤이 다시금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뒤 작곡한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웅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나폴레옹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 삶을 헤쳐나가겠다는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 대상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시 유럽의 불안정한 정세보다 어쩌면 더 지난하고 헤쳐나가기 어려운 이 코로나 시국을 살아내야만 하는 관객 모두가, 또한 영웅이지 않을까. 더군다나 광복절에 연주되는 작품이라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영웅은 현 시국 이상으로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선곡이다.


1악장은 첫 시작부터 아주 인상적이다. 강렬하게 음을 두 번 치고 시작하는데, 이어지는 1악장의 전개는 전반적으로 웅장하고 제목 그대로 영웅적인 면모가 있다.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지만 않았더라면 그에게 헌정되었을 법하다고 이해가 될 정도로 장엄한 스케일을 느낄 수 있다. 규모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리듬이나 전조, 불협화음 등을 사용하는 방식도 비범하다. 지금에서야 이게 그렇게 색다를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새로운 음악이었을 것인가. 1악장은 언제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서울챔버앙상블의 연주는 벅차오를 수밖에 없도록 세심하게 전달해주는 연주였다.


2악장은 장송 행진곡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단조로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며 시작된다. 특히 목관이 주된 선율을 연주할 때 아주 절제된 슬픔의 정서가 확실하게 와닿는다. 작품의 시대상과는 별개로 현 시점의 시대와 너무나 잘 맞는 악장이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 고난을 감내해야 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달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 3악장은 스케르초로 굉장히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 호른이 마치 나팔처럼 부드러운 듯 단단한 소리를 내는 악구는 3악장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매력적인 대목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악장은 도입부가 다시금 강렬해졌다. 그러나 강렬한 도입부 뒤에 이어 피치카토로 부드럽게 선율을 연주해나가기 시작하며 다시금 분위기가 전환된다. 하지만 4악장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강렬한 도입부와 이어지는 부드러운 피치카토에서 끝나지 않고 변화무쌍하게 주제가 변화하며 분위기가 전환된다. 변주가 이루어지면서 중간에 푸가적인 느낌이 나는 대목도 있어서 마지막 악장에서도 끝없이 음악적인 도전을 하는 베토벤의 면모를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치밀하게 전달해주는 서울챔버앙상블의 연주는 팔색조 같았다. 어느 한 파트 취약하다고 느껴지는 부분 없이, 조화롭게 그 모든 변화들을 객석에 생생하게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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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IBK챔버홀에서 들은 건 이번 서울챔버앙상블의 무대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독주 또는 실내악만 듣다가 실내악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감상하니 확실히 기존에 IBK챔버홀에서 듣던 무대들보다 소리가 풍성했다. 콘서트홀에서 듣던 것보다 물리적 거리도 가깝다보니 각 악기들의 소리도 훨씬 크게 들렸다. 그래서 첫 곡이었던 에그몬트 서곡 때는 목관의 소리가 평소에 듣던 것보다 너무 크게 들려서 좀 당황스러웠다. 근래에 관현악곡보다는 실내악 위주로 많이 들어왔다보니 더욱 그 풍성함이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홀의 규모와 오케스트라의 편성이 더해져서 그런 영향도 있지만, 연주 그 자체만으로도 참 압도되는 무대였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과의 협연에서는 마치 바이올린 독주가 더해진 교향곡을 듣는 듯 베토벤 희대의 역작을, 전율을 느끼며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에그몬트 서곡과 교향곡 3번을 들을 때에는 서울챔버앙상블이 말 그대로 앙상블을 이루며 조화로운 음악을 전해주는 것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세계초연이었던 작곡가 안진의 가면무도회는 신선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광복절에 맞춰 많은 고심과 동시에 대중성까지 잡은 선곡을 바탕으로, 서울챔버앙상블은 이번 69회 정기연주회를 통해 치밀하고 정교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협연을 통해 솔리스트와의 앙상블도 보여주고 서울챔버앙상블이 전면에 나서서 연주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객석이 그들의 연주를 향한 신뢰를 키우게 만드는 무대였다. 다음 정기연주회에서도 서울챔버앙상블이 진지한 고민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그들의 뜻을 치밀한 연주로 객석에 전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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