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회색빛] 프롤로그

글 입력 2020.08.1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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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눈을 감고 ‘회색’을 떠올려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색이 그려진다.

 

팔레트 양 끝을 당연시하게 차지하고 있는 검은색과 흰색. 강렬한 그 둘이 만나 실수로 탄생해버린 것 같은 혼합의 결과는 본인의 특색을 뚜렷이 내비치지 않는 아주 애매모호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 색에 끌렸나보다. 어느 시점부터 그 모호함을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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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회색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딘가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디자인 업계에서는 회색을 채도 낮춘 옅은 색, 즉 담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매해 12월 팬턴이 발표하는 ‘올해의 색’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트렌드는 확실히 클래식 블루나 울트라 바이올렛처럼 개성이 뚜렷한 컬러를 따라간다. 고로 담색은 특정 시기에 유행하는 색도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 시기를 통틀어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색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그래서 이 색에 끌렸다. 어느 시점부터 그 평온함을 갈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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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그 색’에 둘러 쌓여버렸다


 

개성이 가득한 세계에서는 평범함 또한 그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모호함은 나와 너무 닮았고, 평온함은 내가 평생을 찾아왔던 것이었다. 이상치고는 꽤나 친숙했던 탓인지, 내 주변은 하나둘씩  다양한 회색으로 채워져 갔다.


매번 같은 색을 선택하지만 웃기게도 모두 한곳에 모아놓으면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저들은 자신이 절대로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뚜렷하지 않다고 해서 흐릿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심지어 그렇게 눈을 찌푸려 확인해야 했던 흐릿함조차 어느 색에 노출됨에 따라 때론 더 선명하게 그리고 다채롭게 느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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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색채가 함께 모여 호화로운 ‘다채로움’과 채도를 낮춘 색으로 통용되는 ‘회색’이 결합한 나의 에세이 [다채로운 회색빛]은 사실 전부 역설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범용적인 주제로 전개되겠지만, 본인을 중심으로 그 안에 녹여내는 만큼 꽤 개인적이기도 할 것이다.


올해 초, 나를 빗대어 표현하라는 질문에 ‘데미안’에 등장하는 아브락사스를 일컬었다. 선과 악, 남성성과 여성성, 빛과 어둠을 동시에 지내는 신인 그는 삶을 살아가며 여러 면에서 양면성을 가지게 된 나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이번엔 주변 사람들한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누구는 나를 한 없이 밝은 사람으로, 또 누군가는 한 단어로 쉽게 정의할 수도 없는 복잡한 사람이라고 했다. 대체 나는 누구였을까.


그래.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를 ‘회색빛’이라고 칭했다. 그 희멀건 빛에서 반사되는 글은 곧 다채로울 것이다. 삶을 살아간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할 수밖에 없는, 그렇기에 어느 시절에 읽어도 꾸준한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라본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세상은 온갖 색으로 뒤덮여 진다고 해도 굴하지 않고 잔잔히 빛날 수 있도록.

 

 

 

전문필진 박수정 tag.jpeg

 




[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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