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영상을 통해 우리가 헤엄쳐온 길을 되돌아보고 뭍으로 나아가다 - 제20회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무인도에서 모여 지난 날을 되돌아 본다
글 입력 2020.08.1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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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에는 얼마나 많은 혐오가 존재 하는가



[크기변환]그녀의 이름은 베트남.jpg

 

 

문득 일상을 살아가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혐오들을 모른 척 지나쳤나 생각해보면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한참이나 시간이 지나 있곤 하다. 우리의 일상은 어쩌면 혐오의 강을 헤엄쳐 저 수평선 너머에 걸쳐 있는 무인도로 헤엄치는 과정인 것 같다. 무인도에서 살아갈 수 없는 우리네들은 결국 다음날 뭍을 찾아 또다시 혐오의 강에 뛰어들게 된다.

 

누군가는 혐오 상황을 지나치거나, 혹은 자신이 그 한가운데 있더라도, 극단적으로는 자신이 혐오의 대상이 되도 그것이 ‘혐오’였음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만 해도 그랬다. 이 사실은 내가 특별히 모나거나 이상한 사람이거나, 반대로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 아님에도 이루어지는 것들이었다. 동양인 중산층 여성으로 살아가는 나를 향하는 혐오들을 모른 체 지냈던 시절들이 내게도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혐오의 강 한가운데였다. 내가 디디고 있는 것이 땅이라 생각 했지만, 사실은 끝도 없는 심연으로 이어진 물 속 이었고, 그 곳으로부터 도망쳐 겨우 도착한 곳이 마침내 뭍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작은 무인도였다. 어렸을 적 재미있게 읽었던 모험 소설 속의 주인공 로빈스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유유자적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은 내가 처한 상황이 그저 모험 소설이 아닌 어떻게든 헤쳐 나가야할 일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눈과 귀를 최대한 막고 나를 향한 혐오들을 모른 척 한 체 매일 매일 뭍을 찾아 혐오의 강을 헤매고 있다. 이 강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이들이 많다. 우리는 처음에는 홀로인 줄 알았고,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땐 방향을 몰라 서로에게 어떻게 찾아 가야 할지 알지 못했다. 이번 대안영화영상축제가 기다려지는 이유는 그 지점에 있다. 이번 대안영상축제는 그런 우리들에게 일종의 나침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_네마프2020 공식포스터.jpg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대안영화영상축제는 혐오 발언이 일상화된 오늘날, 약 20년간 한국에서 창작되어 온 인권, 이주, 민족, 인종, 성차, 학력, 지역, 계급 등에 관해 대안적 내용과 형식을 제안해왔던 대안영상예술 작품들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20년을 새롭게 모색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열린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 단번에 뭍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무인도였던 작은 섬에서 모여 함께 의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혐오의 강은 그 몸집을 더욱 불리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막연한 혐오의 말들로 그 강을 이루었고, 이제는 더 이상 빠져나올 수 없을 만큼 그 강은 깊어 졌다. 어쩌면 장마에 수위가 높아지듯,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다. 바이러스를 피해 병든 이를 멀리하고, 그들을 배척함으로써 아이러니 하게도 방어기재 속에서 유대감을 다지는 것이 인류가 여태껏 생존생존 방식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사회적 동물로서 무인도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강’의 존재는 큰 문제가 됐다. 강이 몸집을 불릴수록, 뭍에 있어 안전하다 생각하던 이들의 터전도 기세 좋은 강물이 삼켜 더더욱 좁아 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직면하고 논의해야할 필요성이 있고, 그래야 할 당위성이 있다. 비단 소수집단의 문제만이 아니다. ‘강’을 그대로 둔다면 언젠가는 세상에 뭍이 남아있게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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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안영상예술축제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어쩌면 모른 척 하며 살았던 문제들에 대해 논의해본다. 도시 개발을 통해 황량해진 공간을 걷는 남자의 등에 엎힌 할머니를 통해 인류애를, 본래의 터전을 떠나 낯선 대륙에서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여성들을 통해 여성 인권을, 더 나아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뒤틀어 본 자연물의 시점에서 세상을 이루는 인간 외 타자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상 언어를 통해 현 지점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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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매력적인 언어이다. 대부분의 문화예술은 찰나의 순간으로 이루어지고, 그 순간, 그 공간을 지나면 불꽃처럼 사라지고 만다. 굳이 문화예술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말’의 특성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입을 거쳐 세상에 나온 ‘말’은 허공에 연기처럼 뱉어진 후,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유한한 특성을 지닌 다른 언어들과 달리, 영상이라는 언어는 그것을 재생할 수 있는 하드디스크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상영할 수 있다는 특성이 있다.

 

사람들은 이것을 주로 ‘기록’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영상을 통해 기억하고 싶은 순간, 말, 주제, 생각 등등을 담아 내고 시간이 지나 우리의 기억에서 그것이 차츰 흐려졌을 즈음 영상을 꺼내 봄으로써 다시금 그 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되새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은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도 늘 함께였다.

 

가장 원시적인 기록은 ‘글’일 것이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글자를 통해 기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영상 기술이 발전하기 이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방식이고, 아직까지도 이렇게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글이 가지는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아무리 명필의 작가가 쓴 글이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의 해석이 존재하는 것처럼, 글은 주관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모습을 담아 내기에는 사실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간혹 저자의 의도가 다르게 읽히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영상이 100% 사실적인 언어라는 말은 아니다. 물론 영상도 주관적인 해석의 여지가 개입 될 수 있는 틈이 존재한다. 같은 장면을 보아도 누군가는 나와 다르게 인식 할 것이다. 그럼에도 비교적 영상은 그 당시의 장면과 소리, 행동까지 모두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안영상예술 페스티벌의 목적에는 이 영상 언어가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대안영상을 통해 우리의 현지점을 돌아볼 것이다.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 서있는지, 그곳은 어떤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정확히 어떤 방향으로 나아왔는지를 꼼꼼히 모색한 후,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논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계기로 우리는 지나온 발자취를 영상을 통해 다시금 반추하고, 분석한 후 앞으로의 발걸음을 결정할 것이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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