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본사람이 재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도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을 읽고
글 입력 2020.08.0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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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람이 재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 중 '일본사람이 재즈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은 1994년 10월 고댠샤의 종합지 <현대>에 실렸던 글이다. 당시 미국에서 지내고 있던 그는 젊은 흑인 재즈 뮤지션인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일본사람은 재즈라는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발언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발언은 일본에서도 다양한 논란과 함께 거센 파장을 일으켰다. 특히나 일본은 1960년대부터 열심히 재즈문화를 받아들이고 성장시켜 온 나라이기 때문에 더욱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 발언과 함께 문화마찰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자유롭게 서술하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만, 그는 수십 개의 베스트셀러를 배출한 일본의 국민 작가일 뿐만 아니라 진득한 재즈덕후이다. 일본에서 재즈 바를 창업하고, 재즈 에세이를 발간할 정도로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일본인인 그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그는 힘겨운 고뇌 끝에 두 가지의 다른 결론으로 의견을 수렴하였다.

 

 

① "우리 흑인들이 역사적으로 맛볼 수밖에 없었던 고통을 너희가 어찌 알겠느냐. 그리고 그런 고통이나 아픔을 모르는 인종이 재즈라는 음악의 진수를 어찌 알겠느냐. 너희는 돈을 쌓아두고 우리를 고용해 음반을 만들고 일본으로 불러내 눈앞에서 연주를 시키는 것뿐이지 않느냐. 우린 어쩔 수 없어 따르긴 하지만, 뒤에서는 다들 비웃고 있다."

 

 

첫 번째는 바로 흑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재즈이다. 흑인에게 재즈란 단순히 음악 장르일 뿐만이 아니라, 그들만의 역사와 생활이 담긴 문화이기 때문에 더욱이 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재즈의 연대기와 이어진 그들의 삶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아시아인이 재즈를 진정으로 느낄 수는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재즈를 탄생시킨 이들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확실히 딱 꼬집어 반박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는 듯하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본인은 재즈라는 음악을 바다 건너 들여오고, 또 배우게 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흑인 재즈 뮤지션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흑인이 재즈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일본인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② "물론 흑인 뮤지션이 핵심 추진 세력으로 크게 경의받아야 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그 역사 또한 절대 간과되어서는 안 되겠지. 그러나 그들만이 그 음악의 유일한 정통적 이해자요 표현자이며 다른 인종은 그곳에 낄 틈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오만한 논리이자 오만한 세계관이 아닐까. 그런 식의 일급시민과 이급시민의 분별이야말로 아파르트헤이트나 다를 바 없잖아."

 

 

이 상황을 일본인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어떠할까. 일본은 아시아 국가 중 유난히 재즈를 사랑하는 국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재즈문화를 안정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사회 속에서도 재즈가 자연스레 스며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인은 이처럼 재즈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재즈의 본원지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애정과 열정이 무시당해도 정당한 것일까.

 

그는 재즈라는 음악은 이미 세계 음악 속에서 확고한 시민권을 얻었고, 그것은 달리 말해 세계 시민의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으로 반론이 가능하다고 말하였다. 일본에는 일본 재즈가 있고, 러시아에는 러시아 재즈가 있고,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 재즈가 있다며 재즈가 여러 나라에 분산됨에 따라 그 나라의 문화와 재즈가 재결합될 수 있다는 의견을 표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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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도 희미한 타협점


 

약 30년 전에 쓰여진 이 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악을 사랑하는 공통항만 존재한다면(물론 존재할 테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의 타협점, 합의점이 성립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현 시점에서도 문화마찰에 대한 타협점은 불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단지 '재즈 주인찾기'만을 위해 쓰여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는 그 당시 미국 흑인들 사이에 급속히 퍼진 안티세미티즘(반유대주의)의 열기와 이 주제 사이에 통하는 면이 많이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만연했던 인종차별과 사회적 계급에 대한 편견이 복합적으로 합성되어 일어난 논란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작은 문화적 마찰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차분히 마주하여 하나하나 상세하게 검증해나갈 때 비로소 앞으로의 더 큰 마찰도 오히려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세계적 차별과 편견이 난무하는 것으로 보아 재즈에 국한되지 않고도 문화마찰에 대한 타협점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다.

 

그가 과거에 자신이 써놓은 글과 현 사회를 대조해보며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아직도 세계인들이 타협점을 찾고 있는 과정 중에 정체되어 있는지, 혹은 더 먼 길을 돌아가야 할런지 독자도 함께 고민해보게 되는 주제인 것 같다. 하나의 분명한 타협점이 생기지 못할 것이라면, 시대에 따른 자유롭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형성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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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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