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관심은 있었지만 그 역사와 내용이 워낙 방대해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고,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정보는 뒤죽박죽 뒤 엉겨 필요한 순간에 빛을 발하지 못하는 순간이 많았다. 그래서 종종 화가와 미술 작품에 대한 도서를 읽었지만, 화가의 이름은 금방 잊혔고, 작품은 잔상처럼 남았을 뿐이었다.
나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낭만주의', '고전주의' 하는 것들에 대해 차근차근 정리하며 이해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림을 '재미있게' 보고 싶었다. 이번에 만난 <1일 1 미술 1 교양>은 그런 나의 바람을 담고 있는 책이었다. 지루하게 설명만 끝없이 이어지기보다는 하루에 한 개의 챕터씩 읽을 수 있도록 나열되어 있어, 매일 밤 잠들기 전마다 틈틈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또 마치 미술관에 방문하여 도슨트를 듣는 듯 유쾌한 분위기가 이어져, 저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권에서는 원시미술부터 낭만주의까지의 미술사에 대해 총 50개의 챕터로 다루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시대의 흐름은 따라가되 그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나를 사로잡는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에 집중해 들여다보기로 했다.
유독 흥미롭게 보았던 내용은 7번째 챕터의 '한눈에 여신들 알아보기'였다. 서양의 미술 작품을 들여다보면 고대 그리스 신화나, 성경 속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이 그림이 어떤 장면을 그린 것인지, 등장인물은 누구인지까지는 설명문 없이 해석하지 못했다. 그림을 눈 앞에 두고는 무엇을 중점적으로 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해 당황스럽기만 한 것이다. 이 챕터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이 그림을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는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이라는 그림 속 세 여인을 보며 각각 어떤 여신을 그린 것인지 묻는다. 다음 단락을 읽기 전까지 내 눈에 비친 것은 그냥, 여인들뿐이었다. 그림 속 상황은 이렇다.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화가 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결혼식장에 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새겨진 황금사과를 하객들에게 던지며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여신들의 싸움을 부추긴 것이다. 그 후 최종 후보로 남은 여신은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였고 이들은 선택권을 쥔 파리스에게 지목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 솔깃한 제안을 한다. 결국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뒤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얻게 되었지만 그녀는 스파르타 왕의 부인이었고 이는 결국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흥미로운 내용을 한 폭의 그림에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재밌게 느껴진다. 이쯤에서 세 여인이 각각 어떤 여신인지 구별해보면 왼쪽에서부터 각각 아테나, 아프로디테, 헤라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테나는 메두사의 머리가 달린 방패와 투구, 부엉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주변을 맴돌며 놀고 있는 에로스, 조개껍데기, 황금사과, 비둘기를 보고 알 수 있으며, 헤라는 공작새, 사자 그리고 뻐꾸기와 함께 있는지 확인해보면 된다.
알고 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각 여신들의 상징물을 알고 나니 이 다음부터 제시되는 신화를 그린 작품을 보면 각 인물의 행동이나 주변에 배치되어 있는 사물을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그 유명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프로디테를 상징하는 조개껍데기 위해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냥 지나쳤던, 혹은 당연하게 여기고 말았던 작은 부분들이 하나씩 그림의 재미 요소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난해하기만 했던 서양 미술사를 '쉽고, 재미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그림만 알고 있었던 작품을 그린 화가를 알게 되고, 그 화가의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며 시대상을 읽고, 화가 개인의 화풍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50개의 챕터로 50일간 꾸준히 접할 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한 챕터도 10분에서 15분 내외의 짧은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만큼 부담 없는 분량이다. 이 책을 통해 시대와 인물에 대해 훑어본 다음, 가장 눈을 사로잡았던 이야기나 그림이 담긴 부분을 다시 읽고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면서 미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오래된 그림이건 현대적인 그림이건, 실제 이야기가 담겼든 마음속 이야기가 담겼든, 그림은 우리에게 말을 합니다. 작품을 보며 그림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인다면 또 다른 감상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일 1미술 1교양> 26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