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남성들의 하이힐 퍼포먼스 [공연예술]

호모 사피엔스여, 도구를 마음껏 활용하라!
글 입력 2020.07.3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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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에 따라 제한되어 있는 퍼포먼스가 있다. 이 ‘제한’을 그동안 우리는 ‘구분’이라고 불렀겠다. 구분을 깨고 나오는 자를 목격하기 전까지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특색으로 비춰질 수도, 어색하게 보일 수도 있다. 멋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성 정체성을 의심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다.

 
특히 최근 이목을 끄는 구분점이 바로 ‘하이힐’이다. 모름지기 걸그룹이라면 연습생 때부터 올라타야만 했던 비선택적 아이템을 남성들이 선택하게 되면서 가치를 재평가받고 있다. ‘하이힐 퍼포먼스’라는 용어까지 생겼을 정도.
 
그동안 남성이 ‘여장’을 한 공연의 역사는 유구하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이름을 부여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하이힐 착용자의 전체 집합은 여성이라고 여겨졌으며, 둘째, 여성 댄서들은 항상 하이힐 위에서 아무렇지 않은듯 능숙한 춤을 구현했다. 셋째, 앞 전의 이유와 기타 이유들이 뒤섞여 당연한 것으로 치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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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힐이 걸어온 길

 
그렇다면 우선 하이힐의 모태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시기는 제각각이나 처음이라고 언급되는 몇가지가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신분을 구분하기 위해 지도층에서 신었다거나, 10세기 페르시아 기병대가 말에 올라탈 때 등자(말안장에 달린 발걸이)를 편히 딛기 위해서 혹은 등자에서 발이 빠지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해서 등이다. 대다수의 전승은 전부 남성 지도층의 사회적 위치를 강조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와 유사한 형태의 하이힐에 관한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시작된다. 키가 콤플렉스였던 남제 루이 14세가 최초로 신은 이후에 유행이 되었다는 것이다. 도구를 권력에 적절하게 활용한 예로 많이 언급되기도 한다. 귀족에게만 허용했고, 빨간구두는 루이 14세가 인정한 사람만이 착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태양왕’이라는 별명과 비슷하게 높여주어야 하는 다른 별명은 ‘루이힐(하이힐을 부르는 다른 말)’일지도 모른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들어봤을 것이다. 페스트는 유럽 전역의 위생관념 부재로 200여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다고. 위생에 신경쓰지 못하는 분위기는 이어졌고, 15세기에서 16세기에 쇼핀느(Chopine)라는 하이힐이 나오기까지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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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공간 외에는 모든 곳이 쓰레기통이었으므로 배설물을 포함한 모든 오물이 길거리에 나앉은 유럽에서 폐기방법을 모색하는 것보다 최대한 높은 굽을 착용하는 것이 더 편리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성별 구분이 없었다는 말이다.
 
어쩌다가 여성의 전족이 되었을까? 전적으로 남성이 기득권을 유지했던 종교계에서는 몸의 선을 부각하는 하이힐을 금지하며(문란하게 유혹한다나) 착용 여성에게 ‘마녀’라며 화형을 명했다(마녀가 될 수 있는 101가지 방법이 있는 시대이다).
 
이후 통설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패션이 떠오르고, 로저 비비에(Roger Vivier)를 시작으로 패션아이템으로써 발돋움했다. 동시에 성별 경계선을 ‘목숨보다 중요하게(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취급하면서 하이힐을 신은 남성은 정신건강에 이상이 있거나(성소수자) 특수목적을 가진(드랙퀸)으로 ‘비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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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우스운 취급만 받을 것인가?

 
하이힐을 신은 남성이 거부감을 유발했던 이유에는 한가지가 더 있다. 착용에 미숙한 모습으로 뒤뚱뒤뚱거렸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이 하이힐을 신기에 더 적합한가? 여성이 하이힐 조기교육을 받을 뿐이다. 즉, 노력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착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건강에는 매우 치명적이지만.
 
하이힐을 신고도 편안한 모습으로 가장 대중적으로 다가가는 남성 아티스트는 조권이 아닐까. 발라드 그룹으로 데뷔했으나 ‘깝권’이라는 애칭을 얻는 데에는 이른바 ‘걸그룹 춤’을 희화화했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동시에 성 정체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MBC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해 브라운아이드걸스 가인과 아담부부로 큰 사랑을 받았었는데, 출연 결정의 이면에는 분명 성 정체성 논란을 덮고자 하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체구가 작은 가인이 상대역으로 선정된 것 역시 전통적 남성성에 어긋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맥락이다.
         
최근 드랙퀸을 소재로 한 뮤지컬에서 열연하고 있는 조권은 본인의 페르소나를 힐이라고 언급했다. 2017년에 Mnet 파일럿 프로그램 <골든 탬버린>에서 레이디 가가(Lady Gaga)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에서 ‘여장’을 곁들인 하이힐 퍼포먼스를 보여주던 조권은 무대 도중 금발 가발을 벗어던지며 “이대로가 저 조권”이라며 마무리 했다.
 
이후의 무대 모두 ‘여장’은 하지 않고 꾸며나가면서 하이힐 퍼포머로 우뚝 섰다. 특히 같은 프로그램에서 전통결혼제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가인과 꾸몄던 무대는 가히 인상적이었다.
 
이런 무대를 또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성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취향이고, 재능이다. 고전적인 사상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할만큼 하찮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 남성 하이힐 퍼포머들의 개척자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본인에게 피해도 주지않는 타인의 사생활에 과몰입하기보다 예술인으로 바라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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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 @kwon_jo

 

 
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남성 퍼포먼스 그룹 N.O.M(이하 엔오엠). 6월에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컴백무대를 보여준 엔오엠은 조권과는 또 다른 장면이다. 외형에 상관없이 하이힐 퍼포밍할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한 자세로 보여주었다. 오히려 멤버 전원이 180cm가 넘는 키와 요즘 남성들이 선망하는 근육질의 몸을 가졌다.
 
여전히 외국인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게이같다.”라는 댓글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남성이라면 수염을 길러야 하며, 핑크색 옷을 좋아하면 게이라고 취급하는 서양인의 문화에서 비롯되었으리라.
 
게이의 퍼포먼스란 무엇이며, 이것은 게이를 욕하는 것인가? NOM을 욕하는 것인가? 왜 둘 중 누군가 혹은 두 쪽 모두를 비하하는가? 참으로 소모적이다. 그들에 따르면 게이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진정한 남자’가 오히려 더 적은 퍼센티지에 해당할 성 싶다.
 
하이힐은 엔오엠의 특징인 긴 다리를 강조하며 몸의 선을 극대화한다. 대체로 팔다리가 길어야 춤선이 사는 법. 강렬한 래핑을 때려박으면서도 절도와 곡선의 섹시함을 넘나드는 그들의 무대가 한 번 밖에 없었다는 것에 탄식한다. 아직은 대중적이지 않은 탓이므로. 평균나이 33세의 한국 내에서 덩치가 매우 큰 축인 사람들이다. 많은 핑계들 뒤에 숨어 변명을 꾀했던 이들이 알을 깨고 나올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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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 공식 Naver Post

 



‘열린교회 닫힘’ –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한데? (말줄임표)

 
제이핑크(J-Pink)도 주목받는 남성 하이힐 퍼포머 중 하나다. 그러나 그의 무대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실력과 무관하게 ‘핑크’라는 전통적 여성성에 가두어 그를 바라보는 본인을 느낄 것이다. “남자는 핑크지!”라는 말이 많아진 요즈음에도 제이블랙(J-Black)의 부캐가 제이핑크인 것을 동시선에 놓고 본다면 ‘걸리쉬’, ‘매니쉬’를 구분한 것임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하이힐 퍼포먼스가 한구석 불편함을 유발할 것이다.
 
드랙퀸(Drag Queen)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포털사이트의 사전적 정의는 ‘남성 동성애자가 여장을 한 것’이다. 이 한 문장에서 LGBTQ를 수만번 찢어 놓고 있다. 어떤 의미로 변화하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대략,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기 위한 여장’ 정도로 보면 되겠다. 여성의 모습을 국한시키며 희화화하고 성구매적 요소를 자극한다. 한마디로 ‘여자분장쇼’. 현대판 서커스 정도일까. 유럽에서 사라진 ‘인간 동물원’의 부활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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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랙퀸 분장을 한 셰리 피에(Sherry Pie). thegryphon

 

 
뮤지컬 <제이미>에서의 드랙퀸 모습은 그런 비하적 요소를 많이 내려놓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드랙퀸’의 사전적 정의가 변화할 모습을 예측하지는 못하겠다고 언급했다. 여전히 뉴스나 SNS에서는 ‘여장남자’뮤지컬로 축약되는 것이 닫힌 사회를 표방한다. 이미 앞서간 사람들과 따라오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괴리와 혼재, 과도기를 담고 있는 것이 ‘열린교회 닫힘’처럼 역설적이고 복잡한 현재 시점의 사회모습이다.
 
'여장’이라는 미명 하에 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 하이힐 퍼포먼스를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가면으로 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퍼포먼스 뿐만이 아니다. ‘퍼포먼스’라는 목적성을 가진 하이힐 착용이 점차 일반인들에게 확대되어 많은 남성들의 하이힐 착용 욕구가 리얼웨이에서도 마음껏 발산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오히려 숨겨진 깔창의 굽보다 하이힐의 드러난 굽이 더 진솔하게 보일 것이다. 특히나 무대 위에서는 그 솔직함이 퍼포먼스의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한다(조권과 엔오엠의 무대에서 드러나듯이).
 
하이힐은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여, 도구를 마음껏 활용하라. 남성들이여, 맨박스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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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ontograndprictou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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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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