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대상이 있는 멍 때리기 예찬 [문화 전반]

불멍, 식멍, ○멍... 멍의 세계로 빠져들어 봅시다
글 입력 2020.07.3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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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멍 때리기’는 우리 사회의 트렌드였다. 행위 예술가 웁스양이 기획한 ‘멍 때리기 대회’는 그 불씨를 태워 올리는 장작이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대신 그 뒤엔 번아웃이 만연하던 우리나라에서 멍 때리기는 큰 환호를 얻었다.

 

2016년 4회차 멍 때리기 대회에서는 가수 크러쉬가 우승을 하며 시민의 호기심을 끌어내기도 했다. 인기가 너무 커진 탓일까, 페이스북을 통해 국내 여러 기업·백화점에서 멍 때리기 대회의 포맷을 너도나도 그대로 훔쳐가 따라 한다는 웁스양의 분노 섞인 지적마저 종종 볼 수 있었다. 이처럼 멍 때리기는 3~4년 전만 해도 ‘핫’한 트렌드였다.

 

2020년 현재, 멍 때리기는 이제 트렌드이기보다 일상·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레 스며든 듯 보인다. 양상도 조금 달라졌다. 바로 멍 때리기에 대상이 생긴 것이다. 다이어트 열풍이 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종류, 방법의 다이어트 보조제가 생기듯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보지 않아야 했던 멍 때리기에도 자연스레 보조제가 생겼다.

 

오늘날 멍 때리기는 이런 이름들로 변신한다. ‘불멍, 식멍, 물멍, 꽃멍, 숲멍, 바람멍...’ 불멍은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불을 보면서 멍 때리기, 식멍은 식물을 보면서 멍 때리기다. [멍 때리는 대상 + 멍]을 하면 단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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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기 방식 중, 캠핑의 부상과 함께 요즈음 가장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불멍’을 통해 대상이 있는 멍 때리기를 샅샅이 살펴보자. 가장 먼저, 이러한 멍 때리기는 감각을 더한다.

 

오감을 배제해야 했던 기존 멍 때리기와 달리, 대상이 있는 멍 때리기는 디지털 세상에 깔려 납작해진 우리의 감각을 깨운다. 불을 붙이면, 가장 먼저 강렬한 붉은 색이 화르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곧 타닥, 타다닥 톡 톡 규칙이 있는 것 같지만 자유분방한 장작 소리가 귀를 감싸고, 동시에 중독적인 연기 냄새가 아른아른 피어오른다.

 

뜨뜻함에 가까운 온도는 온몸으로 밀려와 느껴진다. 머릿속을 찌꺼기같이 부유하는 생각과 연결은 차단되고, 동시에 다양한 감각을 사용할 수 있는 행동은 현대인들에게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두 번째, 우연한 일치일까? 불, 바다, 식물, 숲 등 대상이 있는 멍 때리기에서 그 대상은 주로 자연을 향한다. 안티 폴루션이 2020년 키워드가 되고 플라스틱 프리 캠페인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며, 자연과 친해지고 싶은 요즘 사람들의 트렌드가 반영된 것일지 혹은 코로나로 인해 생성된 무력감을 꺼내 사람들 사이가 아닌 안전이 느껴지는 자연 속으로 파고들고 싶어지는 심리인지 정확히 가려낼 수는 없지만,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멍 때리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자연과 멍 때리기를 결합하여 더 확실한 힐링을 얻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

 

마지막으로 대상이 있는 멍 때리기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뜬금없지만 흥미로운 나만의 주장이니 가볍게 넘어가도 좋다. 갓 불멍을 하고 온 지인에게 그 느낌을 물어본 적이 있다.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움직이는 불꽃을 눈으로 계속 쫓으면서 아름답다, 신기하다는 생각만 난다.’ 뭔가에 매료된 듯한 그 말을 거듭 곱씹다 보니 떠오르는 비슷한 감정이 있었다.

 

안정을 주는 아름다움. 바로 사랑에 빠진 기분이었다. 잠시 다니던 시나리오 쓰기 수업에서 로맨스 시나리오를 써보겠다고 몇 마디 떠들다가 싸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사랑을 알기 어린 나이임을 시인하지만, 생각을 많이 할수록 사랑이 힘들다는 것, 때론 멍-한 상태에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대상이 있는 멍 때리기를 통해 사랑할 때의 몽롱한 감정으로 진입하는 연습을 자연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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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많은 커뮤니티와 카페에는 불멍, 식멍, 숲멍 등 다양한 멍 때리기의 일상이 소소하게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나사의 우주 생중계 영상을 크게 틀어놓고 ‘우주멍’을 때린다는 한 네티즌의 글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에 접속하는 연결 상태와 움직이는 뇌에 지친 모든 사람에게, 식물이든, 꽃이든, 새하얀 벽이든 좋으니 대상을 정해 내 멋대로 멍 때리기를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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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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