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삶의 목적, 결과 그리고 나의 일부에게, 테드창 '네 인생의 이야기' [문학]

글 입력 2020.07.3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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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연 근래 SF 소설 작가 중에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졌다고 할 수 있는 테드 창의 작품은 작품 자체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컨택트(Arrival, 2016)>라는 영화로 재탄생한 작품은 '네 인생의 이야기'이라는 단편이다. 출판사 엘리에서 나온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라는 단편 소설 작품집에 담겨 있다.

 

<컨택트>가 여러 관객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영화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고, 그 영화적 수법이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관객에게 전달된 이야기의 울림이 영화의 매력을 이루고 있는 큰 축이다. 그 축을 구성하는 소설 속 이야기를 좀 더 펼쳐보고자 한다.
 
 
***

이 모든 내용은

엘리의 번역본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래 예지’에 설득력을 주는 언어학적 상상력

 
영화 <컨택트>를 보고 결말에 대해 의아함을 갖게 되기도 한다. 영화가 직선적인 시간 구조를 가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중간에 알아차리지 못할 때 그러한 의아함이 생겨난다.
 
관객이 쉽게 영화의 시간선이 뒤죽박죽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주인공 ‘루이즈 뱅크스’를 맡은 에임 아담스가 연기 톤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마치 아이가 세상을 떠나서 슬픔에 잠긴 어머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고저가 없는 톤과 큰 변화가 없는 표정을 유지한다. 그러다가 애벗과 코스텔로(영화에서 주인공과 소통하는 외계인을 부르는 이름)가 혼란스러워하는 루이즈에게 말하는 내용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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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sees future.
Weapon opens time.
 
 
갑자기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 헵타포드의 목적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가 진행된다. 그곳에는 언어학자인 루이즈와 과학자 이안이 포함되어 있다. 루이즈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워 그들과 소통하려고 한다.
 
헵타포드가 전해준 그들의 언어는 모든 순간을 동시에 경험하는 그들의 방식을 배울 수 있는 ‘무기(weapon)’이었다. 이들의 언어를 배운 루이즈는 일반적인 인류의 시간 감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감각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루이즈는 자신이 겪는 미래의 순간들을 마치 환영처럼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환영도, 꿈도 아닌 동일한 현실이었다.
 
영화에서 루이즈는 미래와 과거를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는 힘을 토대로 전쟁을 막는다. 미래의 자신이 쓴 책을 보고 헵타포드의 언어를 학습하고, 헵타포드의 시간을 빠르게 이해한다. 미래의 중국 샹 장군에게서 아내의 유언을 알아낸다. 아내의 유언을 현재의 샹 장군에게 전하며 전쟁을 막아낸다. 그리고 사랑을 고백하는 동료 연구자 이안과 포옹하며 ‘당신 품이 이렇게 따뜻한 줄 잊고 있었다.’고 말한다. 처음 안는 것이지만 그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떠나가는 것을 모두 겪고 있는 루이즈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이후의 포옹이기도 하다.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사피어-워프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그들의 시간 인식과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언어학적 상상력이다. 초월적인 힘이 주는 예지도 예언도 아니다. 언어를 배움으로써 인류에게는 없던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능력의 뿌리는 시작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는 원형적인 시간 인식에 있다. 영화 속 루이즈와 원작 소설 속 루이즈는 자신의 아이가 자신의 곁을 떠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안과 함께 하며 아이를 낳기로 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러한 부분에서 ‘자유의지’와 ‘미래를 아는 것’이 양립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미래를 아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가능한가

 

결국 이 질문은 루이즈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로 이어진다. 인간의 선형적 시간 인식과 헵타포드의 원형적 시간 인식을 동시에 가진 루이즈의 삶은 자유의지에 의해 좌우되는가, 혹은 알게 된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인가.

 
목적지를 알게 되면 그 목적지를 향한 경로를 설정한다. 이것이 헵타포드의 목적론적 해석이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로 나아가기 위해 출발점이 생긴다. 헵타포드들의 경우 앞으로 나타날 모든 대화를 알고 있지만 그것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서 대화를 행한다.
 
루이즈는 헵타포드와 접촉하며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고 배워간다. 그러면서 헵타포드의 목적론적 사고방식과 원형적 시간 인식을 알아간다. 헵타포드어가 그녀의 의식에서 우위를 점하는 순간 그녀의 기억은 세월 전체를 동시에 지각한다. 이안을 만나 사랑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사고로 아이를 떠나보내는 모든 과정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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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겪는 생애 속에서 딸 한나는 루이즈에게 기쁨이자 슬픔이다. 그러나 한나의 존재와 아이가 만들어낸 모든 것은 루이즈가 살아갈 목적이다. 한나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모든 일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아이를 만나기 위한 선택을 한다. 그 선택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단편이다.
 
결말 이후의 삶에서 나타날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실현하는 이유는 한나를 만나기 위함이고, 결말 이후의 삶에서 나타나는 결과 역시 한나의 삶이다. 한나 인생의 이야기가 이 작품이 만들어진 원인이자 이 이야기가 지속되는 목표이기에 제목이 ‘네 인생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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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모든 이야기를 ‘보여줘야’ 한다. 시각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다보니 주인공이 목격하는 것이 곧 관객이 목격하는 것이 된다. 루이즈가 겪는 ‘환상’과 ‘현재’는 관객에게도 동일한 순서로 제시된다. 이를 구별하기 위해 영화에서는 색채를 달리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한다.
 
원작 소설은 이러한 구분을 어투로 달리하고 있다. 겪은 사실에 대해서는 과거 시제의 평서문으로 서술한다. 하지만 자신의 딸 ‘한나’에 대한 내용은 ‘너는 웃음을 터뜨릴 거야.’ 혹은 너는 이렇게 말해‘와 같이 미래시제와 현재시제의 구어체를 서술한다. 마치 딸에게 말을 걸 듯이, 자신이 본 풍경을 묘사하듯이.
 
결국 영화와 원작 소설은 같은 결말을 보여준다. 루이즈와 이안이 사랑을 시작하기 전이지만 루이즈는 자신이 겪게 될 그 모든 희노애락을 알면서도 나아간다. 현재의 루이즈가 만나지 못한 아이에게 ‘네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모든 것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하여 ‘너’를 만나기 위해서 사는 것을 선택했다고.
 
 
[이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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