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조와 임경선의 교환일기 [도서]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읽고
글 입력 2020.07.2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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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의 인간관계는 고등학교 때와 사뭇 다르다. 차이점은 ‘친해지는 과정, 방식’ 등이 있는데, 가장 도드라지는 차이점은 ‘환경’에 있다.

 

우리의 고등학생 시절을 잠깐 떠올려보자.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하나의 반에서 생활했다. ‘학교’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또다시 ‘반’이라는 작은 테두리로 분류된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온 종일을 특정 친구들과 함께 보내야 했다. 야자를 같이 하고, 수업을 들으며 종일 붙어있었기에, 함께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많았고, 3월의 어색함만 견디면 곧 서로에게 익숙함과 편함을 느꼈다. 한마디로 말해, 친구가 되어가는 환경이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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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학생이 되자, 모든 게 바뀌었다. 같은 과의 동기들이 있으나, 듣는 수업이 달랐다. 각자 다른 모양의 시간표를 쌓았고, 공통된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면 못보는 날이 많았다. 어쩌다 수업을 함께 들어도, 그 수업이 끝나면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얼굴을 보기 위해서, 얘기를 나누고 싶으면 따로 약속을 잡아야 했다.

 

수업 듣는 것만으로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그와 동시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동아리, 학회, 알바 등등. 내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곤 했다. 그 중에서는 나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도 있었고,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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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곁에 두게 되었고, 종종 생각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특징지어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끝에 내린 결론을 '그렇다' 였다. 그들은 나와 취향과 성격의 결이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때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비슷한 것은 아니었다. 서로 성격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들도 꽤 다르지만 우리는 어른이 된 후 만나 우정을 쌓아나가는 관계였다. 우리가 어쩌다 친해진거지? 궁금했다.

 

여기 두 사람도 아마 이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우리가 어쩌다 친해진거지? 하고. 한 명은, 고효율의 끝을 달리는 사람이다. 세상 물정에 밝고 직설적이며 야무진 워커홀릭의 이미지의 작가다. 하나의 일을 끝내면 바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꺼내는 타입. 다른 한 명은 세상사에 편견이 없는 넓은 시선을 가졌으며, 사람을 좋아하고, 다방면에 능통한 만능 아티스트이다.

 

언뜻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이, 교환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심지어 대화의 주제는 일, 사랑, 나이, 태도 등 끝이 없이 뻗어나간다. 나는 이 재밌는 조합에 푹 빠져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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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들의 삶


 

이제야 인물 소개를 한다. 이 책은 작가 임경선과 아티스트 요조가 서로에게 보낸 서른세번의 교환일기를 엮은 책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 둘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는데,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몇개의 공통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프리랜서이다.. 임경선은 12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2005년부터 에세이, 소설 등 글을 써왔다. 요조의 경우, 뮤지션으로 데뷔하였으나 현재는 제주도에서 서점 책방무사를 운영하고, 글을 쓰며 살아간다. 이렇게, 회사라는 테두리 없이 살아가는 이 둘이 갖고 있는 생각이 궁금했다.

 

본문 중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라 불리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심리가 유난히 클 수밖에 없는가봐요. 회사라는 단체 안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도, 월급이라는 매달 보장된 수입 속에서 안전함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내일이라도 일감이 끊길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을 수시로 의식하며 살게 되는 것 같아요.’ - 요조
 

 

프리랜서의 불확실성에 대해 적은 글귀를 보자, 문학 잡지 언유주얼에서 읽었던 문장이 생각났다.

 

 
‘머릿속 한구석은 늘 일하는 중이다. 글쓰기의 시작인 글감 찾기는 연중무휴로 이뤄진다. 무엇을 왜 쓸 것인가 라는 말풍선을 항시 머리 위에 띄우고 다니는 느낌이다. 흔히 과거는 지나간 일이라고 하지만 나의 경우 지나가지지 않는 일들과 말들이 글감이 되곤 한다. 왜 자꾸 생각이 날까. 그 생각을 생각한다. 사유가 발아하고 글감이 정해지면, 설거지를 하거나 고양이 털을 쓰다듬거나 승강기를 타거나 신호등을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에 첫 문장을 고민한다.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지는 않지만 이처럼 정신의 쓰기 활동이 이뤄지는 시간들까지 고려하면 일상이 곧 작업이다. 잠들면 퇴근인가? 그렇지도 않다. ‘울면서 잠든 밤 사이에 문장이 탄생한다’라는 말이 있으니까.’ - 언유주얼 6월호
 

 

프리랜서라는 직업 자체가 출퇴근이 없다는 장점과 동시에 나의 능력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직업이기 때문에, 안정성이 낮다는 것. 그런 불안정함의 바다 위에 부유하면서도, 바다 위의 불안을 선택한 것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용기를 내고 있는 이들이 멋져 보였다. 마치, 자아 실현이라는 신대륙 개척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하는 탐험가이자 항해사 같다 생각했다.



 

사십대의 시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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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적 유연성이라는 말이 있다. 쉽게 말해 유연한 사고라는 뜻이다.

 

인지적 유연성이 높은 사람은, 상황이 바뀌었을 때 본인의 생각이나 전략을 쉽게 바꾼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의 주장과 상대의 주장이 다른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이 때, 인지적 유연성이 높은 사람은, 상대의 주장에서 충분히 논리적이고 확실한 근거가 있으면, 그 주장을 쉽게 받아들인다.

 

나이가 들수록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을 두툼하게 쌓아 나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과 가치관을 믿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누군가의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일 때 나의 의견을 바꾸는 건 어딘가 쑥스럽고 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임경선과 요조는 각각 사십대와 삼십대 초반의 나이로, 자유분방하면서도 거칠거칠한 단면의 삶을 살아오면서 각자 느낀 점들을 말하는데 그 말들이 인상깊었다. '이들은 우리가 끊임없이 노력으로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소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이것이 필수라고.


 

‘내 주변에 흔들리지 않은 사람 단 한 명도 없었어. 아무튼 마치 치열한 젊음을 은퇴한 것처럼 초연해지거나 고민이 다 해결되거나 그러지 않아. 그리고 몇 살이 되어도 고민하는 것은 좋은 거야. 고민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뜻이니까. 고민을 하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찾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거야. 40대 되었다고 다 산 노인네처럼 굴지 말고 몸과 마음 둘다 열심히 움직여야지. 에너지는 사용한 만큼 고스란히 순환돼서 내게 돌아오니까.’ - 임경선

 

 

나이대는 다르지만, 내가 관심있는 직업군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과, 삶과 사랑에 대한 단단하고 건강한 태도를 배음으로서 나는 용기를 얻었다. 요조와 임경선은, 내게 충분히 흔들려도 괜찮다고, 서로 성격이 달라도 대화는 이토록 재밌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언젠가 우정이 수명을 온전히 다 채우고 나면, 완전한 이별을 맞이하자며, 천천히 시간을 오래 들여 먼 훗날 멋있게 이별하자는 문장을 끝으로 책을 덮었다. 두 사람의 드물고 귀한 우정이 너무나 소중해보였다. 언젠가, 내가 작게만 느껴지는 어떤 날이 오면 이 책을 다시 꺼내읽으려 한다.

 

 

[최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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