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지개 시리즈-빨강'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여류명창, 이화중선 [사람]

글 입력 2020.07.29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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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정열과 열정, 피의 색깔, 뜨거운 해의 색, 타오르는 불꽃 등이 있다. 세계의 수많은 색 중에도 가장 강렬하고 사람의 눈에 시각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색이다.

 

고대 동굴 벽화를 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색은 빨강이다. 고대 신석기에 빨간색 염료를 구할 수 있는 식물이 다양한 기후대에 분포해 있어서 빨강을 많이 이용했고 동굴 벽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빨강의 역사는 그 어느 색깔보다도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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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동굴 벽화

 

 

빨강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은 사랑이다. 심장의 색깔로도 표현되는 빨강은 오래전부터 사랑의 또 다른 메시지로 기호화했다.

 

고대 사회부터 수요가 남달랐던 빨강은 ‘권력’의 상징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리스와 로마신화의 고위 성직자들이 입었던 옷의 색이 빨강이기도 했다.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며 흘렸던 피의 색이 빨강이라 하여, 빨강은 금기와 범죄를 상징하기도 한다.

 

모든 색깔에는 양면성이 있다.  빨강도 예외는 아니다. 빛이 있다면 어둠이 따라다니듯 상황에 따라 긍정적인 면(에너지, 사랑, 신성함, 확신 등)과 부정적인 면(정복, 통치, 공격, 잔혹성 등)이 비춰질 수 있다.

 

여기, 현대 많은 사람에게 잊힌 비운의 여류 명창이 있다. 시대의 부정적인 붉은빛 속에서도 긍정적인 붉은 빛을 뿜어내며 자기의 길을 단단하게 걸은 소리꾼이 있다. 판소리에 대한 열정을 빨간색으로 물들인 소리꾼, 이화중선이다. 그녀 개인의 삶은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논란으로 가득 차 있다.

 

후배를 양성하지도 자식을 낳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삶은 더욱 신비롭게 포장되었다. 평생을 소리와 뜨겁게 사랑했던 이화중선은 마지막까지 일본에서 조선인을 위해 공연을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던 중에 사망했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있었을까? 호적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그녀는 두 명의 남자와 결혼했다. 한 명은 장득진이었고 또 한 명은 이재삼이었다. 장득진의 첩으로 들어간 이유는 판소리 명창 장재백의 후손인 장득진에게 소리를 배우기 위해서였고, 이재삼의 첩으로 들어간 이유는 재력가인 그의 후원을 받아 판소리 활동을 원활하게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어디까지나 사실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한 추측이지만 일리는 있다. 결국은 소리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자신보다 일찍 죽은 그들의 빈자리는 느낀 걸로 보인다.

 

그 당시 이화중선의 인기는 하늘에 치솟아 내려올 줄 몰랐다. 여류 명창 중 가장 많은 음반을 취입했다는 기록만으로도 조선의 대중이 얼마나 그녀에게 열광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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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중선의 소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힘 하나들이지 않고 고음을 쭉쭉 빼내는 그녀의 옥구슬 같은 아름다운 목소리는 감탄이 절로 난다. 기본적으로 동편제이지만 또한 서편제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의 소리제는 여러 스승의 장점을 흡수해 자신만의 독특함을 구축했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목소리가 심심하고 울림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의 대표적인 곡은 심청전의 추월만정(심황후 사친가), 춘향가의 사랑가이다. 애절하고 그리운 감정의 노래는 그녀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높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잠시 주춤했던 판소리 문화의 연결고리가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1920년대에서 1940년까지 그 시대에 활약했던 이화중선을 비롯한 박녹주, 김초향, 배설향 등의 여류 명창 덕분이었다. 서양문물이 활발하게 들어오기 전까지 판소리는 고달프고 힘든 서민들의 삶을 위로하고 흥을 돋우는 대표적인 음악이었다.

 

판소리는 더 이상 대중에게 사랑받는 음악이 아니다. 판소리를 기억하고 향유하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고, 국가에서 판소리를 무형문화재로 지정 해야 하는 상황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었다.

 

판소리는 우리의 음악이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꿋꿋하게 견뎌온 우리의 음악이 더 이상 버림받지 않았으면 한다. 일제의 억압이라는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소리를 하겠다는 불꽃 같은 일념으로 목소리를 뽐냈던 이화중선의 삶을 가슴속에 새기자. 권력과 유혹의 부정적인 붉은 빛이 아닌, 열정과 사랑으로 넘치는 긍정적인 붉은 빛으로 이화중선을 감싸주자.


 


에디터 이지윤.jpg

 

 

[이지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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