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멀리 있는 이상 - 레이디버드 [영화]

나는 현재의 내가 늘 불만족스러웠다
글 입력 2020.07.25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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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는 호감을 갖게 된 남자친구 대니가 어디 사냐고 물어보자 이렇게 대답한다. “wrong side of the tracks.”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잘못된 쪽에 살고 있음을, 그곳에서 살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친다.

 

나 역시 가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령 나는 어렸을 때 스위스의  알프스와 넓은 초원, 혹은 영국의 중세풍 마을에 사는 게 꿈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혹시 어떤 실수로 이곳에서 태어난 게 아닐까?’ 원래 여기 사람이 아닌데 위치를 잘못 배정받아 태어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외국에 대한 강한 열망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본 적도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과 환상이 지독하게 나를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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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 중에 무지개를 쫓는 소년의 이야기가 있었다. 소년은 어느 날 우연히 하늘에 떠있는 무지개를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눈이 부셔서 그날 이후로 무지개는 소년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그를 괴롭히게 된다. 결국 소년은 무지개를 잡기 위해 집을 나선다. 무지개를 잡을 수만 있다면, 그 빛나고 아름다운 것을 몸으로 느끼고 만져볼 수만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일 것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의 나에게 없는 이상을 꿈꾼다. 그것은 외모, 사회적 지위, 매력적인 이성의 사랑, 혹은 나처럼 어떤 나라이든, 누구나 꿈과 이상이라는 무지개를 품고 살아간다.

 

영화 <레이디 버드>는 십대시절의 내가 바랐던 이상들을 아프고 아름다운 성장통으로 그려낸 좋은 영화다. 레이디버드처럼 나는 내 고향이 지긋지긋해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예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길 원했고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감독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넘어 10대를 지난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어떤 영화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레이디 버드>속 울림의 파동은 현실의 삶까지 공감과 여운을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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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크리스틴은 고향 새크라멘토를 벗어나 뉴욕으로 가고 싶다. 가난한 집안 환경이 부끄럽고 본인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베프 줄리와 함께 ‘나는 왜 잡지 모델처럼 생기지 않았지?’라며 신세한탄을 하기도 한다.

 

날 때부터 타고난 이름처럼 크리스틴을 둘러싼 상황들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유일한 저항이 바로 스스로 이름을 부여하는 일. 그녀는 ‘크리스틴’ 대신에 ‘레이디 버드’로 불러줄 것을 요구한다. 현재의 자신과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나에게 100%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진짜 내 모습과 정체성 대신에 멋진 외모와 몸매, 사회적 위치와 돈, 매력적인 이성을 목표로 정해두곤 이것들이 내게 있냐 없느냐로 스스로의 가치를 측정한다. 현실에 없는 이상에 닿기 위해서 나를 갉아먹거나 누군가의 선망 어린 시선으로 양분을 채우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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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역시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와 실제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을 빚는다. 레이디 버드는 영화 초반부, 자신이 새크라멘토 사람처럼 생겼냐고 물어본다. 엄마는 “너는 새크라멘토 사람이지.”라며 현실을 일깨운다. 그래서 그토록 뉴욕으로 도망치고 싶었고 ‘레이디 버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남자친구를 만든다.

 

이 모든 게 그녀가 꿈꾸고 바라왔던 이미지들. 하지만 영화 말미에 레이디 버드는 섹스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고 뉴욕은 별거 없음을 알게 된다. 뉴욕에서 만난 남자가 이름을 물어보자 ‘크리스틴’이라 소개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레이디 버드는 다시 크리스틴이라는 본래 정체성으로 돌아간다. 또 자신이 새크라멘토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이성과의 로맨스보단 엄마와의 사랑이 더 값졌음을 깨닫고 그리워하고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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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 아니 크리스틴은 여전히 자신이 ‘wrong side of the tracks’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까? 여전히 집은 가난하고 구리지만 ‘wrong’은 아님을 그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자신의 소중한 일부이며 어느새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초라한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은 생각보다 꽤 어렵다. 그 과정에서 크리스틴처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고통을 겪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라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사랑이 눈에 보이며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영화 <레이디 버드>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바로 그것 아닌가. 현실을 인정하기 싫어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상처도 받았지만 이 역시 십대시절, 누구나 겪게 되는 아름다운 성장통의 추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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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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