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툴루즈 로트렉展, 그림을 탈출구로 자유를 탐하다. [전시]

글 입력 2020.07.2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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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은 18세기 후반 파리를 배경으로 활동한 화가다. 7월 19일 툴루즈 로트렉의 개인전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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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전의 티켓과 입장 게이트


 

툴루즈 로트렉의 대표작으론 <제인 아브릴>, <아리스티드 브뤼앙>, <54호 선실의 여행객>, <라레뷔 블랑슈>등이 있다. 포스터, 잡지 삽화의 시초이기도 한 그는 파리 물랑루즈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기억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총 7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툴루즈 로트렉의 다양한 작품들을 테마별로 감상할 수 있었다.

 

가장 좋았던 섹션은 첫 번째 섹션 <연필로 자유를 사다>이다. 작품 설명에서 언급된 대로 스피디한 터치감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지운 흔적 없이 과감한 터치와 표현을 느낄 수 있었다. 연필의 터치와 무게감을 각각 다르게 해서 하나의 도구만으로 다양한 선을 표현해 다른 질감을 냈다.
 
로트렉의 천재적인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 인 것 같다. 수정 없이 스피디하게 그려내는 로트렉의 과감함을 보면서 망설임 속에서 내 것을 확실하게 해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때로는 돌아보지 않고 거칠게 나아가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로트렉의 다양한 포스터들을 보면서 그가 광고 및 ‘이미지 메이킹’을 가장 먼저 시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섹션 <상류사회를 조롱하다> 에는 아티스트 제인 아브릴, 아리스티드 브뤼앙, 이베트 길베르를 그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로트렉은 각 아티스트의 개성과 특징을 살려 대중들이 그를 확실한 이미지로 기억하게 하는데 탁월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섹션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에서는 극장 내 다양한 장면들을 묘사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댄서나 배우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팔과 다리의 선을 강조한 그림들이 많았는데, 간결해 보이지만 그 아름다움이 충분히 느껴지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섹션3에 잔잔하게 깔리는 BGM에 맞추어 댄서들이 춤을 추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을 그리기도 했는데, 이들의 표정을 통해 상영되고 있는 무대에 대해서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로트렉만큼 가수나 여배우 등 연예인들의 강요된 관능과 유혹 아래에 감춰진 억눌린 열정, 외로움 그리고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성공한 예술가는 없었다’
 
 
네 번째 섹션 <추한 것이 아름답다>에선 배우들의 초상, 포스터, 누드 습작 등 당시 아티스트들의 민낯을 그려낸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로트렉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아티스트들의 추한 면모를 그려내기를 좋아했다. 그의 시선에 따라 작품 속 뮤즈들의 얼굴은 정면을 보이지 않는다. 살짝 뒷모습이거나 옆모습인 경우가 많은데 디테일들의 표현으로 그들이 어떤 감정 속에 있는지 세세히 느낄 수 있었다.
 
다섯 번째 섹션 <이상보다는 진실을 그리다>는 로트렉의 잡지 삽화들을 모아 놨다. 풍자 잡지의 삽화를 통해 천박한 귀족들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다. 당 시대에는 잡지를 통해서 로트렉의 작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그림들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대에는 그림의 비중보다 사진의 비중이 훨씬 높다. 사진의 아름다움도 무시할 순 없지만 이런 작품들을 보면 대중예술에서 그림이라는 영역이 점차 줄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사진과 그래픽은 엄연히 그림과 다르다.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아티스트의 손을 거쳐 새로운 의미로 탄생하는 것을 보며 그림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는 걸 이번 전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여섯 번째 섹션 <나는 단지 기록할 뿐이다>에선 말들의 움직임을 기록한 작품들이 많았다. 털의 결에 따라서 빛이 다르게 반사되는 것을 표현하기도 했고 근육이나 발굽의 움직임을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말이 어떤 동물인가를 실감 나게 표현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았다.
 
19세기는 시대변화에 따른 예술가들의 역할이 변화하기 시작한 때라고 한다. 툴루즈 로트렉은 고전적인 기법을 벗어나 자신만의 표현으로 주목을 받았다. 마지막 섹션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 상업미술을 순수미술로 승화시키다>에서는 제목, 장면, 색채들의 배치, 그림을 그리듯이 썼던 폰트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19세기에 큰 사이즈로 인쇄해 배부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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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하는 게이트 앞에서,

그의 그림들을 모아둔 액자들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상적인 것이 아닌 진실된 것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기록할 뿐이다”

 

 
작품들을 통해서 자신이 본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툴루즈 로트렉의 고집을 엿볼 수 있었다. 모두가 개인의 개성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주관을 내세우는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고 있다. 전시를 통해 그림을 탈출구 삼아 자유로워 지고자 했던 툴루즈 로트렉의 용기를 조금이나마 빌려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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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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