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묘하고 불편한, 그래서 환상적인 그 조용한 공간으로의 초대 - 전시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

그들의 커다란 도미토리움 속의 퍼핏이 되어
글 입력 2020.07.21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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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을 깨고 침범해 들어오는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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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전시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어딘가 불편하고 난잡하다. 그런데 그것이 새롭고 기묘하지만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해준다.

 

그것은 처음 전시를 시작하는 지점에 붙어있던 오디오 클립의 QR 코드로부터 시작되었다. 일반적인 도슨트 오디오와 도미토리움의 ‘집사’가 이 공간을 소개해준다는 형식을 지닌 오디오 중에 고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오디오 클립을 QR 코드로 무료 제공하는 것도 특이한데, 그 방식은 더욱 특별했다.

 

오디오 클립을 들을 것인지 아닌지, 듣는 다면 둘 중 무엇을 고를 것인지 선택한 후, 나는 또다시 여러 갈래의 선택의 길 앞에 도달했다. 어느 지점에서 오디오 클립을 들을 것인지, 전시 옆에 붙은 설명을 먼저 읽을 것인지, 아니면 오디오 클립에 집중할 것인지 등등 도무지 어떻게 해야 전시를 잘 관람할 수 있을지 ‘관람 방법’에서부터 혼동이 오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 자체도 심상치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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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숨>이라는 제목의 디스 플레이 안에는 다음 공간으로 이동하면 나를 따라 시선을 옮길 것만 같은, 어딘가 너무나 사실적인 동시에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퍼핏들이 유리관 속에 갇혀 있다.

 

<해부실의 남과 여>와 같은 작품에서는 확대경 안을 들여다보면, 나의 시선을 따라 들쭉 날쭉 움직이며 금방이라도 눈앞에 닿을 것만 같은 이질적인 장면들에 매료된다. 퀘이 형제들의 작품은 그동안의 전시회에서의 경험을 토대로한 나의 예상들을 보란듯이 깨부수고 관람의 방법을 질문하는 데서 출발해 예상치 못한 지점까지 나를 몰고 간다.

 

그들의 전시가 현대의 디스플레이 기술과 3D 기술 등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체험하게 하는 것도 아님에도 너무나 생동하게 다가오는 데에는 그들이 전시 곳곳에 숨겨 놓은 ‘시각 왜곡 기법’에 있었다. 만화경, 조에트로프(회전 장치에 여러가지 그림을 달아 놓아 통 안의 그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장치), 아나모포시스(왜곡된 이미지가 특정 시점과 조건에서 정상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 등등을 사용하여 그들은 조화보다는 부조화를 통해 관객들이 직접 조화된 지점을 찾아가도록 유도한다.

 

퀘이 형제들의 작품들이 늘어서 있는 전시 공간들을 지나고 관람하다 보면, 마치 외부와 차단된 어떤 행성이 와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형의 머리가 잘리고, 그 안의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고, 외설적인 이미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등 외부의 규칙들 아래에서 충분히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장면들은 오히려 이 공간 안에서 빛을 발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이끌고 있었다.

 

전시 초반의 낯선 감각에 대해 느끼던 불편함은 어느새 생경한 경험에 대한 즐거움과 이끌림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도미토리움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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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화 ‘박물관은 살아있다’처럼, 긴 역사와 그만큼 유구한 스토리를 가진 사물이 살아 움직인다는 것에 기초한 상상력이 퀘이 형제들의 <고요한 밤: 빈 숲의 이야기> 다큐멘터리에서 드러나 있다. 언제 어떠한 사정으로 그곳에 모였을지 모를 미지의 박물관 전시품들은 밤이 되고 경비원이 떠나면, 자신의 전생에 대해 반복해서 꿈 혹은 악몽을 꾼다는 내용이다.

 

퀘이 형제는 생물 보다는 무생물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사물에 영적인 무엇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그러한 영적인 사물들이 만들어내는 스토리와 움직임을 다룬다. 그런 그들이 인형과 퍼핏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의 작품 속 인형들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연출하지만, 그 안에서는 어쩐지 비극적인 상황에 대한 허무감, 괴로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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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는 그들의 유명한 영화 <악어의 거리>에서 잘 드러난다. 그 안에서 인형들은 돌연 활기를 띄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이면에서 괴기하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지하 세계’는 제 1차 세계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를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고 어둡고 음울해 보이는 그들의 작품들은 언어 없이 이루어지는 무성 영화와 같은 형식으로 인형들의 어딘가 분절된 움직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영화 들의 상징적인 장면을 디오라마 박스 형식으로 만든 것이 바로 ‘도미토리움’이다. 우리는 영화의 어느 한 장면이 멈추어 박제되어 있는 것만 같은 도미토리움을 관람하며 그 공간과 퍼핏이 주는 느낌, 그러니까 그들의 무언 속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움, 타자성을 한껏 느껴볼 수 있다. 그들은 분명히 멈추어 있지만, 어쩐지 <고요한 밤: 빈 숲의 이야기>에서처럼 어둠이 전시장에 내리고, 관객들이 물러나면 자신들의 세계에서 그들만의 은밀한 시간을 가질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도미토리움의 어원에서도 드러나 있다. 도미토리움은 라틴어에서 파생되어 방(room)과 잠(sleep) 모두 관련이 있는 조작된 단어이다. 퀘이 형제들은 영화의 배경이자 세트로 사용된 미니어처와 퍼핏들이 ‘야간의 놀이방’이나 ‘잠의 상태’에 있기를 상상하며 ‘도미토리움’이라는 이름을 택했다고 한다. 어쩌면 멈추어진 필름 속 장면인것만 같은 도미토리움은 살아있는 지도 모른다.

 

 

 

평면 위의 선에서 공간을 움직이는 입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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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 형제를 과연 어떤 분야의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의 작품은 영화와 다큐멘터리, 전시, 연극 등과 같은 3D 뿐만 아니라 블랙드로잉, 캘리그라피와 같은 2D의 세계까지 넘나 들며다양한 폭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실, 순서는 2D가 먼저이다. 그들이 아직 영화의 꿈을 이루기 전 가난했던 시절, 오직 연필과 종이만을 가지고 그래픽을 선보였던 것이 블랙드로잉과 캘리그라피이다.

 

형제의 작품은 2D의 공간 속에서만 머물다가 우연한 계기로 입체적인 공간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친구의 권유로 지원 하게된 실험영화 제작 지원 프로그램이 그 시초였다. 별 기대 없이 퍼핏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스크립트를 제출했고, 그 순간이 그들의 작품을 입체의 공간으로 이끌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현재 그들의 작품은 2D 와 3D를 오가며 변신하고 더욱 다양한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하고 있다. 영화 속에 캘리그라피와 같은 무빙을 하는 카메라 기법이 이용되기도 하고, 평면의 블랙드로잉 중 몇 몇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영화와 캘리그라피와 같은 작업에서는 형제들만으로 이루어져 그들의 색채를 더욱 짙게 작품에 반영하고, 연극과 전시와 같은 작업에서는 다른 이들과 협업하며 더욱 다양한 시각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등 각 각의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퀘이 형제들의 작품들이 어떠한 분야로 형용하기에는 그 그릇이 크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들은 여러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작품을 만들어내며 마치 신과 같이 작은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컬처리스트 명함.jpg

 

 

[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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