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음산한 시간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展

퍼핏 애니메이션의 대가, 퀘이 형제
글 입력 2020.07.1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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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캘리그라퍼.jpg

"The Calligrapher" BBC 2 Ident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어둡고 어딘지 음습하며 얼핏 보아도 정신분석학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좋아하는가? 데이빗 린치, 프란시스 베이컨, 팀 버튼, 그리고 얀 슈반크마예르의 작품을 관통하는 어떤 느낌을 말이다. 나는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상식과 논리를 벗어난 괴이함의 의문점이 되려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들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라면 꼭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퀘이 형제(Brothers Quay)’이다. 퀘이 형제는 인형을 조금씩 변형시키며 한 장면씩 촬영하는 퍼핏애니메이션의 거장이다. 스톱모션과 비슷한 결을 다룬다고 볼 수 있다.

 

<퀘이 형제: 도미토리움으로의 초대>는 10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되는 전시이다. 며칠 전 전시를 관람하기 이전까지는 사실 퀘이 형제에 관해서 알지 못했다.

 

이 분야에서 가장 잘 알고 작품도 보았던 아티스트는 얀 슈반크마예르가 거의 유일했다. 워낙 거장이기도 하고 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의 존재로 언급되던 그였기에 보았던 작품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퀘이 형제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곧바로 얀 슈반크마예르가 떠올랐던 이유도 그들 역시 슈반크마예르의 지지자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단순한 카피가 아닌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완벽히 창조해냈다는 것이 명확하게 보였다.

 

 

1. 퀘이형제.jpg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초기의 그들은 여느 예술가들과 비슷하게 드로잉을 시도한다. 일명 ‘블랙 드로잉’이라 불리는 이 시리즈는 오직 종이에 연필만을 재료로 하여 전개된다. 가장 뻔하고 간단한 재료임에 조금은 뻔한 초기작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였다.

 

드로잉들은 마치 공기를 흡입하듯 이목을 집중시켰다. 흑과 백의 명암대비로 이루어진 그것들은 남다른 깊이감을 보여준다. 섬세한 농도의 조절로 이루어진 그림들은 퀘이 형제의 초기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정체성을 여실히 뿜어낸다. 인간 실존에 관한 고민과 재료로 전락한 인간 마리오네트의 모습을 통해 이어질 작업들과 유기성을 보인다.

 

201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페트 한트케의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은 설 자리를 잃어 존재의 소외를 겪는 현대사회의 강박을 이야기한다. 퀘이형제의 블랙드로잉 중 동명의 그림은 소설 속 미묘한 불안을 그대로 옮겨온 듯 특유의 어두움을 풀어내었다. 특별할 것 없는 대상만으로 배경 속의 찝찝함을 살려내는 것에 흉내내기 힘든 강점을 보인다.

 

 

[크기변환]사본 -[포맷변환]페널티킥.jpg

The Goal Keeper’s Anxiety At The Penalty Kick, c. 1974–77

 

 

전시장에서는 퀘이 형제의 대표작인 <악어의 거리>가 상영되며 그 촬영에 쓰인 도미토리움이 전시되어 있었다.

 

도미토리움이란, 퀘이 형제의 애니메이션의 세트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은 재료들이 잠자는 집인 도미토리움을 통해 영화 속 흐르는 시간이 아닌 정지된 시간을 음미하고 탐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악어의 거리>는 자신의 무의식에 떨어진 한 남자가 허무가 지배하는 악어의 거리를 배회하는 이야기이다. 침울한 내용에 퀘이 형제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을 더해 더욱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퀘이 형제가 영화의 세트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디테일이라고 한다. 작품 특성상 작은 소품의 클로즈업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흐름 안에서 아주 작은 이질감이 눈에 띈다면 관객은 그 즉시 영화적 세계관에서 밀쳐져 버린다.

 

상영 중인 영상과 그 앞에 앉아있는 관객 사이에 스크린이라는 벽이 있음을, 그로 인해 영화가 삶에 어떠한 영향력도 끼치지 못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 제 4의 벽의 허물어짐이 감독의 의도가 아닌 한 영화의 힘은 소멸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도미토리움은 놀랍도록 정교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시간의 표현이었다. <악어의 거리>의 세계관 속 물건들은 모두 낡고 뒤틀리고 녹슬었으며 먼지가 가득 쌓여있었다. 아주 오래도록 잊혀져 방치되어 아무도 그것의 시작을 모르는 물건들. 도미토리움으로 먼저 보았을 때도 이미 그 디테일에 감탄하였다.

 

그리 크지 않은 네모 박스 안에 정말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져 있었다. 도미토리움을 세계라고 표현하다니, 쓰면서도 진부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것 말고는 더 적절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다.

 

그대로 영화를 보았다. 그 상태로 나는 그것에 홀려버렸다. 퀘이 형제는 창조주가 되어 정말로, 말 그대로, 세계를 만들어 냈다. 아주 섬세한 클로즈업과 카메라의 움직임 속에서도 어떠한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상의 세계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5.악어의 거리 “의상실”.jpg

Street of Crocodiles "Tailor's Shop"

PhotographⓒRobert Barker, Cornell University

 

 

세트만큼 단숨에 주목되지는 않지만 놀라웠던 또 하나는 바로 조명이었다. 퀘이 형제는 촬영시의 조명을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 직접 조절한다고 한다. 도미토리움 세트가 하나의 세계라면 조명과 카메라는 생명이다. 멈춰있는 세계의 시간은 조명에 의해 더욱 생생해지고 카메라에 의해 살아난다.

 

잠자는 도미토리움을 깨우려면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가장 적절한 빛과 어둠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시간의 질감과 공기를 완전히 밀착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작업을 완벽히 해내었다.

 

이 외에도 영화작업이 아닌 공간에 놓아 경험하게 하는 작품과 확대경을 통해 마치 수족관 안을 들여다보듯 구석구석 살펴보게 만드는 형식의 도미토리움까지 다양한 작업들은 그들이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배경으로 깔리던 음산한 음악들과 제1관, 제2관이 아닌 Dormitorium 1,2의 형식으로 붙여진 섹션구성은 전시회장 자체가 하나의 큰 도미토리움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덕분에 잠에서 깨어난 퍼핏(Puppet)이 된 기분이었달까.

 

 

9.해부실의 남과 여 _위조범.jpg

Rehearsals for Extinct Anatomies

"The Inscriber as forger"

ⓒQuay Brothers Koninck Studios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장르의 전시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그 구성과 작품들의 완성도 역시 이번 전시를 봐야 할 이유로는 충분하다. 퍼핏 애니메이션과 그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꼭 추천하는 전시회이다.

 

 

포스터.jpg

 

 



[김유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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