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들려주는 '창의성의 양육' [사람]

창작자에게 창조과정이란 알의 부화 과정과 같다.
글 입력 2020.07.1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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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2009, <엘리자베스 길버트 : 창의성의 양육>

 

 

 

우리 모두가 창작자다.


 

1인 미디어부터 시작해 원데이 클래스나 취미 생활을 통한 다양한 창작이 이루어지는 시대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향력을 가지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은 전부 TV 안에 있었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도 저마다 SNS나 블로그, 유튜브 채널 등을 하나쯤은 가지고 각자의 개성을 뽐낸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의 책을 독립 출판물로 엮어 판매하거나, 작은 카페에서 전시회를 열거나,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편집해 브이로그로 만든다. 모두가 자신의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창조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말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면서도 동시에 창작자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의 압박이 프로듀서나 연예, 방송 등 대중에게 노출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 과정에 참여하던 특정 직종 분야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것을 소비하던 일반 대중들에게도 쉽게 찾아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의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테드 토크쇼를 통해 전하는 '창의성의 양육'에 대한 메시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각자의 '새로운 것'을 대하고, 기다리며, 창조해나가야 하는지 작가 본인의 경험을 들어 조언한다. 가장 빛나는 이력을 남긴 길버트에게 사람들은 더 나은 작업을 해내지 못하거나, 앞으로 내내 도태되거나, 그보다 더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 두렵지 않은지를 묻는다.

 

길버트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하는 일을 두렵게 생각해야만 하는 ‘창의적인 직업’이 다른 직업들과 구분되는 번민의 딜레마와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창의성과 고통이 본질상 상호 연결성이 있기에, 예술적 재능은 곧 번민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 창조를 업으로 삼아야 하는 인재들에게 무척 해롭고 위험하다고 지적하며 그것으로부터 작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어기제가 필요하다고 독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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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는 영감과도 같은 미지의 신성한 혼이 창의성에 영향을 준다고 여기던 과거 그리스(디먼)나, 로마(지니어스-육체와 분리된 신성한 혼)의 창조관과는 달리,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합리적 인간주의가 예술가들에게 창조를 온전한 개인의 몫으로만 두어 마치 태양을 삼켜 먹으라고 요구하는 것만큼 큰 스트레스를 준다고 말한다.

 

자신이 이 스트레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던 계기가 되어준 한 음악가의 사례를 들어, 반드시 자신이 해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그저 자신의 몫을 한다고 여기기를 조언한다.

 

영감을 주는 ‘지니어스’가 나타나 영감을 주지 않아도, 자신이 해야 하는 몫은 직접 하되, 스스로 ‘올레(지니어스에 의해 경지의 상태로 이른 상태)’라고 격려하는 것이 무거운 불안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비결이었다고 강조한다. 길버트에게 있어 지니어스란 창작에 필요한 무의식의 영감이자, 자신의 의지로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종종 암담하고 어려운 상황이 찾아오더라도, 자신과 ‘지니어스’를 분리하고 대화와 협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인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문장을 창작에 비유해보자.

 

이 말을 길버트가 주장하는 맥락으로 바꾸어 본다면, ‘예술가는 창조를 위해 투쟁한다. 창조는 세계이다. 창작을 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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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창조라는 하나의 세계 앞에서 압박감과 고통을 가장 크게 느끼던 화가라 함은, 단연 '빈센트 반 고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고흐가 그의 형 테오에게 남긴 편지 기록 중에는 ‘왜인지도 알 수 없는 지극히 무서운 감방에 갇힌 죄수 같다.’는 문장이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하나의 세계를 깨기 위한 갈등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러시아 문인 안돈 체호프에 의하면, 길버트가 설명한 과거 그리스의 ‘디먼’이 온 것처럼 스스로 창작을 할 수 있는 존재란 오로지 정신병자뿐이었다. 만약 어떤 예술가가 계획이나 의식 없이 순전히 영감에 의해 창작을 한다면, 그 사람을 정신병자로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그 때문에 창조의 과정에는 반드시 무의식과 의식이 계속해서 반영된다.

 

이때 창조의 결실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내심’과 ‘잉태 기간’이다. 창작은 자신의 의지로서 영감의 때를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걸음 넘어설 때마다 노력이 필요하고, 그때서야 ‘부화작용’이 일어나며 창조의 탄생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창조의 과정에 수반하는 고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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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 갇혀 부화만을 기다리는 병아리가 스스로 ‘언제 이 답답한 알에서 벗어나 태어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병아리가 해야 하는 것은 꾸준히 발버둥 치며 껍데기를 깨고 나가는 것이지, 갑자기 변신하듯 자신이 병아리로 바뀌길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병아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적합한 시기가 아닌 때에는 알이 깨지지 않을 것이다. 창조가 되지 않는 시기상조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창조의 과정은 달걀의 부화 과정과 같다. 알이 자라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불안과 고통의 시기를 포함한 잉태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창작하는 모든 이들은 각자의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병아리와 같다. 무언가 대단하고, 걸출한 것을 단박에 떠올리고 창작해 내는 것은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멋진 창작을 할 만한 영감이 어느 시기에 나에게 찾아와줄지도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때를 기다리며, 잉태 시기와 부화 시기를 정확하게 구분해 지금은 잉태된 ‘과정’의 단계인 것을 스스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때 내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태도란 노력하며 나의 때, 나의 지니어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올레’라고 칭찬해주는 것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이 말은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짜릿한 부화의 순간일 수도 있겠지만, 인내가 필요한 잉태 기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꾸준히 노력하며 계속해서 자신을 응원하는 것이 언젠가 찾아올 창작의 부화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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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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