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도망칠 용기 [사람]

내가 도망쳐 온 것들
글 입력 2020.07.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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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아직 괜찮다고 안심시키더라도 스스로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도망쳐라. 이때 중요한 것은 위험하다고 느끼는 안테나의 감도와, 도망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다. 사람들은 으레 착각하곤 하는데, 도망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용기가 있기에 도망칠 수 있는 것이다.’


1년 전, 책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다가 뒷부분에 잠깐 등장한 이 구절에 큰 감명을 받은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밑에 이렇게 끼적였다. ‘엄청나게 잘 도망치는 나를 변호해주는 구절이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범주 안에서 열심히 도망 다녀야지.’

 

내가 도망치는 소녀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백만 엔걸 스즈코’를 최근 감명 깊게 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백만 엔걸 스즈코’에서 스즈코의 규칙은 간단명료하다. 한 마을에서 일하며 백만 엔을 모으고, 다 모으면 다른 마을로 이사 가는 것. 3년 동안 세 번을 이사하고, 이제 네 번째 이사를 앞둔 나는 덤덤히 작은 짐을 푸는 스즈코의 옆모습에 빠르게 몰입했다.

 

집에서 만들어 온 커튼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이사를 할 때마다 방에 다는 스즈코. 꽤 값을 주고 산 몸통보다 큰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 포스터를 이사 할 때마다 조심조심 떼어 가져가 붙이던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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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늘 도망치고 싶어 했던 것은 바로 사는 곳이었다. 학교 때문에 상경했지만 학교가 있는 동네를 참 싫어했다. 문화생활을 즐기기에는 다소 외딴 위치에 영화관 하나 없고, 몇 안 되는 식당을 돌려가며 혼밥을 하는 것도 진이 빠졌다.

 

무엇보다 동네가 복작복작 시끌시끌했다. 쫙 깔린 좁은 길을 몇 걸음 걸을 때마다 귓가를 스치는 시끄러운 목소리와, 길을 막는 사람들을 주춤주춤 따라가다 보면 진이 쫙 빠졌다.

 

‘고작 이런 이유로 힘들어한다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여기 살잖아.’ ‘고작’ 이런 이유로 나는 짙게 힘들어했다. 그리고 힘들어하는 나를 힘들어했다. 기숙사는 좁았고 아침마다 앞 운동장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지만 견뎌야 했다. ‘다른 애들은 기숙사 못 들어가서 안달인데 넌 왜 못 견뎌?’ 변종 개체가 된 기분이 들게 하는 부모님 목소리가 마음에 울렸다.

 

그러나 취약점이 갖가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나에게 쥐약이 ‘소음’일 뿐이었다. 하물며 식물도 서식지마다 취약한 조건이 다른데, 사람은 더하지 않을까. 결국, 그 동네에서의 시간을 견디고 연명한 결과 몸무게는 5킬로그램이 빠지고, 숨을 힘겹게 내쉬며 패잔병처럼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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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안 보면 된다.’ 물론 싫은 걸 늘 안 볼 수만은 없고 상황에 맞는 대처도 필요하겠지만, 나를 갉아먹을 정도로 싫은 건 안보는 게 낫다. 드디어 정착하게 될 새로운 동네는 내가 직접 찾았다. 조용하고 넓은 거리가 가장 마음에 들고, 가까운 도서관, 예쁜 가로수와 고가도로까지 이곳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매일 불평하고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볼 일도 이제 없다.

 

혹여나 나처럼 세상 속에 발을 딛자마자 도망을 다니는 또 다른 도망자들이 있다면,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조심스레 말해주고 싶다. 도망치고 싶을 때 도망쳐도 서서히 뿌리내리는 날도 올 수 있다고. 비록 지금 도망친다고 해서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망친 곳으로부터 나의 깊이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 기준에 어긋나는 사람이 있으면 쉽게 돌아서 도망쳤지만, 이젠 점차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지속력은 높아지고 있고, 초반에는 어리벙벙하고 쉽게 잘리기만 했던 아르바이트 근무일도 횟수를 거듭할수록 늘어났고, 스즈코가 만났던 나카지마 같은 말만 갖다 붙이기 바빴던 일시적인 호감들은 깊고 정확한 감정 아래 잠긴 지 오래고, 영화 초반의 스즈코처럼 몇 차례 거듭되던 이사 퍼레이드도 이젠 막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고.

 

 



[곽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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