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가 에드워드 호퍼를 좋아하는 이유 [시각예술]

글 입력 2020.07.1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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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호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문화예술 애호가인 국어 선생님은 늘 내가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하고 계셨다. 평범했던 어느 수업 시간, 정확한 맥락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께서 에드워드 호퍼라는 화가를 가장 좋아하신다며 그의 작품을 보여주셨다.

 

아마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에드워드 호퍼야.'하고 되뇌며 다녔던 것 같다. 진심으로 그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다기보다는 늘 유쾌하고 발랄하지만 사색적이고 자존감 높은 어른을 닮고 싶었던 어린 마음이 더 컸다.

 

내가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에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다. 평소와 같이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밤, 불현듯 호퍼의 작품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국어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신다던 바로 그 그림이었다. 나는 그 밤, 처음으로 그림 속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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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잔잔하게 내리 앉은 시각, 붉은 외벽의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필리스'라는 이름의 가게만이 아주 밝은 빛으로 환하다. 통창으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가게 안에는 총 네 명의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부부 혹은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는 함께 앉아 있으나 시선은 각각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중절모를 눌러쓴 남자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여자는 단번에 시선을 끄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지만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그들을 바라보는 금발의 직원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맨 왼편에 혼자 앉은 남자는 뒤돌아 앉은 채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 몸의 반 이상이 그림자로 뒤덮여 한껏 쓸쓸해 보인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도시 속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함을 담고 있기로 유명하다. 다채로운 색감을 사용하지만 함부로 손댈 수 없을 것만 같이 고요하게 느껴진다. 그림 속 인물들도 매우 정적이고 무감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분명한 색감으로 뚜렷한 적막을 보여주는 에드워드 호퍼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것은 정말 시간문제였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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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아침 햇살>이다. 창밖으로 언뜻 보이는 하늘은 지금 막 해가 뜨고 있는 듯 환해지고 있다. 한 여자가 침대에 웅크려 앉아 붉은 외벽의 건물이 끝없이 이어지는 전경을 멍하니 내다본다.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빛은 강렬한 만큼 진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을 여자는 미세한 찡그림도 없이 창밖을 응시하고 있다.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 듯 차갑고 외로워 보인다. 재밌는 것은 내게 이 그림의 고요함이 절망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고, 외롭다. 호퍼의 작품이 내게 위안과 깊은 인상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것에 있다. 우리들은 너무 외로운 나머지, 타인도 외롭다는 사실을 곧잘 잊고 세상에 나 혼자만 남은 듯 괴로워하곤 한다. 남들도 나와 같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위로가 되어줄 때가 있다. 호퍼의 작품은 나에게 그런 '타인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매개였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 자신을 보며 무력감과 고독에 잠겨 허우적대고 있다 보면 정보와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호퍼의 작품은 그런 나를 그림 속 적막함으로 끌어당기고 나와 타인의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솔직하고 허물없이 드러내어 보여준다.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생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 인기 있는 이유는 사실 우리 모두가 닮아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며 안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내 몫의 외로움을 감당하곤 한다.

 

시대가 변하고 우리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끊임없이 변모하면서 인간은 더욱 고독해진다. 모두가 바쁘게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만 정체된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잦다. 하지만 이것은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모두 외롭다. 따라서 잠시 머물러 숨을 고르는 시간과 장소가 모두에게 필요하다.

 

외로운 나와 수많은 타인이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속 인물들처럼 적막하지만 절망적이지 않은, 자신만의 고요를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호퍼의 작품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외로워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게 한다.

 

이제는 진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화가는 에드워드 호퍼야.'하고 말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우리 삶의 외로움까지도 사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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