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 아는 그 리지 보든이 맞나요 [영화]

글 입력 2020.07.0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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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일어난 살인 사건 관련 오피니언이므로 잔인한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영화 관련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친구들이랑 만나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나온 이름, ‘리지’. 두 친구가 관련 뮤지컬을 보았기에 나온 주제였다. 그렇게 리지 보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후 호기심에 찾아본 ‘리지 보든 사건’, 두 차례에 걸쳐 본 영화 <리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리지 보든 그녀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리지 보든은 누구인가?


 

‘리지 보든 사건’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들어본 적이 없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 나 역시 전혀 이에 대해 모르다가 친구들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으니.

 

하지만 적어도 ‘리지 보든’은 사건의 공간적 배경이었던 미국에서만큼은 유의미한 문화적 상징이다. 100년이 넘게 지난 이 시점에도 뮤지컬, 연극, 소설 등 예술작품의 주제로 사용되고 있다. 심지어 아래와 같이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동요에도 리지 보든은 등장한다.

 

“리지 보든 도끼를 들어

엄마를 40번 내리쳤다네

자신이 한 짓을 보고는

아빠도 41번 내리쳤다네”

 

‘리지 보든 사건’은 저 동요의 가사와 유사하다(물론 가사에는 과장이 있다). 이 사건은 1892년 8월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다. 자신의 저택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부부 중 남편 앤드루 보든은 도끼로 13차례, 아내 에비 보든은 18차례 공격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체포되었던 사람은 알리바이가 유일하게 불충분하고,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던 둘째딸 리지 보든이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893년 6월 재판 후, 결정적인 물적 증거가 없어 같은 해 6월 20일, 그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리지 보든 사건’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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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지> 재판 장면

 



리지 보든은 ‘왜 죽였는가’. 아니, ‘죽이긴 했는가’


 

전 세계를 경악게 한 이 충격적인 미제 사건은 후대 예술 창작물들의 주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리지 보든이라는 실존 인물은 수많은 예술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사건 당시 리지 보든 외에 별다른 용의자가 없었기 때문에 예술계는 ‘리지 보든이 죽였는가?’가 아닌 ‘왜 죽였는가?’라는 질문에 모두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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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지>의 리지 보든과 브리짓

 

 

영화 <리지>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토리 내내, 이 영화는 리지 보든의,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죽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리지 보든을 당시 사회에서는 흔하지 않은, 여성 해방적이고 진취적인 인물로 그린다.

 

그녀는 하녀인 브리짓과 사랑하는 사이이고, 남성이라는 이유로 무능력한 삼촌을 동업자로 두며 브리짓을 성폭행한 아버지를 혐오한다. 그리고 직접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자신과 관계가 좋지 않은 새어머니를 대담하게 살해한다.

 

영화는 실화에서는 내용이 텅 비어있는, 리지 보든이 ‘왜 죽였느냐’의 답을 서사적으로 풀어가면서 여성으로서의 해방, 금기시되어 있는 것의 깨뜨림을 다루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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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지> 아트 포스터

 

 

영화를 본 후 포스터를 찾아봤다. 메인 포스터 외의 아트 포스터를 보며 레터링이 예쁘다는 생각 다음으로, 바로 아래의 ‘파격 실화 드라마’가 눈에 띄었다. ‘도대체 어느 부분이 실화 드라마라는 것이지?’

 

물론 마케팅 전략이라고는 하지만, 영화 ‘리지’의 이야기에서 다뤄진 결정적인 부분은 허구이다. 아니, 영화의 시작과 끝(리지 보든은 용의자의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다, 그리고 무죄 판결이 난다)을 제외하면 모두 추측에 그친다. 그런데 실화 바탕도 아닌 실화 드라마라니… 예술계가 바라본 리지 보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리지 보든은 누구인가?


 

실제 리지 보든은 누구인가? 그리고 리메이크 작품들이 그리는 리지 보든은 그 리지 보든이 맞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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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보든의 실제 모습

 

 

‘리지 보든 사건’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는 살인 사건의 전말을 보통 다룬다. 그 작품들 속에서 리지 보든은 더 이상 1890년대 당시 실존했던 리지 보든이 아니게 된다. 아무도 베일에 싸인 과거의 리지 보든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실화 바탕’이기에, 실제 이야기를 찾아본 적이 없는 작품의 관객은 리지 보든을 희대의 살인자로 기억한다.

 

물론 리지 보든 실화에서 비어 있는 구석을 좋은 메시지들로 채우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정작 아무도 실제 리지 보든을 직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저 그녀를 환상적인 인물로 만들어, 자극적이고 드라마적인 고전 스릴러에 접목시키고 있다. 실존 인물, 실제 사건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과 사건으로 전설 잔혹동화를 만드는 격이다.

 

한 작품이라도, 실제 리지 보든이 누구인지, ‘왜 죽였는가’가 아닌 ‘죽이긴 했는가’를 다루는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것이 나의 작은 바람이다. 그것이 리지 보든이라는 인물을 똑바로 바라보고 통찰하는 가장 좋은 방법 아닐까.

 

 

[노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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