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누구의 언어

글 입력 2020.07.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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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요즘 애들 같지는 않아.”

 

집에서 혼자 머리를 자르고 있다는 말에 수화기 너머로 낯선 목소리가 옅게 튕겨져 나왔다. 엄마의 친구분 이랬다. 본론으로 돌아가, 엄마의 염색 가운을 빌려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뒤, 친구분들께 짧은 인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느 미용실을 가든 항상 숱이 많다는 소리를 듣는 머리카락을 붙들고 멍하니 가위질을 하며 지나간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요즘 애들 같지는 않다.

 

머리를 다 자르고, 감고, 말리고, 몸을 쉬일 즈음이 되어서야 난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요즘 애들이 아니면 그 요즘 애들은 무엇이며, 그 요즘 애들과 다르다고 내가 요즘 애들이 아닌가? 요즘 애들이 나 같은 수도 있는 거지.

 

이렇게도 짧은 하나의 반대 의견을 마음먹기까지 그에 비해 과도하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그런들 이 시간의 존재를 알아채기까지 걸렸던 시간보다는 짧다.

 

멀지 않은 과거에, 참 오랫동안, 모두가 날 마냥 착한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살았다. 순진함이 도를 지나쳐 오만하기까지 한 이 바람을 괜찮게 둘러대자면 인류애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쭙잖은 이기심이었다. 맞먹는 반응이 아니더라도 허용하지 못할 반응은 안 나오겠지 했다. 문제는 무작정 착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상대를 허용하거나 말 기준이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동시에 나에게서 내가 희미해졌다. 공감하고 동조하기에 급급하였기에, 뭐든 내게 넘겨지면 ‘이정도면 괜찮은 것’이 됐다. 내가 나를 모르는 것은 거절하는 법을 모르는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것보다 더 위험했다.

 

마냥 착하기를 그만두고 나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한 문장이라도, 온전한 나의 생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말이 습관적으로 나오듯, 글도 습관적으로 나온다. 그래서 몇 번이고 곱씹었다. 이 문장이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진짜 나의 것인지.

 

어느 날은 이런 말을 썼다.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회의적이다. 모든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은 기표일 뿐, 이미 존재하는 다른 단어들의 기의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우정, 애정, 감사, 죄책감, 설렘, 안정, 보답. 이렇게 이미 이름이 존재하는 감정들을 사랑이라는 말로 감성적이고 상징적이게 포장하는 거지. 그리고 그 안에서 감정이, 의미가 변해도 계속해서 사랑이라고 부르며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거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는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의도가 감정적이고 상징적인 포장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아직 헤아리지 못하는 여러 의도 중 하나는, 이제 막 파헤쳐 나와 알게 된 다른 하나의 의도는, 나머지 단어들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이고 벅찬 감정을 한 번에 표현하기 위함이라는 것.

 

아름다움도 그렇다.

 

뇌리에 남아있는 어릴 적의 청명한 순간들은 매번 최소한의 불안감을 동반했다.

 

하교를 앞두고 창밖에서 풍겨오던 간질거리는 모래 냄새, 평화로운 감각만을 상상하게 하던 맥락 없는 공책 표지들, 장마를 달고 오던 검푸른 빛 하늘, 홀로 깬 박명 속에서 유난히 스프링이 크거나 종이가 큰 공책을 펴던 일요일 아침. 행복감과 별개로 행복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이 생생한 순간들의 매듭은 항상 불완전하게 지어졌다.

 

꾸준히 변덕스러운 내 취향을 꾸준히 되돌리는 한 가수를 소개하며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의 경이로움은 그것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내지는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을 수반한다. 그렇게 아름다움은 지닐 때가 아니라 그릴 때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사랑을 말할 때와 마찬가지로, 더 정확히 감각할 수 있는 단어들로 설명될 어떤 것을 굳이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다. 그래서 난 어떠한 순간 자체가 아닌 그것의 기억, 염원이 아름답다. 지닐 때가 아닌 그릴 때,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구체적이고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대신, 모순적이게도 어렴풋하며 확실하게 떠다녀 손에 닿지 않는 어떤 순간이기에, 아름답다는 말이 퍽 어울린다.

 

쓰여 있지 않았다면 긴 목욕 한 번에 생기고 날아가 버릴 생각이, 일기에 머물자 나날을 걸쳐 더 넓고 깊게 스며들었다. 기록하는 습관은 생각하는 습관으로, 말하는 습관으로, 행동하는 습관으로 점차 번져간다. 그리고 말을 뗀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이제서야 나에게 언어가 생겼음을 느낀다. 그렇게 요즘의 난, 흔하지만 불리기에 따라 특별한 이름을 가졌으며, 영화 기생충을 좋아하지 않고, 음료 아침햇살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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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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