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위치를 인식하는 방법 [문화 전반]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글 입력 2020.06.22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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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에는 중랑천이라는 하천이 있다. 나에게 이 중랑천은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약 5km 정도 범위로 뛰거나 걸을 수 있는 장소이다. 그런데 어느 날, 중랑천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다는 친구의 말의 나도 중랑천이라며 만나자고 하려 했는데, 실제로 10km 이상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친구의 인스타그램 속 사진이 내가 아는 중랑천의 풍경, 그 육교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랑천: 경기도 양주시에서 발원하여 의정부를 지나 남류 하여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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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를 결정하는 사회적 언어 - ‘중랑천에서 만나자’는 말에 암묵적 합의로 어떤 친구와는 공릉역 인근에서, 다른 친구와는 태릉입구역 인근에서 만난다. 또 다른 친구와의 중랑천 만남은 왕십리 근처이다. 이렇듯 우리의 위치에 대한 인식은 실제와 상관없이 그것을 규정하는 언어가 된다. 어떻게 보면 실재하는 것은 언어일 뿐일지도 모른다.

 

외부 대상과 경험을 통한 상대적 인식 - 중랑천에 대한 경험이 쌓인 후, 표지판이 없을 때 나의 위치를 가늠하게 해주는 건 농구장, 육교, 돌다리, 배드민턴장, 공공화장실, 공사장, 때로는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낙서가 되기도 한다. 한 번은 평소 달리던 반대편에서 달렸는데, 익숙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매우 낯설어서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반대편에서 보는일은 생각만큼 실제 경험과 잘 상응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 어디에 있는가? -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기억 경험, 언어, 타자와의 관계 등 많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또, 현시대에 우리의 위치는 물리적인 신체의 존재함뿐만 아니라 미디어 속 세계가 되기도 한다. 타인의 삶과 가상의 공간을 오가며 배회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동일한 시대, 장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각자의 내면과 시간으로 움직여, 자신의 인식대로 스스로가 속한 공간을 담고 살아간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았기에 볼 수 없는 타자의 위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가시화하는 작가가 있다. 작가의 작업과정을 기록한 작업노트를 엮은 책과, 그 안의 대표작 하나를 소개한다.

 

 


보이지 않는 말들 – 천경우 작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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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우는 사진으로부터 출발해서 퍼포먼스, 영상, 나아가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과 인간의 교감을 다루는 작업을 한다. 다수의 퍼포먼스 작업에서 익명의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작가이다.


‘Happy journey’는 인도 뭄바이에서 이루어진 공공미술 프로젝트이다. 천경우가 기차역에서 만난 사람들을 직접 작품에 참여시켜 프로젝트를 완성했는데, 인도의 모든 기차표 상단에 붙어있는’happy journey’라는 단어에서, 결코 모두가 행복하지만은 않을, 무거운 짐을 진 인도의 고단한 기차 여행자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느꼈다고 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버리고 싶거나 타인에게 주고 싶은 물건 하나를 가져오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이름과 함께 물건이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나 먼 곳에서 왔는지를 적어주십시오."라고 요청했고, 조금씩 모아진 물건들을 제작한 테이블 위에 하나둘씩 쌓았다. 그 물건들은 아주 다양했다. 딸이 태어나서 처음 신었던 분홍색 양말, 20년간 끼고 다니던 팔찌, 폐병을 앓았을 때 찍었던 엑스레이 사진, 자신을 오토바이 사고에서 구해준 헬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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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낯선 나라의 공공장소에서 보통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작품을 시도할 때면 누가 누구를 관찰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결국 우리는 서로를 통해 스스로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런 과정의 의미는 물건에 담긴 각자의 이야기, 개인의 흔적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일부분이나마 상상해 봄에 있지 않을까. 그리고 분명히 다른 타인에 대한 지각은, 지구 반대편에 있던 같은 공간을 스쳐 지나가던, 나와 닮은 지점을 발견하고 나의 위치 또한 가늠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천경우의 작업들은 사진과 영상 등의 매체를 사용해 우리가 작업을 만나는 것은 역시 퍼포먼스의 이미지나 영상이 되지만, 그가 보여주는 타인과의 소통의 방식은 관객에 하여금 그저 관찰자의 역할이 아니라 개인의 경험을 불러일으키며 실존의 감각을 느끼게 해 주는 데에 강한 울림이 있다.

 

 

[박은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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