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나와 나 아닌 너, 타인이 있다. 나와 타인은 보이지 않는 실들로 묶여있다. 그 실들이 얽히고 설켜서 관계를 형성한다. 관계를 맺으며 집단을 만들기도 한다. 집단 속에 소속되었을 때 사람들은 소속감을 느낀다. 집단에 속하지 못한 자는 소외감을 느낀다. 변두리로 내몰려 소외된 한 인물이 있다. 그는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죽었다. 그와 인연이 닿았던 누군가가 도와줬다면 그는 살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립되어 있었고 고독했다. 세상이 나를 외면하고 있는 것만 같아 자살을 결심했다. 그때 그에게 걸려왔던 한 통의 전화가 그의 자살을 막았다.
고독한 그의 첫 등장이 눈길을 끌었다. 희망을 잃은 듯한 애처로운 눈빛에 자꾸만 집중하게 되었다. 의자를 천천히 끌고 오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의자 위를 내딛는 그의 발을 보면서 tvn 단편 드라마 <소풍가는 날>의 첫 장면이 생각났다. 그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끊어버리기 위해 의자 위를 올라갔다. 그 주인공의 자살을 막은 건 옆집이었다. 주인공과 단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주인공을 부르는 노크 소리가 주인공의 발을 의자 위에서 내려오게 했다. 단지 우연이었다. 우연이 두 개의 결과를 만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연극 속의 그에게 유일한 희망으로 다가왔던 사람은 광고성 전화를 돌리고 있던 부동산 딜러였다. 연극 속 부동산 딜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전단지를 돌리며 영업을 하는 몸짓이 자연스러웠다. 돈 되는 일이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물질만능주의의 전형적인 인물로 비춰졌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특징을 이야기하며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목에 핏줄을 세우는 부동산 딜러의 모습은 빈곤과 질병의 압력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와는 대조되었다.
목표를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가는 부동산 딜러에게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자꾸만 자신을 귀찮게 하는 경찰서의 부름에 못 이겨 부동산 딜러는 경찰서에서 수사를 받았다. 부동산 딜러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딱 잘라 말했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관계없는 사람이라고 소리치며 나오는 부동산 딜러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 연극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표정이었다. 잠깐 스치듯 지나가지 않고 관객들에게 몇 초간 보여줬던 오묘한 눈빛은 무엇을 의미할까. 마음 한 곳에 남아있던 죄책감이었을까.
희망은 처음부터 없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뭉개졌다. <소풍가는 날>의 드라마는 없었다. <소풍가는 날>의 주인공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주인공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던 이웃은 그에게 살아나갈 용기를 주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꿋꿋하게 헤쳐 나갈 수 있게. 하지만 부동산 딜러는 자신과 관계가 없으니까 선을 그었다.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았다. 곁에 아무도 없던 그가 인연의 끝을 붙잡기 위해 걸었던 한 통의 전화는 마음의 상처만 더 커지게 할 뿐이었다. 제발 살려달라고. 그 말 한마디가 하고 싶었을 텐데. 기회조차 만들지 못하고 짓밟혔다.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더 가슴 아팠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비극은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관심이었다. 부동산 딜러가 그의 전화에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와 타인,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서로에게 걸어주며 살아간다. 혼밥족, 혼술족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로 이 시대는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 집중하며 살아가지만 우리에게 아직 타인은 필요하다. 언제든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잔재한다. 내가 아닌 타인이라는 존재에 관심을 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관심이 눈덩어리처럼 불어나 기적을 만들 수 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본다.
* 연극 <관계없는 사람>은 2018년도 하나다 페스티벌에 참여한 극단 동녘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