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글 입력 2020.06.2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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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피니언은 필자가 영화를 보고 한 이런저런 생각들이기에 모든 생각이 영화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

할머니는 영화 프로듀서였던 찬실에게 이제껏 무슨 일을 했냐고 묻는다. 뭐, 돈도 끌어 오고 사람도 모으고요. 마흔 살이 되기까지 모든 것을 바쳐 온 그 일을 말로 명확하게 설명조차 할 수 없어질 때 찬실은 방황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확신할 수 없을 때 말로 꺼내기 두려워지고 말로 꺼낼 수 없게 되는 순간 그건 있다가도 없는 게 되어 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없는 것도 실체인 것마냥 말로 포장하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있는 걸 말로 자신있게 내뱉지 못한다. 슬프지만 진실된 일이다. 어쨌든 스스로 확신해야 내뱉을 수 있다는 거니까.

 

#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 2

사실 이건 브로콜리 너마저의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노래 가사의 일부다. 커뮤니케이션이 뭔지 이해해 보고 싶었는데 이해하고 설명하기는커녕 이해할 수조차 없었다고?!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이 그렇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실상을 열어 보면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것들. 이게 그거 그게 저거 저건 또 이거. 한 단어로 어떻게 붙잡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는 것들이 참 많다. 빠져들기 시작하면,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게 아니라 '일들만'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어. 대신, 애써서 해.

다 늙어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진 할머니는 욕심이 없다. 다만 오늘 하고 싶은 일은 애써서 하며 산다. 이를테면 콩나물 다듬기 같은 것. 나는 아직 어려서 멀리 보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많고 그러기 위해 해야 하는 일도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내 눈 앞에서 날 기다리는 하루하루를 애써 쌓아가는 일 역시 중요하다. 단단하고 빈틈없게, 차곡차곡 겹겹이 성실하게 기뻐하면서 쌓아 나가야 하는 거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삶도 저물고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카프카가 한 말이지만 카프카만 한 생각은 아닐 거다. 굿 플레이스에 사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사후생활(사후생활이라니 어쩜 이렇게 모순적인 말이!)이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 시절 한 코너가 끝났다는 걸 알리는 음악소리가 그렇게나 허탈하게 느껴졌던 건 영원했으면 했던 주말이 영원하지 않았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생동하는 작은 자연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그게 변하고 사라진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쉬운 건 기약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날마다 기막힌 새벽

유튜브 <날마다 기막힌 새벽>을 진행하는 김동호 목사는 65살에 은퇴하고 나서 죽기 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신나게 놀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다가 69살, 덜컥 암에 걸린다. 그리고 암을 계기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한다. 채널 홍보는 절대 아니다. 나도 안 듣는다. 중요한 건 이분이 암이라는, 삶의 기약을 느끼게 해주는 경험을 하고 나서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느라) 기막힌 새벽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삶의 기약들을 그냥 대충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들숨과 피부로 느끼면 새벽은 더이상 졸리기만 하지 않을 거다. 공기는 새롭고 새벽은 기막힌 하루들을 살고 싶다.

 

#마음에 홈집이 생기면

왜인지 요즘 접하는 컨텐츠들은 다 집이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집이 인생의 목표였던 세희(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행복을 위해 가장 먼저 집을 버린 미소(영화 <소공녀>), 평생의 꿈과 집을 동시에 잃은 찬실(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의식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이 세 가지 중에서 유독 '주'는 갖추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다. 대체 집이 뭐기에! 세희에게 집은 마음의 흠집이자 그 흠집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기 위한 은신처고 미소에게 집은 자신의 흠집을 잊게 하는 위스키와 담배, 남자친구다. 그리고 찬실은 원래 살던 집을 잃은 동시에 마음의 흠집을 얻고 새로운 집에서 살게 되지만 그 집에서 마음의 홈을 메울 수 있게 된다. 집은 마음의 빈 구석을 메운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집이 필요하다.

 

#다시,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의 끝으로 가면 '찬실이는 복도 많지'라는 말은 집과 꿈과 직장을 한 번에 잃은 딱한 찬실을 불쌍해하며 하는 말이 아니다. 찬실의 옆에는 자신을 위해주는 친구,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마음 속 장국영, 한글을 가르쳐 드리고 인생을 가르침 받는 집주인 할머니가 있다. 이 따뜻한 사람들 모두는 찬실의 마음 속 홈을 메우고 찬실은 다시 한 번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거기서 얻는 행복, 또 배당되는 몫이 많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정말로, 찬실이는 복이 참 많다.

 

 

[이경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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