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태도가 작품이 될 때; 우리는 다르지만 함께할 수 있다 [도서]

글 입력 2020.06.2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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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다르다는 이유로 상처받지 않는 세상, 평등, 의식, 자유 등과 같은 개념을 스스럼 없이 꺼낼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예술은 어떤 태도에서 시작되는가?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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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태도가 작품이 될 때'는 1969년 스위스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열렸던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의 역사적인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When Attitudes Become Form)'에서 가져온 것이다. 미술의 관습적인 틀을 거부하는 새로운 작품의 형식과 전시 형태를 제시했던 정신을 이어받아 태도로부터 탄생하는 가치를 탐구한다. 본 저서에서 언급되는 작가들도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작업을 시작하며 '일반적'이라는 이름하에 견고한 진리로 간주되어온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태도가 예술이 될 때>에서 박보나 작가는 각 챕터마다 다른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이를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적 현실과 밀접하게 서술해나간다. 글은 대부분 《한겨례》에 연재했던 것들을 선별해서 다시 쓴 것이다. 2016-17년 당시 참담하고 혼란스러웠던 한국 사회를 진보적인 시각으로 비판하며 굉장히 명확하고 본질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작품과 연관성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의 말에서 '이 글을 나의 태도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언급한 작품들의 태도와 작가의 글은 정직하고 상식적인 사회에 대한 소망을 반영하고 있다. 두루뭉술 난해하게 여겨지는 현대미술을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과 얼마나 밀접하게 바라볼 수 있는지 보여준다.

 

바이런 킴의 대표작, <제유법(Synecdoche)>을 언급한 두 번째 글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작품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를 관찰하고 지금 2020년의 세계를 마주한 우리들은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더 시끄럽게 서로의 차이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교환학생 시절 강도를 당해 흑인인 용의자의 착의를 재판에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피부색의 흑인이었나요?"라는 질문에 작가는 "검은색이었다니까요, 그냥 흑인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이에 변호사는 커피 갈색, 옅은 갈색, 진한 검은색, 푸른 검은색, 혹은 회색에 가까운 검은색 등 검은색은 굉장히 다양하다며 '그냥 흑인'은 없다고 지적했다. 작가는 당시 굉장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제유법은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피부색이 가진 사회적 관념은 부끄럽게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는가. 인종적 계급화 문제는 2020년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태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지긋한 아픔이다. 제유의 세계에서 이름, 성격, 특정한 맥락, 환경 따위는 잔인하게 사라지고 '그냥 흑인' 정도로 과-집단화 되어 말 그대로 정말 죽음을 당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고 귀찮아서, 웃고 떠드는 소통에 전혀 해가 되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제유되어 사라지는 수많은 개인들. '그냥 검은색'으로 치부했을 때 사라지는 수많은 푸른 검정, 붉은 갈색, 회갈색, 진한 검정들.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지 않은 순간 이미 차별과 폭력은 시작되었다. 우리가 몰라도 될 것은 생각보다 없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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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ron Kim, 제유법(Synecdoche), 1991–present, oil and wax on wood, collection of the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installed at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한국계 미국 미술가 바이런킴의 대표작 <제유법synecdoche>은 흑인, 황인, 백인 정도밖에 이름 짓지 않은 우리의 관계 언어적 한계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4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피부색을 격자형 패널에 담았고 판의 배열은 모델들 이름의 알파벳 순서를 따랐다고 한다. 사회적 서열, 인식적 위계를 배제한 채 배치된 다양한 피부색들에게서 중심은 찾을 수 없다. 어떠한 집단화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하나 하나 존중받을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아주 극미한 것으로 무한한 것을 연결해 보고자 한다’라는 작가의 말이 보여주듯, 작품에서의 '피부색'이 취향, 취미, 성격, 외모, 견해 등의 모든 차별이 될 수 있는 대상들을 수사하는 것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바이런킴의 작품처럼 차이를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낼 때 집단화, 계급화되어 소외된 가치들을 지켜낼 수 있다. 일상에서 인식하지도 못한채 '제유'해버린 타자, 그리고 나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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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the shape of water'


 

'제유'되면 사라질 작지만 나의 가장 본질적인 것을 잃지 마세요. 우리는 다르지만 함께 할 수 있어요.

 

드러낼 때 다름은 존재가 되고 존재가 곧 존중이 될 수 있다. 만연하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것들, 보기에 별로 좋지 않다는 이유로 희미해졌던 그런 것들을 진실로 꺼내주는 책이다. 보이지 않기에, 또 보지 않았기에 없는 셈 쳤던 모든 소외된 것들을 세상으로 꺼내주는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태도가 (  )이 될 때'


 

'이 글 제목에 빈 괄호를 넣은 이유는 이 책을 읽는 분들이 각자의 관점으로 세상과 글과 작품을 해석할 여지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작가들처럼 관습적 질서를 거부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이 괄호 안에는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고, 어떤 것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으며, 어떤 방식이든 유연하게 그 시작과 끝을 열고 닫을 수 있다.' _박보나

 

우리는 어떤 태도로 괄호를 열고 닫을 것인가.

 

 

[정다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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