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계절에 어울리는 여성 작가의 소설 [도서]

글 입력 2020.06.1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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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단순한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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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진심』은 ‘정문주’와 ‘박에스더’, ‘나나’를 살아낸 여자가 이름이라는 단문의 기원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이 책에는 끝내 가라앉으려 할 때 기적처럼 다가온 손마디를 움켜쥔 사람이 있고, 당장은 확신할 수 없지만 나아감을, 함께할 수 있음을 믿는 몸짓도 있다. 한 생애를 끌어안겠다는 다짐은 소설의 한가운데에서 비틀거리며 밝게 빛난다.

 

이들이 연루되기를 서슴지 않으며 서로에게 베푸는 호의는 기적 같다. 애씀이 뚝뚝 묻어 삐걱거리기보다 자연스러운 이끌림이므로, 책의 제목처럼 ‘단순한’ ‘진심’이기에 더 고무적이다.

 

 
대단해. 복희에게서 받은 스티로폼 상자와 마트에서 사온 식료품을 냉장고에 넣으며 나는 속삭였다. 앙리가 살아있었다면 내게 해주었을 말이었다. 이마와 눈썹 사이, 코끝과 입술 사이, 뺨과 턱 사이에 숨어 있던 잔주름이 빠짐없이 돋아나는 미소 띤 얼굴, 내가 좋아했던 바로 그 얼굴로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나, 나를 할아버지로 만들어 주다니, 정말 대단해.
 

 

 

구병모,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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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해로부터 강력한 것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구병모 작가의 소설에선 이렇게 재현된다. 목뒤에 앙증맞게 자리 잡은 샐러맨더, 어깨의 표범, 오른쪽 등의 우키요에는 위험 속의 인물들을 구하고 제 일을 다 했다는 듯 묘연히 떠난다.

 

충동적으로 몸에 새긴 타투가 초월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담긴 기도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악의와 위협으로부터 부디 나를 지켜달라는 마음 같은 것들.

 

초판 몇천 부는 찍었을 이 책, 내 앞에 놓인 지우개가 특이한 연필, 선물 받은 유리컵이 내게 유일함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의 이야기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수 중 하나에 그쳤을 무언가가 나를 만나 맥락을 가지게 될 때, 이것은 다른 것과 같지만 같지 않은 것이 된다.

 

끔찍한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아빠, 알지도 못하는데 혼자 결혼까지 간 스토킹범, 안하무인한 사장 등, 악의 가득 찬 세계의 표상들을 단지 겁주기에 끝내지 않고 죽이는 게 좋았다.

 

중년의 여성 주인공 ‘시미’가 도덕적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열띠게 고민하며 자기 안의 충동을 발견하는 것 역시 좋았다. 시미의 손목에 수놓인 별이 하늘에 떠올라 이내 쏟아지는 장면은 책의 제목 그대로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가 되었다.

 

 
왜 그렇게 기운이 없니. 네가 그리 말했잖아. 무엇보다도...... 염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했잖아. 작고 귀여운 샐러맨더가, 세상의 모든 악의와 위협으로부터 널 지켜줄 거라고.
 
 
충동이 솟는다는 건, 태울 에너지가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세상 누구보다도 빛나기를 바라는 열망이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김애란, 『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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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곳이 곧 나를 말해주는 것이 될까봐 두려웠던 ‘그때’ 혹은 지금. 나를 웃돌던 온기는 소설이라는 강력한 매개를 통해 여전히 유효하게 감각된다. 지난날의 부끄러움과 무모함을, 어리석음을 가뿐히 감싸주는 사려 깊은 문장과 함께.

 

김애란 작가의 소설은 읽힌다기 보다 감각된다. 이를테면 도시의 변두리에서 페달을 밟는 이가 매순간 느끼는 서늘함으로, 언젠가 같은 공간을 점유했던 이가 남기고 간 단 하나의 온기로. 풍부한 표현은 어느새 클리셰가 되어 지겨움을 얻은 고유명사들에게 청민함을 부여한다.

 

나는 그가 집요하다시피 같은 군상의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쓰는 게 반갑다. 끊임없이 변주되는 불행의 알고리즘이 산산이 조각나기 전까지 문학은 언제나 그들을 향한 헌정이어야 하니까.


 

[곽성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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