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처음으로 바쁘지 않은 생일을 맞이하다 [사람]

글 입력 2020.06.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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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가하고 여유로운 생일을 맞이해 본 적이 없다. 기억 속에 나의 생일날은 항상 바빴고 정신 없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6월은 항상 부지런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막바지 시험 기간에 걸쳐 있었고, 대학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게 과제와 기말 시험을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생일을 비롯한 기념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게 된 데는 이런 시기상의 이유가 한몫한 것 같다. 선물을 주고받는 게 하나의 유희였던 어린 시절에나 조금 기대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일을 내가 까먹기 일쑤였다. 가족들이 생일 케이크를 챙겨줄 때가 되어서야 ‘생일이구나’ 하는 식이었다.


태어난 날이라는 게 나에게 있어 별달리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하나 달리 마음먹게 된 것은 바로 사회적인 까닭에서였다. 일 년에 한 번씩 다가오는 누군가의 생일이라는 건 그 사람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건네어 볼 좋은 핑계거리가 되어 준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네가 생각나서 연락해 봤어’ 따위의 인사말을 보내는 행위는 상당히 수상쩍게 받아들여질 위험이 있다면,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생일에 인사를 건네는 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는 꽤 고마운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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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 들어서는 이게 상당히 편해졌다. 201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현상으로 당당히 자리잡아 마땅한 카카오톡이라는 서비스는, 연락처에 등록된 사람들의 생일을 프로필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그 뿐인가. 클릭 몇 번으로 상대가 ‘위시리스트’에 담아 둔 선물 목록을 보고 순식간에 선물을 전해줄 수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떤 이들에게는) 다소 성의 없이 여겨졌을 이 선물 증정 방법은 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엄청나게 각광받고 있다. 어떤 통계 자료를 발견해서 하는 말은 아니고, 순전히 경험담이다. 작년에 비해 두배는 많은 기프티콘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프티콘 선물을 왕창 받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것 역시 코로나와 관련이 있다. 바로 ‘바쁘지 않은 6월’을 처음으로 맞이했다는 점이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면서 놀고 있는 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육신이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상하게 직장이나 학교를 오갈 때보다 집에서 뭔가를 할 때가 훨씬 ‘할 일 없어’ 보여서 그렇다. 내가 직면한 현실이 어떠하든 간에 현재 나의 일상은 평온하기 그지없고, 작년보다 훨씬 많은 축하 인사와 선물 세례가 들어오는 걸 보면 다들 비슷비슷한 상황이구나 싶어 미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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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대면 만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이유가 되지 싶다. 그 전까지는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 원치 않아도 ‘얼굴 한번 보자’ 류의 말을 꺼내야만 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만날 필요도 없는데 뭐가 부담이 되겠는가.

 

이 시국이 끝나고 나서도 이런 기념일 문화가 디폴트로 자리잡게 되면 어떨까. 모바일로 선물을 주고받는 게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게 되면, 애매한 관계의 지인들에게 안부를 건네는 일도 더 쉬워질 것이다. 그러면 전 같았으면 결국 끊어져버렸을 지도 모를 ‘느슨한 연대’가 다시 살아나는 경우도 생길 지 모르는 일이다.

 

여러모로 대인관계의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방식은 얼마나 변화하게 될까? 한 해에 한 번뿐인, 그러나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스쳐보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생일이다.

 

 

[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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