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을 위한 방향성 찾기 ; 애당초 좋은 삶이란 존재하는가?

그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글 입력 2020.06.13 23: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당대 사회를 반영하는 문학은 사회의 혁신을 이끌어낼 힘을 지니고 있다. 예술은 사회를 변화시킬 힘이 있기에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문학을 그 매개체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삶의 가장 본질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마냥 바쁘게 살아가기보다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어떨까.

 

삶의 목적을 위해 행하는 일이 되려 그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행복을 위한 경쟁에서의 승리가 되려 행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보편적인 삶의 목적이 ‘행복’일 것이라 자부한다. 나는,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 위해 좋은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너무 바삐 살아가기에 좋은 삶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본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허상을 쫓아 달려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당초 좋은 삶이란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

 

D는 울부짖으며 나에게 찾아왔다. 모두가 떠들어대는 좋은 삶은 바라지도 않으니, 네 발로 기어서라도 평범한 젊음을 살게 해달라고 사정(事情)하더니 까무룩 잠에 들었다. 아니, D는 평범으로 포장된 ‘좋은 삶’을 쫓다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D에게의 전언

 

우리는 그 어느 것도 소유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의’는 관형격 조사일 뿐, 본디 한국어에는 소유격 조사가 없습니다. 소유격이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헛발질에 불과합니다. 평범을, 그 속에 내포된 좋은 삶을 쫓는 것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의 것을 쫓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좋은 삶'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인류의 단 10%도, 그리고 저도 스스로의 삶을 '좋은 삶'이라고 확언하지 아니한데 감히 제가 좋은 삶이 무엇인지 전언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얻은 한가지 깨달음은 좋은 삶이라는 것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형상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김은 최의 삶을 염원하고 최는 박을, 박은 김의 삶을 동경한다.’라는 전제가 주어질 때, D, 당신은 김, 최, 박 중 누가 ‘좋은 삶’을 살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보르헤스가 절대적인 것을 경계하라고 경고한 이유입니다. 어느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는 ‘좋은 삶’에는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에 부를 누리는 것이, 동경을 얻는 것이, 혹은 소박한 것이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이 당신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D, 좋은 삶을 가지고자 한다면 아무것도 좆지 마세요.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위태롭다는 말 따위는 집어 던지고, 아슬아슬한 위험 속에서 숨을 연명하는 삶은 그들이나 실컷 가지도록 내버려두세요. 우리는 모두 그들이 속히 말하는 현실에 도태된 삶을 살 것이고, 목표라는 휘황찬란한 말로 둘러싸인 칼에 난도질 당하는 뱁새가 되지 않을 겁니다.

 

보르헤스, 세상과 나 사이에는 아직 칼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無)’도 꿈꾸지 않으며 세상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칼을 무디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무관심, 사실은 억제하며 칼을 녹슬게 만들고, 누군가는 칼집과 자제력을 마련하겠죠. 우리는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칼에 베이지 않을 겁니다. 나는 어느 목적도, 소망도, 염원도 없지만 나는 살아가고, 나 자신은 내가 살아가도록 내버려두고 있어요.

 

시간이 흐르며 갈라질 여러 방향의 미래에서도 나는 나 자신이고, D 당신은 D에요. 스피노자! 그의 바램 대로 소멸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 모두는 그 순간까지 본질을 잊지 않은 채 원래의 우리로 남아 있을 거 에요. 그러니 D, 미래의 어느 한 점에서 다시 만나요. 그 순간에서, 시달림이 없는, 자유롭고 평안한 상태의 우리에게 말해요. “좋은 삶을 살았군요!”

 

 

[김태연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