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차별의 교차로 위에서 [도서]

글 입력 2020.06.0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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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교차로 위에서


 

고든 올포트는 저서 편견의 본질에서 "인간은 마음의 범주의 도움을 받아야 사고할 수 있다. 그래야 질서 있는 생활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범주의 도움을 받아 나를 분류해보면 나의 성별은 여성, 직업은 학생, 종교는 무교, 성적 지향은 이성애자이며 출신 국가는 한국이다. 나는 상황에 따라 차별을 받는 집단에 속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특권을 누리는 집단에 속하기도 한다.

 

나는 성별의 범주에서 사회적 약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을 향한 사회적 차별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며 분노한다. 하지만 성적 지향의 범주에서 나는 많이 헤아리지 않으면 둔감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차별적 태도라고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단번에 이해를 못 할지도 모른다. 나의 위치로 인해 불평등이 보이지 않게 되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지만 차별이 은근하고 조직적인 방식으로 만연해 있는 사회에서는 차별을 차별로 인식조차하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책의 저자 김지혜 교수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많은 연구자와 학자들의 연구와 논의들을 이용해 분석하며, 자신은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선량한 차별주의자' 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원인을 밝힌다. 나아가 그들이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차별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 차별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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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의 탄생


 

1장에서는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다룬다.

 

우리는 차별이라는 단어만큼 역차별이라는 말을 많이 마주한다. 여성 정책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며, 이주민을 지원하는 정책은 자국민에 대한 부당한 역차별이며 성소수자의 인권보장이 다수의 비성소수자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다수자 차별론을 들여다보면 그 전제는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성차별 문제에 비추어보면, 여성이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객관적 지표에도 불구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바라보는 것의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를 가시화의 영역에서 분석한다. 여성이 대통령이나 고위 공무원과 같은 권력자의 지위를 갖거나, 남성이 많던 직업군에 여성이 있으면 쉽게 가시화되기 때문에 잘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수가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착시가 일어난다. 또한 객관적 지표와는 별개로 일상적인 경험에서는 자신보다 잘 버는 여성들이 존재하는데 데이트 비용을 남성이 다 감당을 하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지는 일도 생긴다. 여성이 평균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은 추상적이라 잘 와닿지 않고, 눈에 보이는 어떤 여성이 자신보다 좋은 조건에 있다는 사실은 구체적인 감각으로 경험된다.

 

하지만 착시를 벗어나서 바라보면 특권을 누리는 계층은 분명히 존재한다. 일상적으로 누리는 특권은 대개 이미 가지고 있는 조건이라서 많은 경우 눈치채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누군가가 시외버스 탑승을 요구하기 전까지는 교통수단 탑승을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결혼을 할 수 없는 동성 커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를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이나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동안 이런 특권들은 대개 알아차리기 어렵다.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흑인 분장과 '바보' 캐릭터가 유머로 소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왜 웃길까? 우월성 이론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약함, 불행, 부족함, 서툶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그들에 대한 일종의 조롱 표현이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대상보다 자신이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론에 따르면 자신의 위치에 따라 같은 장면이 웃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내가 우월해지는 장면이라면 웃기지만, 반대로 내가 깎아내려진다면 웃기지 않다.

 

권력관계는 말의 의미와 결과를 결정한다. 이성애자가 하는 "동성애자가 싫다"라는 말은 동성애자가 하는 "이성애자가 싫다"라는 말과는 같지 않다. 마찬가지로 비장애인이 하는 "장애인이 싫다"라는 말은 장애인이 하는 "비장애인이 싫다"라는 말과 같지 않으며, 국민이 하는 "난민이 싫다"라는 말은 난민이 하는 "국민이 싫다"라는 말과 같지 않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용하는 싫다는 표현은 다르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이다. 무수한 차별은 싫다는 감정에서 기인하고, 그 감정이 누군가의 기회와 자원을 배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혐오가 생산하는 부정의는 폭력의 형태를 띤다. 백인 전용 화장실, 노키즈존, 노스쿨존, 퀴어 축제 반대 집회 등이 그 예이다.

 

앞서 말한 부정의들은 공적 장소에서 특정 존재를 배제하려 한다. 퀴어 문화 축제를 여는 사람들에게 향하는 "꼭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축제를 해야 하느냐?"의 비난은 '성소수자'라는 기표가 공적인 장소에 입장할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전제를 품고 있다. 이들을 향해 너희는 사적 영역에 남아있어야 하며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있으라는 요구가 담겨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 존재를 지워가는 것이다.

 

얼마 전 들은 강연에서 들었던 말 중 하나는 '화는 지식이 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화는 화일 뿐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도, 더 나은 합의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 이제는 화를 내는 것을 넘어 나의 지식과 입장을 만들 차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곽성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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