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찬란한 강아지의 우주 - 환상의 마로나 [영화]

글 입력 2020.06.0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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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는 단연 인간과 가장 친숙한 동물이다. 기원전부터 개와 인간의 관계는 돈독했고, 그 관계는 지금까지도 지속되어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강아지들의 삶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와 이토록 가깝고 소중한 생명체인 강아지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궁금하다. 만약 그들이 원한다면 나는 언제나 기꺼이 그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환상의 마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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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은 순종인 아버지와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믹스견 어머니 사이에서 아홉 마리의 강아지가 태어난다. 아홉 번째로 태어나 '아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강아지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아버지에게 보내진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30분도 보내지 못한 채 떠돌이 개가 된다.

 

곡예사인 마놀은 아홉의 첫 번째 인간이 된다. 마놀은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가 '아나'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실력 있는 곡예사인 마놀이 자신 때문에 서커스단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했음을 안 아나는 스스로 집을 나간다. 그리고 두 번째 인간인 건설업자 이스트반을 거쳐 소녀 '솔랑주'를 만난다.

 

이 작품은 '아홉'에서 마놀의 '아나', 이스트반의 '사라' 그리고 솔랑주의 '마로나'까지, 세 명의 인간과 네 개의 이름을 거친 강아지가 직접 들려주는 견생사다.

 

 

 

행복은 작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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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행복을 바라보는 방법은 인간과 다르다. 이들은 일상의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자신에게 행복은 숫자 9와 따뜻한 우유의 감각이라는 마로나도 그렇다.

 

뼈다귀를 숨길 수 있는 화분, 몇 개의 공, 혼자 있지 않음, 푹신한 자신의 방석 같은 것들은 마로나를 행복하게 한다. 자신의 존재와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행복이다. 살아 있음에서 행복을 얻고 만족하는 삶이다.

 

반면 마로나가 만난 인간들은 항상 문제와 걱정거리가 있었다. 마놀은 가난에 시달렸고, 이스트반은 아픈 어머니와 제멋대로인 아내를 부양해야 하며, 솔랑주의 어머니는 홀로 집을 책임지며 힘들어했고, 솔랑주는 몸과 마음이 시시각각 변하는 예민한 성장기다. 이들은 모두 떠돌이 강아지인 마로나를 불쌍히 여기지만, 마로나도 인간을 동정한다.

 

인간의 풍요롭고 편리한 삶은 행복과 동의어가 아니다. 오히려 순간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로나가 인간보다 밀도 높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충실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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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이 개를 보살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개도 인간을 보살핀다. 마로나는 세 명의 인간을 걱정하고, 신경 쓰고, 지켜준다. 마로나는 인간을 지키는 것이 개의 삶에 가치를 준다고 말한다.

 

마로나의 섬세한 배려는 마놀을 떠날 때 드러난다. 자신 때문에 유명한 서커스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하고 슬퍼하는 마놀의 상황을 마로나는 냄새로 알아차리고 마놀의 얼굴을 핥아준 뒤 떠난다.

 

 

"좋은 후각은 많은 걸 알 수 있다"


 

마로나는 슬픔, 기쁨, 이별의 분위기까지 후각을 이용해 감지한다. 인간의 심경 변화를 인간보다 빠르게 냄새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바뀌었음을 알기 때문에 마로나는 이별의 순간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이스트반이 공 던지는 걸 좋아하고 공을 집어오는 건 싫어해서 자신이 주워준다는 마로나는 이제 그에게 공을 주워다 줄 존재가 없음에 안타까워한다.

 

인간이 주는 약간의 관심과 애정을 개는 자신의 모든 사랑을 담아 보답한다. 개가 인간에게 싫증을 느끼는 경우는 없지만, 인간은 쉽게 싫증내고 개에게도 금세 질려버리기 일쑤다. 인간보다 뛰어난 모든 감각을 이용해 인간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지켜주는 이 존재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로나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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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나의 견생은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가엽고 불행하다. 하지만 마로나의 차분한 나레이션은 철학과 유머를 담아 그의 삶을 담담하고 겸허하게 전한다. 그의 견생은 때때로 외로웠지만 대체로 행복했다.

 

실사가 아닌 화려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개의 시각과 세계 또한 인간의 그것과 다르다. 자유롭고 유기적인 아트웍과 애니메이팅은 강아지의 시선에서 보는 느낌을 자아낸다. 곡예사인 마놀의 몸은 자유롭고 유연한 고무줄처럼 자유자재로 늘어나고 얽힌다. 인간이 이해하는 범위가 아닌 마로나의 시선에서 감각으로 느껴지는 모습을 스크린에 담아낸 것과 같다.

 

마로나의 시각으로 본 세계는 찬란하게 빛난다. 마로나의 목소리로 듣는 우주는 광대하고 기쁨으로 가득하다. 인간인 우리는 주인이 산책하러 나가자고 할 때까지 대소변을 참아야 하는 그들의 마음을 평생 모를 것이다. 주인의 손길이 주는 행복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존재 안에도 그만의 우주가 있음을 잊지는 말자. 인간보다 행복하고, 넓고, 찬란한 그들의 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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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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