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사 없는 음악의 변화무쌍함을 읽으며 – 프랑스 로맨틱 음악의 향연 [공연]

글 입력 2020.06.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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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클래식 음악을 삶의 환희라 불렀고 또다른 누군가는 영롱한 우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가사 없는 편지’라 부른다. 편지의 제목은 ‘상상’, 내게 클래식 음악은 한 편의 소설이기도 어제의 라디오에서 들었던 짧은 사연이기도 한, 가사 없는 편지다.

 


내게 클래식이란 자장가 또는 허전함을 채워주기 위한 잔잔한 배경 음악 그뿐이었다. 의미 그 자체로 고전적인 음악, 그래서 쉽게 마음으로 와 닿지 않던 감성, 모든 곡이 비슷하게 들렸던 클래식 연주회, 나는 그동안 클래식을 피해왔다. ··· (중략) ··· 뿐만 아니라, 없는 줄만 알았던 나와 클래식 간의 역사가 차례로 나열되자, 클래식을 듣다 잠들 일은 없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새로운 취향을 갖게 되는 일이란, 하나의 커다란 우주를 안게 되는 일이기도 하니까. 무엇이, 어떻게 또 얼마나 넓어질 수 있을지 막연한 기대가 부풀었다.

 

 

4월 즈음에 「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라는 책을 읽었다. 짧은 시간동안 나는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의 시대로 자주 건너갔다. 또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존재해오던 외국의 풍경들을, 건너간 그곳에서 자주 상상했다. 지금 여기엔 없는 수많은 작곡가들을 만났고,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 개개인의 서사를 전해 들었다. 활자로 읽은 서사는 곧 음악이 되어 가사 없는 멜로디와 리듬 속에 상상의 영역으로서 존재했으며, 비로소 클래식 음악의 무궁무진함과 변화무쌍함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앞서 클래식 음악이 지니는 의미를 상상 또는 소설이나 사연이라고 소개했듯, 내가 클래식에 매력을 느꼈던 지점은 ‘이야기’였다. 여기엔 없는 사람의 팬이 된다는 것, 또 내가 읽는 쇼팽과 당신이 읽는 쇼팽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가사 없는 하나의 곡이 무한한 편지들로 읽힐 수 있다는 것, 나아가 하나의 취향을 얻게 되었다는 것까지, 모든 것이 나와 클래식 음악 사이의 서사로 쓰이는 중이었다.

그리하여, 클래식 연주회를 일종의 숙제처럼 읽는 사람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진지한 서사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번 공연을 기다렸다.

 

 


생상스의 항해를 함께하며



‘프랑스 로맨틱 음악의 향연’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작곡가는 가브리엘 포레와 카미유 생상스였다. 특히 <죽음의 무도>의 작곡가로서 익히 알려져 있던 카미유 생상스의 음악이 기억에 남는다.


생상스는 3세 즈음의 나이에 한 번 들은 소절을 그대로 재연하는 수준의 절대음감을 뽐내며 피아노를 시작했다. 8세부터는 작곡을 시작하며,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소나타, 교향곡, 오페라 등 400곡이 훌쩍 넘는 곡을 작곡함으로써 천재 음악가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1878년 한 해 동안 낙상(落傷)과 폐렴으로 두 아들을 모두 잃게 되는 끔찍한 역사가 생기고 만다. 이는 부부관계에 심각한 불신과 갈등을 유발했고, 설상가상 몇 년 후 어머니마저 잃게 되며 엄청난 절망감을 안게 됐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생상스는 아프리카의 알제리와 이집트를 특히 좋아하여, 매겨울마다 그곳으로 휴양을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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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주회에선 이집트의 남부 고대 도시 룩소르에서 그가 경험한 아름다운 날들의 기억을 그린 음악이 연주됐다. <피아노 협주곡 5번>, 부제는 ‘이집트적인’이라는 의미의 단어 ‘Egyptian’. 생상스는 이 협주곡을 두고 ‘이집트를 향해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항해를 묘사하는 곡’이라 설명했다.

생상스의 개인적인 아픔과 함께 읽었던 그의 음악에선, 정확한 목적지는 알 수 없지만 어디론가 ‘걷는’ 중인 생상스의 발걸음과 여정을 떠올렸다. 맑은 날 하얀 물살을 가로지르며 힘차게 떠가는 배 그리고 갑판 위 먼 곳을 응시하는 생상스를 상상하며, 마냥 두근거리지만은 않았을 그 여정의 첫 시작을 함께했다. 격정적인 리듬의 항해 곳곳에 놓인 마음 한켠의 아픈 기억들이 감수성을 자극했던 1악장의 배는 그리하여 이집트로 향하는 중이었다.

2악장으로부터는 중동 세계의 이국적인 냄새를 경험했다. 생상스가 다하비아 보트를 타고 나일강을 건널 때 뱃사공이 흥얼거렸던 누비아의 사랑 노래를 바탕으로 했다는 2악장의 선율을 들으며, 가본 적 없는 나일강의 풍경을 상상했다. 이는 생상스가 올라타 있는 배에 함께 올라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하프의 서사를 따라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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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으로부터 유재석이 하프연주에 도전하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시청자들은, 그의 성실한 연습과정부터 무대에 오르기 전에 그가 경험했던 긴장감, 무대 위 하프의 페달을 세팅하며 집중하는 발, 눈짓, 긴장한 입술, 바들거리는 손가락, 그의 연주까지 모두 함께했을 것이다.


채널을 돌려보던 나는, 어느새 TV 앞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집중하며 그의 연주를 듣는 중이었다. 그날 다시 한번, 클래식을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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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하프 연주를 곱씹으며, 포레와 생상스를 연주하는 함신익 지휘자와 연주자들 그리고 악기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했다. 피아노가 내는 소리를 가장 자주 접해왔으며 또 좋아하기도 했던 나는, 어느새 관악기의 소리에 낯선 매력을 느끼며 빠져드는 중이었다.

연주자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로 존재하는 중이었다. 개별적인 악기들의 대화면서 한편으로는 하나의 목소리기도 했던 그 날의 연주에서 분명했던 건, 공연장을 가득 채웠던 ‘이야기’였다. 포레와 생상스의 서사, 악기 각각의 서사, 그리고 음악을 듣는 수많은 나들의 개별적인 서사가 음악으로 공연장을 채워가는 중이었다.


*

핀란드인들에게 <핀란디아>라는 곡은 뜻깊은 의미를 지닌 곡이라고 한다. 핀란드는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600년 동안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이후 100년 동안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조국을 위한 노래 <핀란디아>를 작곡했다. ‘어둠의 힘은 사라지고 아침 햇살이 승리하였으니, 너의 날이 다가왔노라 조국이여’라는 가사의 이 곡은, 아픈 역사를 걷는 중이었던 당시 핀란드인들에게 독립을 향한 정신이 되었다고 한다.

<핀란디아>가 그렇듯, 공연을 감상한 지금 내게 클래식 음악은 더 큰 의미로 나아갔다. 상상의 영역에서 나아가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영역으로. 그리고 나만의 자유와 독립으로 나아가는, 즉 나만의 <핀란디아>를 찾아가는 그 길목에 이 공연이 놓여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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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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