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 엄마'의 이야기 - 연극 "민들레 홀씨"

글 입력 2020.06.0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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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엄마, 지영 엄마, 지훈 엄마”

 

엄마는 엄마가 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다. 엄마라는 단어 이면에는 ‘박자훈’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다. 우리는 ‘ㅇㅇ 엄마’라는 말에 숨겨진 엄마의 본명을 잊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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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들레 홀씨 >

 

일시 : 2020년 5월 14일 ~ 6월 7일

 

평일 19:30 | 토요일 15:00, 19:30 | 일요일 15:00

* 화,수 공연없음

* 일요일은 공연 중 기록을 위한 사진 및 영상 촬영이 있습니다.

예매 시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장소 :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 217-21 지하, 보광극장



박자훈이 인생을 사는 매 순간 특정한 배역을 맡듯이, 배우들 또한 연극 속 배역이라는 가면을 쓴다. 그리고 가면을 쓰기 전의 행동들조차 본 연극만큼 특별했다. 하나의 관례를 하듯 경건했다.


처음 연극을 시작하기 전 배우들은 검표하는 안내원의 역할을 한다. 연극 시작 전 코로나 때문에 열을 체크할 때마저도 엄숙했다. 배우 모두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누군가 온도계를 조용히 가져와 상대방의 이마에 댄다. 꼿꼿이 서 있는 두 사람이 이마를 향해 온도계를 대는 모습은 교회에서 세례를 받는 것처럼 숙연했다.

 

실상에서 ‘본인’이었던 배우들이 배역이라는 가면을 쓰는 것처럼 스태프와 배우와의 경계도 모호했다. 조명, 음악 스태프인 줄 알았던 배우는 극 중 잠시 카메오가 되어 특정 배역으로 변하기도 했다. 박자훈에게 여러 배역이 있는 것처럼 배우들은 연극 시작 전부터 암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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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주인공 '박자훈'은 1950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여자아이지만 남자이길 바랐던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세 글자로 평생을 살아간다. 고향 땅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경부고속도로가 완공된 1970년 그녀는 꿈을 찾아 서울로 상경한다. 명동 한복판에 본인의 이름을 달고 양장점을 차리겠다는 큰 꿈을 품고 구로공단의 방직공장으로 취직하지만 그 당시의 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여의치 않은 형편에 어느덧 꿈을 포기한 채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

 

 

박자훈은 처음 그 순간부터 자기 자신을 인정받은 적 없었다.


아들로 태어났길 바랬던 가족의 바램은 박자훈의 출생부터 어그러졌다. 박자훈이 자라면서 차별받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아마 박자훈은 살면서 많은 섭섭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꼭 이루어내고자 했던 것 같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일을 한다. 잠을 쪼개면서 의상 디자인을 공부하지만, 부모님이 편찮아 지면서 박자훈은 현실을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범하게 결혼하여 딸을 낳는다.


이제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던 박자훈은 없고 ’누구 엄마’가 된다. 가부장적인 남편 때문에 제대로 모임도 못 나가면서 박자훈은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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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누군가의 딸에서 '박자훈'이라는 여성에서,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할머니로 살아가게 된다. 일흔 되고 병이 들어 생을 마감하기 전 그녀는 본인의 삶을 뒤돌아보며 과거의 본인을 생각하며 추억을 회상하지만 더는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기로 한다. 그녀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민들레 홀씨의 깃털이 되어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오빠, 어머니, 아버지의 곁으로 그 길을 따라간다.

 

 

<민들레 홀씨>는 레이드버리의 성장소설 '민들레 와인'의 몇몇 장면을 차용하였다. 과거에 머물 수 없어 슬퍼하는 행복 기계의 이야기를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차용하였다.


극 중에서 박자훈의 아버지가 행복 기계를 발명한다. 박자훈이 어렸을 적,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행복 기계에 들어간다. 들어가면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보니 더없이 기쁜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괴롭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잊었던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이미 그 순간이 지나간 것을 알기에 슬프다며 괴로워했다.

 

아직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가본 사람이 없으니 실제로 갈 수 있다면 어떤 심정일지 모른다. 박자훈의 어머니가 오히려 힘들어했던 것처럼 괴로워할까? 실제로 과거를 가본 적은 없지만 괴로운 박자훈 어머니의 심정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꿈에서 그리운 순간을 꾼 다음날, 일어날 때의 기분이 정말 이상하다. 비몽사몽으로 그 순간이 진짜였는지, 아니었는지 제대로 분간하지 못한다.


현실이 자각될 때 이제는 더는 올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다시 한번 상실감을 느낀다. 그런 면에서 과거란 참 묘하다. 다시 과거로 돌아온다고 해도, 그 과거를 처음으로 경험했던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비현실적인 요소 투성이인 꿈을 꾼 후에도 이러한 기분인데 실제로 행복 기계에 들어갔던 박자훈의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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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자훈은 실제로 행복 기계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가득한 박자훈에게 고향 그 자체가 행복 기계가 아니었을까? 어렸을 적 있었던 친구가 선물로 줬던 핀, 젊은 시절이 담긴 앨범을 모두 박자훈에겐 추억이 아니라 어쩌면 미련이었을지도 모른다. 젊었을 적 의상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현실을 살고 있던 자신에게 과거를 회상하고 돌아가는 것 자체가 독이 든 성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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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홀씨의 꽃말은 행복, 감사다. 과거를 모두 버리고 나서야 박자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자신을 인정할 수 있었다. 이제 민들레 홀씨가 된 박자훈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과거에 원했던 외국 유학도 자유롭게 날아가 볼 수 있을까? 누군가의 엄마라는 역할에서 박자훈은 이제 박자훈이 되었다.

 

 



[연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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