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틸다에게 안녕을 고하며 [영화]

영화 <레옹>의 이면
글 입력 2020.05.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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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워 보이지만 외로움이 서린 ‘장 르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늘 스팅의 Shape of My Heart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온다. 나 역시 한 때 스틸컷을 저장하고 해석도 잘 안 되는 인터뷰를 일일이 시청하며 현장 비하인드 사진까지 모조리 찾아보는 등 <레옹>에 푹 빠져 있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가 소묘 숙제로 마틸다를 그려서 만점을 받았을 정도였으니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 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내 마음은 비단 좋아하는 것을 향한 중학생의 집요함으로 치부되지 않았었는다. 그만큼 <레옹>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인상 깊고 ‘좋은’ 영화였다.

  

그러나 대략 7년이 지난 후 나는 <레옹>의 별점을 다시 매겼다. 0.5점 “최악이에요.” <레옹>은 변한 것이 없었다. 대신 시간이 흘렀고 사회가 변했으며 사랑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변했다.


 

 

Leon (1994)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해보려 한다. 레옹은 업계 최고로 인정 받는 살인청부업자다. 그가 유능한 킬러임을 관객 역시 직감할 수 있는 것이 그는 아주 조용하고 깔끔하게, 군더더기가 묻어나지 않는 행위로 목숨을 앗아가버린다. 그러나 어두컴컴한 살인의 장소를 벗어난 뒤, 이어지는 레옹의 일상은 그를 선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할 만한 수준의 지극한 평범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슈퍼마켓에 들러 습관적으로 우유 두 개를 사고 커다란 화분을 마치 반응을 즉각 보이는 반려동물처럼 세심히 다루고 정을 붙인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다 자기도 모르게 터진 웃음을 터뜨리고, 곧이어 주변 관객의 눈치를 살피는 레옹의 동그란 눈을 보고 있자면 이미 수많은 사람을 죽였을 레옹이지만, 주인공을 외면하지 못한다는 것에 더해져 인간적인 정이 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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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올라가던 중, 아파트 계단참에서 만난 이웃 마틸다. 그녀는 어린이의 몸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자신이 담배를 피우고 잇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건넴으로써 둘은 처음 눈을 마주치고 말을 주고 받는다. 다음날 계단에서 둘은 또다시 만난다. 이번에 마틸다는 코피를 흘리고 있다. 그녀는 학대가정의 아이였고 어김없이 아빠에게 얻어맞은 눈치였다.



마틸다 "사는 게 항상 이렇게 힘든가요? 아니면 어릴 때만 그래요?"


레옹 "언제나 힘들지."



레옹의 위로가 제법 먹혔던 건지 마틸다는 반찬거리를 사러가는 김에 우유를 사다주겠다며 가게로 향한다. 그 사이, 마틸다의 집에는 폭풍이 휘몰아친다. 마약을 다루는 부패 경찰 스탠스가, 마약 일부를 빼돌린 마틸다 아빠를 단죄할 요량으로 집으로 쳐들어가 일가족 모두를 죽여버린다. 그 중에는 유일하게 마틸다와 사이가 좋던 4살짜리 남동생도 있었다.


이 상황을 몰래 구멍으로 엿보고 있던 레옹. 그리고 이상한 낌새를 느끼다 뒤이어, 집주변을 둘러싼 낯선 사람들과 죽어있는 아빠를 본 마틸다. 생존에 대한 직감이었는지, 마틸다는 침착하게 레옹의 집 앞으로 가 문을 열어 달라고 한다. 그 울음 섞인 요청은 꽤 조용하지만, 무척 절박해보인다. 누구에게 곁을 내준 적도 없고, 그래서는 안될 직업을 가진 레옹은 안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마틸다에게 문을 열어준다. 그렇게 일가친척이 없던 마틸다를 레옹이 거둬들이면서 둘의 생활은 시작된다.


레옹처럼 킬러가 되겠다는 당돌한 마틸다에게 레옹은 눈높이 킬러 교육을 해준다. 총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물감총으로 조준을 연습하고. 그 밖에 체력 단련도 같이 하고, 혼자 먹던 우유를 늘 함께 마신다. 마틸다는 글을 모르는 레옹에게 글자를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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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화분처럼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채 떠돌던 레옹. '진정한 고독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가족과 늘 함께였지만, 정신적 신체적 학대 탓에 정서적으로는 늘 외톨이였던 마틸다. 이제 그 가족마저도 사라진 와중에, 둘은 서로에게 유일무이했다. 함께 식사를 하고 이것저것 배워가며 점차 맞는 일도 혼자 눈치를 살피는 일도 없이 안정되어가는 둘의 돈독한 관계를 보자면 입가에 미소가 돌 정도다.


나이를 뛰어넘은 평등한 친구 관계이자, 아빠와 딸 같기도 한 그들.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는 더 깊어질수록 다른 국면을 보이기까지 한다. 단 둘뿐이었기에 더욱 빨리 영화에서 예각화되는 것이 바로 이성애다. 특히 마틸다는 지속적으로 레옹에게 자신의 사랑이 플라토닉도 아가페도 아닌, 에로스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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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옹>이 개봉된지 15년가량이 흐르는 동안, 이런 논란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식어가 붙지 않은 ‘사랑’을 표현해내는 두 배우의 연기력과, 그들은 인간적으로 사랑했다는 논리 하나가 늘 <레옹>을 방어해주었다. 이 영화에 별 5개를 매겼던 사람인 이상 나도 이 흐름에 수긍했었다. 애초에 흡인력이 매우 좋았던 탓에 이런 사실을 짚고 따져 물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 과거의 나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고, 정말 사랑했던 연인을 잃어버린 기억만 가진 레옹은 인간 관계의 측면에서 볼 때 어린아이와 같다. 자신의 직업에서만 프로다운 면모를 보일 뿐,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설정과 여기저기서 보이는 의외의 어리숙한 모습을 보건대 레옹은 어른의 몸을 했지만, 경험의 부재로 아직 미성숙한 자아를 곳곳에 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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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또래와 다르다는 것은 마틸다가 레옹과 공유하는 지점이다. 사람에게는 일정 부분 외부로 쏟아야만 하는 마음들이 있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탓이다. 우리가 가끔 인간관계에 지치더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간이 지나면 외로움을 느끼는 것처럼. 이미 전달 대상이 전해진 마음들이 나가지 못한다면 그 자리에 계속 쌓이는 것이고, 결국은 곪는다.


레옹과 마틸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을 나눌 유일한 타인이었다. 단 한 사람에게 쏟아야 했으니 서로는 서로에게 친구인 동시에 가족이어야 했으며 남매여야 했다. 그 다중역할 중에는 분명 ‘연인’ 관계 역시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특히 마틸다의 경우 10대 초반 청소년답게 연인 관계에 대한 이해도는 더욱 부족하여 자신의 복합적인 애정을, TV에서 떠들어대는 여러 가십에 맞춰 연인 간 성애로 축소한 채 오인했다는 여지를 열어둘 수 있다. 마틸다는 폭력과 약물, 성에 노출된 최악의 가정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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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틸다는 레옹에게 첫 성관계를 치르자는 대사를 하기까지 한다. 12살의 눈을 하고, 죽은 자신의 언니가 처음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한다고 충고했다며 진지하게 사랑을 나누자는 마틸다. 레옹은 아주 당연하게 거절한다. 이 영화를 처음 본 15살 즈음에도 해당 장면에서 순간적인 불쾌감을 느꼈던 기억이 아주 선명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하건대 그때의 감정은 그냥 ‘기분 탓’이 아니었다.

 

이 문제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은 실제로 둘의 이성애를 노골적으로 강조한 장면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영화 속 둘의 감정은 가족애인지, 우정인지, 이성애인지 판결 받지 않고 아직까지도 미묘한 지점에서 애매모호하게 놓여 있다. 또한 이 영화에 깃든 각자의 감상과 추억, 향수를 무시할 수는 없기에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는 대신 경계선 상에 머물기로 선택한 것이다. '해석의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애초에 그런 중립적인 선택에 안주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후로 감상을 지속할 수 없었겠지.

 

그러나 영화가 관객에게 미치는 파급력은 오히려 <레옹>에서 묘사된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를 더이상 그저 인간적인 사랑이라고 뭉뚱그려 옹호하지 못하게 만든다.

 

 

 

마틸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2018년 1월 2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2018 여성 행진’에서 마틸다 역을 맡은 배우 나탈리 포트만은 동료 배우들과 함께 연설을 하며, 자신의 성추행 경험을 고백하였다.


 


 

<레옹>이 개봉된 뒤, 13살이었던 그녀는 생애 첫 팬레터를 받았다. 나탈리 포트만을 강간하고 싶다며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묘사한 충격적인 내용의 편지. 영화 평론가란 작자들이 영화 리뷰에서 떠든 것은 탁월한 감정 연기를 해냈던 프로 배우적인 면모가 아니라 2차 성징이 나타날수록 도드라지는 그녀의 가슴이었다.


이후 나탈리 포트만이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이 18세가 되기까지 카운트다운을 했던 이유는 그녀가 합법적으로 성관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아래는 해당 연설에서 경험을 토로한 이후 그가 ‘마틸다’의 무게로 13살의 나이에 감당했던 것들이다.


 

13살이었을 때도 나는 성적으로 나를 표현하면 안전하지 못하게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자들이 내가 불편해할지언정 나의 몸에 대해 말하고 대상화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사실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행동을 바꾸기로 했다. 나는 키스신이라도 있으면 출연을 거절했고, 이 결정을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내가 얼마나 딱딱하고 진지한지도 강조했다. 고상하게 옷을 입기 시작했다. 안전하게 느끼고 나의 목소리를 전하도록 고상한 척하고 보수적이며 모범생 같고 지나치게 진지하다는 평판을 쌓았다.


  

여기서 우리는 레옹과 마틸다의 사이가 소아성애적 관계로 보이지 않았으니 그냥 넘어가도 되는 것인가? 내가 함부로 타인이 영화 <레옹>에 지닌 추억을 헤집을 수는 없는 것이고, 개봉된 지 15년의 시간이 지난 작품에 지금의 성 감수성을 들이미는 것도 완벽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개봉된 지 15년의 지난 작품이 현재까지 '명작'이라는 공고한 위치에서 소비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소아 성애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이며, 그 대상이 미성숙하고 신체적으로 약한 아동인 이상 범죄 행위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N번방 디지털 성착취 사건을 통해 아동 성적 대상화에 대한 수요가 음지에서 몸을 부풀리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은 이미 탄로난 바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여전히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인 아동들은 아동청소년보호법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드러났다.

 

나탈리 포트만이 경험했던 성추행 경험은 연속적이었고, 그 시작은 분명 <레옹>이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아동의 성적 대상화에 일조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아 성애 문제가 절대로 만만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되는 상황에서, '예술성'과 '창작의 자유'을 무기로 도덕적 개입을 무화하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비정상적인 이들에게 합법적으로 향유할 경로를 터준 것과 같은 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단순히 영화를 과해석한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이, 뤽 베송 감독이 인터뷰에서 자신이 <레옹>에 대한 영감을 두번째 부인 마이웬과 자신의 관계에서 얻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뤽 베송은 시작은 분명했다.


2018년 6월 <레옹>의 재개봉이 무산된 적 있었다. 소아 성애적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재개봉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입장과, 나는 불편하지 않았고 추억과 향수를 되새기고자 재개봉을 원하는 입장이 공존했다. 그 무렵 뤽 베송 감독의 미투가 폭로되면서 자연스럽게 <레옹> 재개봉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결국 개봉 무산과 동일하게 이 사건이 정리되면서 나는 내 마음에 남아있던 마틸다에게 안녕을 고했다. 판단과 근거와 논리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이상 영화 <레옹>과 이의 서사,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 나탈리 포트만의 '여성의 날' 연설은 "김태우, 나탈리 포트만이 13살 때 인생관을 바꾸게 된 사연을 공개하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8.1.22"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우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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